[붓소리] 장애우,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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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하나가 비원 근처에 살았었다. 학교에서는 거의 매일 만나고, 또 하교 길에 다른 친구와 함께 가끔 그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여동생 하나만 있는 것으로 알았던 그 친 구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몇 년 뒤였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들렀을 때 못 보던 여자가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친구의 언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딱 한번 본 백짓장같이 하얗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언니는 시각장애우였다. 그 집에서 다른 딸들이 시집가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눈이 보이지 않는 언니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철저하게 비밀로 한 것이다. 그 후 내 친구도, 또 그 여동생도 무사히 (?) 결혼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그 언니에 대해서는 한번 도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그 시각장애우 언니가 죽은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안 것도 작년 무렵이 나 되어서였다. 30년 조금 넘는 짧은 생을 그렇게 존재도 없이 마감 한 것이다.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극도로 심했던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나는 새로운 인식에 접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하던 학교는 오만 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 큰 주립대학이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 두 명인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손가락까지도 뒤틀리는 중증장애우로, 전기로 작동하는 휠체어를 타고 겨울이면 무릎에 담요를 덮고 교정을 지나다녔다. 4층에 있는 대학원 도서실에서 공부하다 찌-익 하는 이상한 기계 음에 고개를 들어 보면, 전기횔체어가 굴러가면서 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거기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은 학생회관 앞 광장에서 장애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일반학생까지 포함해서 50여명 정도가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위의 내용은 1주일에 몇 번씩이나 장애학생들이 이용하는 학생회관에 자동문이 없어서 이용할 때마다 다른 학생들이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등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 시위 이후로 학생회관에 자동문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장애학생 한 사람이 6년 만에 졸업하던 날, 주 5회 발간되는 학교 신문의 사설란에 그 학생에 대 한 기사가 실렸었다.
미국의 장애우들이 근년에 새롭게 내거는 슬로건이 있다. 그것은 장애우들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능력이 다른 사람들"(Not disabled, but differently-abled)이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육체적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르게 능력 지워졌다는 긍정적인 사고의 표현이다.
비장애우를 기준으로 보아 장애우들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장애우까지 포함하여-을 놓고 보았을 때 사람의 능력은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하는 발상이 아닌가싶다.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우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고는커녕 집안에 갇혀 모든 식구들의 짐으로 더부살이 인생을 사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달 일본에 1주일간 다녀온 남편으로부터 아주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일본에서는 모든 거리에 시각장애우를 위한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앞을 못 보는 사람일지라도 쉽게 발바닥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인도의 보도블록이 한 줄은 쭉 요철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횡단보도 앞에는 이렇게 요철로 된 보도블록f 여러 방향으로 되어 있고 지하철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동경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까지 다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택시를 탔을 때 택시 안의 손잡이에도 점자로 표시가 되어 있더라고 한다. 우리가 일본인을 경제동물이라고 욕하지만, 소수의 권익이 이 정도로까지 보장받는 것을 보고 심한 충격과 함께 열등감을 느꼈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성장위주의 경제정책만 추구해온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사고한다면, 생산성이 거의 없는 시각장애우를 위하여 전국의 보도블록을 한 줄씩 교체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낭비로 비쳐질 것이 틀림없다. "아니, 사지육신이 멀쩡한
진정한 선진국으로 향하려는 준비를 정부와 국민 모두가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장애우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노동자도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판에, 돈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 세금을 거두어서 그런 데에 예산을 쓰느냐?"고 일반 국민들도 반대할 것이다. 장애우 복지기관이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고 주민들이 데모하는 지금의 국민의식 수준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을 향해서 간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선진국을 지향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무조건 1인당 국민소득만 중 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건물들이 호화스럽고 최신 디자인의 지하철이 운행된다고 해도, 그 지하철 안에 구걸로 연명해야 하는 장애 우들이 있다면 어떻게 선진국 운운할 수가 있겠는가? 또 구걸이나마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장애 우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경우일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향하려는 준비를 정부와 국민 모두가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장애우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에서 얘기한 동창친구의 언니처럼 소외된 삶으로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불행이 앞으로의 세대에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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