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장애우복지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본문
우리 연구소가 시작된 지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어찌 보면 긴 시간이었고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기도하다. 그 사이 우리 임직원 모두 뒤돌아볼 틈도 없이 일했지만 지난 5년을 되돌아보건대 과연 우리가 한 일들이 이 땅의 장애우복지에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하였는지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독특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하였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탁월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땅에 장애우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을 바꾸어 좀 더 나은 다음"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의욕은 앞섰으되 사사건건 미숙하고 거칠고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무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산재,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장애발생률의 증가와 사회의 편견으로 생존조차 위협 당하는 장애우의 현실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면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주어지는 시간 틈틈이 한숨을 돌리며 우리가 하는 일의 끝이 어디쯤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끝내 확인되는 것은 그 끝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한 현실감각뿐이다. 매 순간 이어지는 이런 번민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진정한 장애우복지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이 일을 하자며 서로를 위로해 주는 소리 없는 애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5년을 지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면 재정적 어려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직원 모두가 말 그대로 형편없는 액수를 월급이라는 명목을 붙여 받으며 그 돈으로 처자식들과 생활을 해야 했다.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매어 월간지 "함께걸음"을 발간해냈다. 장애인 기관,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재가장애인, 장애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 장애인이든 비장애이든 이 책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 이 책을 보아야 할 곳에 무료로 배포했다. 함께걸음 탄생 때부터 티나지 않게 후원을 해 주신 분들께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광고효과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하면서 광고를 게재하여 주신 분께도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힘겹고 어려운 내색은 안으로 감추며 오히려 서로를 위로하려고 애쓰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간 우리는 모든 장애 우들이 한복소리를 내어 커다란 힘으로 장애우 복지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모든 장애우 단체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우리들 역시 인간이기에 목적과 방법이 다르고 신뢰가 깊지 못해서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 불신과 오해 속에서 많은 구설수도 나돌았고, 비난의 소리도 들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조금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겸손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차제에 반성을 할 것이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할 자존심은 반드시 지키고 떳떳한 자세를 견지 할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장애우복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는 한마디로 수동적 입장에 있었던 장애 우들이 능동적 입장으로의 변모를 시도하였고 이러한 시도 속에서 장애우복지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지내던 우리 장애 우들이 이제는 굴욕적인태도를 버리고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열악한 시설의 개선을 요구하였고, 법률의 개정과 장애우복지예산을 늘리라고 요구하였다. 우리 장애우들의 요구가 합당하고 필요한 것이기에 점차로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던 보사부 공무원들과 복지시설 직원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5년 동안 바뀐 정도는 바뀌어져야 할 정도에 비추어 볼 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바뀌어야 할 정도는 그동안 바뀐 정도의 몇 백배 몇 천배일 것이다. 우리들이 할 일이 아직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5년을 거울삼아 앞으로 다가올 5년을 계획하려 한다. 지금껏 해온 고민의 연속선상에서 좀 더 나은 장애우복지를 추구하려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장애우"라는 단어가 이사회에서 사라지는 세상이다. 장애 우이기 때문에 장애우가 아닌 사람과 별도의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혹자는 그런 세상이 도래하겠느냐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을 확신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사회에는 양반과 상놈이 있었다. 그리고 양반과 상놈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양반과 상놈 사이의 불평등과 부조리한 모습이 당연한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을 지내오면서 지금 이 땅에서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양반과 상놈 사이의 불평등과 부조리가 해결된 것이다.
우리도 확신한다. 앞으로 100년, 아니 앞으로 45년 내에 사람들 사이에 장애우와 비장애우를 구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애우라고 하여 교육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 발생하지 아니할 것이다. 장애우가 높은 계단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장애우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장애우가 장애를 입지 않은 사람과 혼인하려할 때 반대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행복한 시간을 대비할 것이다. 우리가 일 해온 시간만큼만 더 노력하고, 그때 가서 다시 한번 지난 시간만큼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 곧 20년이 지나갈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지나온 시간만큼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 40년이 흘러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러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이 기대 속에서 다음 5년을 준비해 본다. 그동안 우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걸음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 준 모든 분들께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독특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하였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탁월한 이론을 가지고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땅에 장애우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을 바꾸어 좀 더 나은 다음"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의욕은 앞섰으되 사사건건 미숙하고 거칠고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무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산재,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장애발생률의 증가와 사회의 편견으로 생존조차 위협 당하는 장애우의 현실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면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주어지는 시간 틈틈이 한숨을 돌리며 우리가 하는 일의 끝이 어디쯤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끝내 확인되는 것은 그 끝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한 현실감각뿐이다. 매 순간 이어지는 이런 번민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진정한 장애우복지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이 일을 하자며 서로를 위로해 주는 소리 없는 애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5년을 지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면 재정적 어려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직원 모두가 말 그대로 형편없는 액수를 월급이라는 명목을 붙여 받으며 그 돈으로 처자식들과 생활을 해야 했다.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매어 월간지 "함께걸음"을 발간해냈다. 장애인 기관,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재가장애인, 장애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 장애인이든 비장애이든 이 책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 이 책을 보아야 할 곳에 무료로 배포했다. 함께걸음 탄생 때부터 티나지 않게 후원을 해 주신 분들께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광고효과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하면서 광고를 게재하여 주신 분께도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힘겹고 어려운 내색은 안으로 감추며 오히려 서로를 위로하려고 애쓰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간 우리는 모든 장애 우들이 한복소리를 내어 커다란 힘으로 장애우 복지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모든 장애우 단체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우리들 역시 인간이기에 목적과 방법이 다르고 신뢰가 깊지 못해서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 불신과 오해 속에서 많은 구설수도 나돌았고, 비난의 소리도 들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조금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겸손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차제에 반성을 할 것이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할 자존심은 반드시 지키고 떳떳한 자세를 견지 할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장애우복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는 한마디로 수동적 입장에 있었던 장애 우들이 능동적 입장으로의 변모를 시도하였고 이러한 시도 속에서 장애우복지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지내던 우리 장애 우들이 이제는 굴욕적인태도를 버리고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열악한 시설의 개선을 요구하였고, 법률의 개정과 장애우복지예산을 늘리라고 요구하였다. 우리 장애우들의 요구가 합당하고 필요한 것이기에 점차로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던 보사부 공무원들과 복지시설 직원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5년 동안 바뀐 정도는 바뀌어져야 할 정도에 비추어 볼 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바뀌어야 할 정도는 그동안 바뀐 정도의 몇 백배 몇 천배일 것이다. 우리들이 할 일이 아직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5년을 거울삼아 앞으로 다가올 5년을 계획하려 한다. 지금껏 해온 고민의 연속선상에서 좀 더 나은 장애우복지를 추구하려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장애우"라는 단어가 이사회에서 사라지는 세상이다. 장애 우이기 때문에 장애우가 아닌 사람과 별도의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혹자는 그런 세상이 도래하겠느냐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을 확신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사회에는 양반과 상놈이 있었다. 그리고 양반과 상놈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양반과 상놈 사이의 불평등과 부조리한 모습이 당연한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을 지내오면서 지금 이 땅에서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양반과 상놈 사이의 불평등과 부조리가 해결된 것이다.
우리도 확신한다. 앞으로 100년, 아니 앞으로 45년 내에 사람들 사이에 장애우와 비장애우를 구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애우라고 하여 교육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 발생하지 아니할 것이다. 장애우가 높은 계단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장애우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장애우가 장애를 입지 않은 사람과 혼인하려할 때 반대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행복한 시간을 대비할 것이다. 우리가 일 해온 시간만큼만 더 노력하고, 그때 가서 다시 한번 지난 시간만큼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 곧 20년이 지나갈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지나온 시간만큼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 40년이 흘러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러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이 기대 속에서 다음 5년을 준비해 본다. 그동안 우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걸음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 준 모든 분들께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작성자이성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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