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더불어 함께 사는 빛의 자녀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더불어 함께 사는 빛의 자녀

본문

 인간을 두고 우리는 여러 가지 기능적인 인간으로 표현합니다. "사유하는 인간", "기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등 이밖에도 다른 동물보다 우월함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들입니다. 사람이 원숭이, 말, 소, 개나 고양이 보다 훨씬 뛰어난 두뇌와 기구를 사용하며 과학문명을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친구와 서로 도울 줄 알며,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를 꾸미고 살 줄 안다는 것이 인간의 또 하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사회를 두고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우리사회가 여러 동물 집단보다 별로 월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웬일입니까?
얼마 전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어떤 동네에 장애인 종합 복지관을 지으려는 것에 반대하여 주민들이 반대 농성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지관 시설이 자기 동네에 세워지는 것에 흥분한 주민들은 "아이들 교육상 안 좋아요. 애들이 보고 병신 흉내를 내면 어떻게 해요", "집값이 떨어져서 안 됩니다. 왜 허구 많은 동네 중에 우리 동네입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네 동네에는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성의 파괴상을 적나라하게 보았습니다. "아, 어떻게 하다가 자기만 생각하는 인간이 되었을까? 이기심이 인간 본연의 모습일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모습은 동물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복지사회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일면입니다.

지난 88년 제24회 서울국제올림픽과 89년 장애인 올림픽을 치루면서 장애인의 수를 4%에도 못 미치는 100만 명도 채 안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애인협회의 비공식 통계를 보면 40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정부는 장애우의 수가 적다고 발표하는 것이 선진문명국가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올림픽까지 치루는 나라에서 장애우가 많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지정책이 완벽하리 만큼 잘 되어 있다고 하는 선진국인 스웨덴, 독일,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오히려 장애우 인구가 거의 전 국민의 10%라는 통계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애우를 가진 집에서는 남에게 나타내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바로 선진국이 되면 될수록 사회의 그늘에 숨겨져 소외당하는 장애우를 찾아내고 그들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배려하고 그들도 사회의 귀중한 일원으로 살아가게 물심양면으로 배려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국가입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죄인은 더욱 아닙니다.

저는 장애우들을 위해 힘써 일했던 작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3년부터 정신지체아들의 교육을 위해 당시로서는 거의 불모지 상태에서 성공회 성베드로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흡족하지는 않지만 국가시책으로 지원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부의 지원은 거의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신지체 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은 한사코 숨기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모들을 설득하고, 또 한편으로는 운영자금을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성금을 모으러 다닐 때 저는 뜻밖의 일들을 경험하고 놀랐습니다. 돈 많고 꼭 도와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면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별로 도움을 줄 만한 처지가 안 된다고 미안한 생각으로 찾아간 사람들이 의외의 큰 성금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성공회의 주교로 84년부터 재임하고 있지만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던 그 시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 때가 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셋 이상 모인 곳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그들과 생활했지만 그들을 통해 얻은 중요한 교훈 하나가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장애 우 시설이 동네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교육상 안 좋다"는 이야기는 타당하지 않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들은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지극히 비정상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허우대가 멀쩡하니 정상인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이기와 탐욕에 물든 영혼을 두고 절대로 정상적인 인격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혈육이 아니면 무관심하고 배척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는 것이 가장 먼저 정상적인 인격체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정부차원의 복지와 시설을 확보하는 것을 장애우 복지의 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소중한 일은 장애우들도 하느님의 귀한 자녀라고 생각하여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누르고 있는 소외와 배척의 담을 허물고 빛의 자녀로 함께 사는 길에 동참시키는 일입니다.

작성자김성수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