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마당] 다시 현장으로 떠난 동료기자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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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이었던가. 장애인언론기자협의회 공식 모임 자리는 한 동료기자의 조촐한 송별회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꽤 오랜 기간 장애판 신문사에서 기자 일을 했던 그가 사전에 한마디의 얘기도 없이 신문사를 관두고 사회사업공부를 하겠노라고 공포한 것이다. 그리고 담배연기를 입안 가득 내뿜으면서 자조 어린 투로 내뱉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까워요."
예기치 않았던 그의 사퇴 선언에 적이 놀라움을 표시하며 대꾸의 말을 잊은 채 한참을 있다가 우리 또한 제각기 자위의 말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현장으로 가는 거네." "현장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 날, 을씨년스럽게도 휘날리던 겨울 눈발 아래서 짧게 악수를 나누고 그와 헤어졌다.
그가 떠나고 해도 바뀌었다.
그와 함께 취재했던 일들이 지금 앙금처럼 남아 있어서 그가 남기고 간 "현장"의 의미와 함께 자꾸만 풀 수 없는 숙제처럼 아득하게 다가온다.
취재를 하고 와서 그도 나도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았던 "번동복지관 문제"가 아직까지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복지관 관장의 파행적인 운영과 재정 비리를 문제삼아 복지관의 직원 몇 명이 관계기관과 언론사에 진정서와 투서를 보내면서 알려진 사건이었다. 결국 검찰에까지 넘겨져서 아직까지 수사 단계에 있지만 별 진전이 없는 상태이고, 문제를 삼은 직원들은 지금 모두 복지관을 나온 상태다. 세 명은 사건직후에 해고되었고, 정직을 당한 두 명은 복직되었다가 온갖 탄압과 사퇴압력을 못 견디고 두 달만에 사표를 내던지다시피 하고 뛰쳐나왔다. 6개월이 넘도록 실직생활을 한 한사람은 사회복지 전문요원 시험공부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또 한 사람은 다른 복지관에 취직을 했다.
얼마 전에 우리 연구소를 찾아와 만난 그들은 모두 지쳐있는 모습들이었다. 별 승산도 없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만 막연히 집착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전의 분노와 열의는 식은 채 이제는 옛날 일로 잊어버리고 싶은 생각들도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한편 "이대로는 물러 설 수 없다" "어차피 시작한 일 끝을 봐야 한다." "복지관 운영이 관장 마음대로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되며 문제를 일으킨 직원에 대해서도 해고조처로 끝장을 내버리면 된다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싸움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이야기도 오갔다. 새롭게 싸우든, 여기서 일단락 되든 그들에게 엄청난 무게로 남겨진 "짐"임엔 틀림이 없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 몇 달 동안 장애판은 정말 숨 가쁜 위기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가고 있는 듯하다.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 저지 사태를 비롯하여 삼육재활원 이전 문제, 또 라파엘의 집 이전을 둘러싼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잇따른 시설의 여성장애인 성폭행 문제가 끊이질 타고 있다.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은 각종 문제들까지 열거하기가 우울하기만 하다.
어쨌든 이 문제들을 싸안고 속수무책인 채로 몇 달을 흘려보낸 게 사실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 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 심각성에 동조하는 단체들의 움직임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나의 동료기자는 무력하기만 한 "현장"의 모습에서 절망과 비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지면에만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사거리로는 "현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든 몇 년 후에 현장의 일꾼이 되어 있을 그를 생각하며, "현장"의 실체(?)를 자꾸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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