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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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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보내며…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 국가지정일로 승격(?)된 것을 축하하려는 듯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올림픽 공원은 각지에서 온 장애우들로 붐볐다. 나 자신도 그들에 휩쓸려 그 날 행사에 참가했다. 장애인의 날 행사 참가는 처음인지라 막연한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기분은 잠시뿐 곧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보나마나 뻔한 행사여서 참석 않겠다던 어떤 분의 말에 수긍이 갔다.

 올림픽공원에 메아리치는 마치 장애인의 날의 주제가처럼 되어버린 "사랑으로 가는 길"을 들으며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귀청을 두들기는 굉음과 5천여의 장애우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유공자 표창과 장애우들의 공연에 이어 인기가수들의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10대 팬들의 비명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나올 때면 철없는 아이들은 여지없이 무대위로 뛰어 올라갔다. 앞에서 관람하는 장애우는 조금도 생각 않은 채, 염불대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더니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할 장소가 콘서트 장으로 돌변했다. 비장애우들은 온통 인기가수들을 한곳에서 동시에 만나는 기쁨에만 도취된 듯 환호성을 질러댔다.

 행사장을 빠져 나오니 상큼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금새 머리가 맑아졌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올림픽광장 수변무대로 발길을 돌렸다. 나들이하기에는 썩 좋은 날씨였다. 산책로 주변에는 봄 풀이 파릇파릇 고개를 쳐들고, 하늘은 졸리운 듯 한낮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호수와 그 위에 떠 있는 조각품들은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고 김중업 선생이 축조하였다는 올림픽기념상징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변무대위의 간단한 여흥이 끝나고 나직이 갈리는 "사랑으로"를 배경으로 한마음 한 몸 행진이 시작되었다. 나는 행렬을 뒤로하고 부름의 전화 4천회파송 기념식에 참석키 위해 교통회관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이는 행진이 장애우의 처지를 대변하듯 너무도 엄숙하게 느껴졌다.

 공원을 빠져나온 교통회관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자 조금전의 열기는 간데 없이 한적한 정적이 감돌았다. 여러 가지 사념이 스쳐갔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 틀림없이, 역도 경기장과 올림픽 광장의 그 열기는 극히 한정된 장소에서의 우리들끼리 만의 잔치가 아니었는가?

 평소에 이 거리에서 장애우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남의 눈총 안 받고 거리를 진정한 장애해방이다. 대목을 만난 듯 하루 날잡아 남보란 듯이 허세부려 봐야 장애우 복지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과연 그 날이 장애인우 날임을 비장애우의 얼마만큼이 알았겠는가? 과연 그 날 얼마만큼의 비장애우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장애인의 날 특집을 지켜보았겠는가? 아마도 대다수의 시선은 노태우, 고르바쵸프 정상회담에, 사상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던 죠지·포먼대홀리필드의 타이틀전에 쏠려 있었을 것이다. 장애인의 날이 장애우에 대한 비장애우의 인식 제고에 더 기여를 하겠는가? 아니면 정부의 홍보에 더 큰 기여를 해겠는가? 아무래도 착잡하기만 하다.

 물론 장애우계의 노력을 깎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나가지도 못하는 장애우에게 가수들이 공연을 구경시켜주고, 올림픽공원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효용 면에서는 큰 의의가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분열되어 있던 장애우 단체가 장애우복지단체협의회를 구성 조직적으로 대사를 치러낸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역효과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도식적인 행사에 다시 참가하고 싶은 장애우는 없을 것이다. 그런 행사 규모를 더 크게 하면 할수록 당국에게 더 큰이용을 당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장애인의 날이 장애우에게는 큰 대목이지만 당국에게는 더 큰 대목일 수 있다. 돈 적게 들이고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정부도 이만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확실한 홍보인 것이다. 정부도 이런 행사라면 한달에 한번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올해는 광역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틈을 타서 민자당의 어느 고위당직자는 농아단체행사에서 한 표를 부탁했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린다. 이번 장애인의 날은 장애우보다 당국이 더 흐뭇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정 그렇다면 장애인의 날은 없는 것이 났다. 사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장애인의 날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허구이다. 겉포장만 번지르하다고 복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다고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장애우복지에 대한 면죄부가 씌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달 간은 폭풍우가 휩쓸고 가듯 장애우 행사가 한꺼번에 치러졌다. 그러고는 곧 잊혀졌다. 이 땅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간단없이 계속되고 있다. 벌써 몇 명의 젊은이가 죽어 가는가? 그들을 탓하지만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명백하다. 정말 끔찍하다. 이미 정부는 신뢰를 잃어 버렸다. 눈하나 꿈쩍 않는 그 태연함이 무섭다. 생명경시가 무섭다. 생명경시가 번지고 있는 이 땅에서 장애우복지가 갈 길은 험난하다. 이런 와중에서 누가 우리에게 꿀을 던져준단 말인가? 장애우라고 해서 민주화의 단꿀을, 복지의 단꿀을 앉아서 받아먹으려 해선 안 된다.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한다. 우리의 몫을 찾아내야 한다. 복지선진국의 장애우복지는 투쟁의 결과로 얻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우 단체의 통합이 시급하다. 하루빨리 압력단체의 구실을 톡톡히 해야한다. 따가 되면 가만히 있어도 떡을 던져줄 정부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날이 진정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표행사는 다른 지정일처럼 기념식과 포상 정도로 그치고 그 밖의 행사는 시즌 중에 집중치를 것이 아니라 연중 분산개최가 바람직하다. 장애인의 날에는 1년 간의 장애우 복지를 점검 그 현황을 백서로 발표하고, 장애우도 이 땅의 백성임을 각인시키는 방안으로 남북장애우 교류 같은 것을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침이슬"을 열창하던 백일군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 이제 가노라, 거치른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우리가 갈 길은 멀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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