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의 세상보기]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본문
동이 터 온다.
우리는 춤을 추며 밤을 지새웠다.
우리 몸 둘레는 아직 어둠이 휩싸고 있다.
한 줄기 빛 기둥이 어둠을 가르며 쏟아져 내려 무대의 커다란
걸개그림 뒤에 박혔다가 천천히 내려와 덮힌다.
여학생은 무대를 휩쓸며 몸부림치듯 춤을 춘다.
빛 기둥도 함께 몸부림치며 무대를 휩쓴다.
빛 기둥이 성조기에 붙박히듯 멈춘다.
여학생도 춤을 멈추고 성조기를 향해 다가간다.
무슨 괴물을 향해 다가가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힘찬 몸짓으로!
마당에 깔린 풍물패가 소용돌이를 치듯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돈다.
여학생들은 징, 꽹가리 장단에 맞춰 성조기 자락을 잡고 춤을 춘다.
성조기가 두 쪽으로 찢겨나가며 무대위로 떨어져 내린다.
상쇠 옷차림의 남학생이 무대 위로 달려 올라가 성조기를 뭉쳐들고
길이길이 뛰면서 마당으로 내려온다.
풍물패는 더욱 자지러진다.
성조기를 뭉쳐 든 남학생이 마당을 한 바퀴 휩쓸 듯 들고 성조기를
풍물패 속에 던진다.
성조기는 뭇발길에 짓밟힌다.
성조기를 던진 상쇠가 양손에 화염병 하나씩을 들고나서서
두 활개 휘저으며 춤을 춘다.
마당을 가득 메운 수만 학생이 세차게 팔을 뻗치며 구호를 외친다.
화염병은 성조기 위로 날아가 터진다.
펑!
펑!
불꽃이 솟구쳐 오른다.
1991년. 8월 15일.
광복절은 이렇게 왔다.
우리는 징, 꽹가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오늘은 다만 광복절일 뿐,
우리가 바라는 해방의 날은 아니다.
그 해방의 날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8월의 밤을 지새우며 춤추고 노래 부른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신새벽.
풀리는 어둠을 휘저으며
비둘기 한 마리가 휘적휘적 날아간다.
글/박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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