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한번의 시작은 오히려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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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내 삶의 중대 기조(基調)를 변함 없이 지켜준 것은 젊은 시절부터의 기독교 신앙이요. 또 내가 택한 한의학이었습니다. 두 가지 다 손쉽게 얻을 수 없었던 것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것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통찰과 실존적 인간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내게 뿐 아니라 이것들을 일평생 다른 삶과 구별되는 자기정체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고자 할 때 그가 택한 직업은 무엇보다 필수불가결의 조건임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명함에다 자기의 직업을 명시하여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히도 이 나라의 장애우들에겐 직업을 갖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30이 넘도록 정당한 사회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직업 선택의 전제가 되는 교육의 기회조차 박탈당하기가 일쑤입니다. 요즘은 사정이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진학은 물론 각급 학교진학에도 제약을 받고 있으며 다행히 장애우들에 소개되는 직업조차도 사실은 싼 임금 탓에 주어지는 생산직 직종뿐입니다.
20년은 훨씬 전 일입니다만, 5·16이 지난 지 얼마 안되던 당시, 장애우들은 의무교육을 마치고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불구, 폐질자의 입학 불허란 교칙에 가로막혀 버리는 예가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한바탕씩 소란이 일곤 했습니다. 중학교가 그러했다면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떠했겠습니까? 취직시험은 어떠했겠습니까? 장애우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가 한 인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시키는지 당시의 사건들을 통해 충격을 많이 받은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비인간적인 교육제도의 개정을 위해 교육계종사자의 일원으로 책임을 통감하면서 미력한 힘을 모아 요로에 진정하는 등 동분서주해서 겨우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판정되는 자에게는 입학시켜야 한다는 미급한 개정을 겨우 이룰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변화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상이 있다해도 불같은 개혁의지가 있다해도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이루려 한다면 큰 실망과 낭패를 당하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역사의 진전은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는 토인비의 통찰은 모른다 할지라도 어느 사회든 밀고 당기면 또 역으로 당기로 미는 역학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극우, 극좌, 반민주 세력이나 민주세력과 같은 용어의 난무는 변화나 개혁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시대징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문제의 본질에 있어 조금도 변함 없는 장애우 복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좋은 이상과 불같은 개혁의지 뿐 아니라 끈덕진 인내도 필요합니다.
상인들의 지혜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합니다. "새로 상점을 시작하는 것 보다 망한 상점을 일으키는 것이 더욱 힘들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한번의 시작은 오히려 쉽지만 한번의 시작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발전시키고 책임지는 일은 더욱 힘든 것입니다.
나는 요즘 장애우 관련 사업에의 선한 참여가 지속적 관심이 되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각오로 기도하는 심정이 됩니다.
뭔가를 지속적으로 시행한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장애우 복지 관련 분야에서 애쓰시는 여러분들의 수로고 위로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끈덕진 인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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