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나의 사춘기 시절과 장애운동 원리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나의 사춘기 시절과 장애운동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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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생물시간에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배우면서 섬뜩한 전율을 느꼈던 일이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자연환경과 생물, 생물간의 냉엄한 경쟁 속에서 강자가 살아남아 온 것이 자연과 생물체의 진화의 역사였다고 한다. 따라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는 곧 역사 발전의 논리이며 정글의 법칙은 곧 인간사회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과학적 발견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의 하나로 평가되는 다윈의 진화론은 사춘기의 고민에 빠져있던 나에게 또 다른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여느 장애우들처럼 고민에 빠져 있던 나에게 사춘기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의 시기였다. 한참 이성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타인으로부터 평가받고 사랑 받고 싶어질 나이에 자신의 신체적 조건이 주위로부터 운명적인 장애물로 규정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비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나의 고통은 크게 보아서 생물체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개체의 열등의식에 불과한 것이라고 다윈의 진화론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체적 기능에 관한 한 인간사회에서의 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다윈의 적자생존, 자연도태 이론에 의해서 나와 장애우들은 자연과 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하는, 도태됨으로써만 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사춘기의 나를 괴롭힌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예를 들면 유전학, 우생학에 대해서 배울 때는 "나는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품종....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 하는 자의식 때문에 혼자서 얼굴이 붉어지고, 심지어는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 이란 표어조차 "신체적 장애는 곧 정신적 장애" 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아마도 나는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친구들과의 사소한 말다툼까지도 자신의 어떤 병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었나 하고 괴로워해야 했다. 게다가 털어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주위에 없어 나의 내면세계는 마치 이것저것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뒤섞여 끓어오르는 작은 용광로와도 같았다.
일상의 자잘한 경험 속에서 계속 던져지고 반추되는 냉소적이고 자학적인 열등의식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황당한 과대망상은 한편으로 이제 막 형성기에 접어든 나의 사회적 자아에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지움으로써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과 사회의 음영을 깊이 있게 사고하게 하여 그러한 시련을 거치지 않았을 경우보다 한층 성숙된 자아를 갖게 해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 평가는 좀더 많은 인생이 살아진 뒤에야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 왜 그토록 번민하게 방황했던가 싶고, 죽음의 변두리까지 헤매게 했던 절망의 뚜렷한 이유도 이제는 오래되어 빛이 바래버린 수채화처럼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철없는 소년의 한때 방황이라고 간단히 흘려버릴 수 없는 어떤 진지한 문제의식이 그 속에 잉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지금도 나의 내면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나와 비슷한 폭풍우의 사춘기를 경험해야 했던 장애우들의 멍든 가슴 한 구석에 깊이 뿌리내려 수시로 벗겨진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고통을 가져다 주는 그런 것은 아닐까?

문제의식은 그것을 해결하려하는 적극적인 실천과 결합될 때만이 진정한 문제의식이 된다. 사춘기적 미숙함처럼 문제의식을 위한 문제의식, 고민을 위한 고민, 고통으로 끊임없이 내면화되고 추상화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그리하여 우리 장애우 운동이 보다 성숙한 성인적 활력으로 충만하려면 장애우 일반(그리고 장애우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소외되고 억압받는 모든 약자들)이 처해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 모든 장애우들의 사고방식과 장애우 운동의 이론적 지침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보다 과학적인 장애우 일반의 처지에 대한 인식(그런 면에서 "함께 걸음"에 연재되었던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의 기획연구, "한국에 있어 장애우 소외와 극복방향"은 커다란 이론적 성과이다.) 과 실천에 의해서만이 사춘기 시절의 고민처럼 소모적이고 자학적인 번민의 늪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사의 과학인 것이지 사람 사는 세상의 과학은 아닌 것이다. 우리 장애우 운동은 사람 사는 세상의 논리, 인간해방의 논리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성자김록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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