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인(Sign)은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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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파티파티’라는 장애인지원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그때는 파티파티에서 이동지원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차로 집에서 사무실까지 한 번에 가죠. 솔직히 이동에 불편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더운 여름날에는 땀 뻘뻘 흘리며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은데, 현관 앞까지 와주는 차 덕분에 편안하게 이동이 가능합니다. 차를 타고 20~30분 정도 가야 하니까 그 시간은 편히 앉아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지요. 저와 함께 타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계셔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저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희 집을 출발하여 한 5분 정도 가다 보면 왼편에 학교가 있고, 전철 선로 밑을 지나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선로 바로 옆에 학교가 있으니까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심한 소음이 날 텐데, 아이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학교는 일반학교가 아니라 청각장애아 지원학교라는 거예요. 그것도 무려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있는 학교였어요. 아마도 학교가 세워졌던 당시에는 아직 전철 선로가 생기기 전이었을 테고, 나중에 선로를 연결할 때 아무래도 일반학교가 아닌 청각장애아학교라는 면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쨌든 학교 건물 방음 장치가 담보되어야 하겠지만요. 한 동네에 사는 저지만 거의 의식할 때가 없고 그저 학교 앞을 차로 지나갈 때나 힐끗 돌아보는 정도인데, 왠지 ‘들리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요(이 학교에는 유치부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가 병설되어 있고, 기숙학교는 아닙니다).
여름의 무더위에도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삼계탕을 먹으며 ‘시원하다!’를 연발하는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일본에서도 한여름 이열치열의 도가니가 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고교야구의 전당 고시엔이라는 곳으로 오사카에서 멀지 않아요. 여러분, 올해부터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한 오승환 투수 아세요? 그 한신 타이거즈의 본거지가 바로 ‘고시엔’이랍니다. 올해로 96회를 맞이하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일본 각지에서 170시합이라는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49개 팀에게만 고시엔에서 시합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8월 9일부터 14일간 비가 오는 날에도 태풍이 부는 날도 쉬지 않고 열전이 펼쳐질 거예요. 한국에서도 야구는 인기가 있는 스포츠지만 저도 중고등학교 때 고교야구를 보며 응원했던 생각이 나네요, 프로야구와는 다른 순수함과 열기,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빛나는 청춘의 웃음과 눈물이 감동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전국 각지에서 예선이 열리는 가운데 지방의 한 고등학교 야구팀의 선전이 뉴스로 전해졌어요. 마스다히가시 고등학교, 이 팀 야구부 에이스 투수는 3학년 히로나카 소마 선수인데, 선천성 난청으로 거의 들을 수가 없는 청각장애 선수래요. 이 선수를 비롯한 팀원 전부가 여름 고시엔 대회 출전을 위해서 연습에 여념이 없다고요. 나라에 있는 청각장애지원학교에서 중학교를 마친 이 히로나카 학생은 야구의 꿈을 안고, 고시엔 본선에 출장한 경력이 있는 마스다히가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야구부 활동에 전념했다고요. 야구는 물론 눈으로 보고, 손으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경기지만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닌 팀워크가 중요한 경기잖아요. 야구를 하면서 같은 야구부 친구들이(야구부원 80명) 이 히로나타 선수를 위해 간단한 수화를 배워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이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는 부모님이 공을 던지거나 맞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다칠까봐 반대했대요.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팀원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 한 때는 야구를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 고시엔의 꿈을 지울 수 없었대요. 전통 있어 많은 야구 지망생이 모이는 이 학교 감독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 선수의 열의가 전해져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감독은 ‘특별한 대우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이 청각장애 학생을 위해 자료를 만들며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야구부 팀원 학생들도 처음에는 어떻게 접하면 좋을지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1학년 여름합숙 때 같은 방을 썼던 한 친구가 초등학교 때 배웠던 수화를 히로나카 선수에게 해보였대요. ‘어머니’라는 간단한 단어였다고 하지만 그것이 통했고다른 친구들에게도 간단한 수화를 배워보자고 제안해, 집중적인 연습을 하여 몇 주 만에 본격적인 수화는 어렵지만 간단한 문자 수화를 익힐 수 있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연습이나 시합 중에 지시나 전언을 문자수화의 써서 하게 됐다고요. 투수 히라나카 선수의 공을 받는 포수 고가 선수는 ‘다른 학교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들만의 언어이며, 팀 전체가 하나가 되는 힘이 된다’고 했다고 하네요.
이 기사를 보며 저도 마음이 뿌듯했어요. 그리고 이 팀이 본선까지 올라오면 좋겠다고 응원했는데,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예선에서 지고 말았대요. 이 선수가 고시엔 마운드에 서보겠다는 꿈은 비록 이루어지지 못 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함께 땀 흘려 싸운 이 여름의 기억은 우렁차게 가슴을 울려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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