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장애인 삶의 경험
본문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중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언론과 매스컴 등에서 등장하는 부정적이고 동정적인 이미지와 성공적이고 영웅적인 이미지의 이분법적 구분이다. 다른 하나는 장애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논할 때 설명되는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이분법적 구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장애인의 삶을 바라봄에 있어 개인적이나 사회적인 것만이 아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그의 주변 환경, 배우고, 일하고, 생활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 맥락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기능으로 보는 관점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장애와 관련된 이전의 연구들에서는 장애가 미치는 영향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다룰 뿐만 아니라 이들의 상실, 능력의 감퇴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후천적인 중도장애인들이 선천적인 장애인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이는 중도장애가 발생하게 되면 장애 발생 이전과는 다른 신체적・심리적・정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신체상의 변화라 할 수 있는 외부요인 뿐만 아니라 가치관을 포함하는 개인의 내적요인에 대한 적응이 필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부적응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러한 반응들이 더 심한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장애를 갖게 되므로 인해 장애 발생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어려움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긍정적으로는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발달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능력은 오히려 개인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뒷받침이 될 수 있다. 즉, 장애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기만 한 경험이기보다는 삶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후의 긍정적 변화라 함은 이전과는 다르게 대인관계가 깊어지고, 장애 이후 스스로 자신의 취약성을 지각하지만 자신의 내적 강점에 대한 확신도 역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의 변화도 일어나고, 개인의 영성이나 실존적 변화도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삶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삶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다가온 장애에 대한 경험이 모두 부정적이거나 혹은 모두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중도장애로 인한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하나가 나타나면 어느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이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고 교차적으로 경험될 수도 있다.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욕구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경험을 하지도 않는다. 일정부분은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지만 모든 경험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같은 장애유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같은 경험을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같은 상황, 같은 장애 유형이라 할지라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고, 상황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 사회 내에서 경험하는 모든 상황들도 동일하지 않기에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도 개개인마다 달라질 것이므로 각각의 경험들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정적 경험을 어떻게 상쇄시킬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긍정적 변화가 각 개인이 가진 특성이나 환경 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나타나는지를 보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선적으로는 자신의 장애를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으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장애정체성을 갖는 것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인 레질리언스(resilience)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정체성과 레질리언스는 개인의 내면적인 부분이지만 실제 사회와의 관계에서 형성되고, 발전되므로 사회적 환경과 장벽들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들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또한, 일을 통한 참여의 경험과 경제적 자립, 그러한 가운데 긍정적인 메시지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과 관련 제도들의 개선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심리적이고 사회 환경적인 문제들에 의해서 장애인들의 자기인식이나 사회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양한 수준의 개인 내・외적인 경험들을 모두 수용하여 각각의 영향과 그 영향이 주는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논의하고, 대처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내려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경험들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경험을 이해하려 하고,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개인마다 가진 고유한 특성, 환경적 요인들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형태의 경험 그리고 그것이 장애의 경험과 관련되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들여다보고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여건들과 환경, 특성들을 발견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장애인의 손상이나 기능, 개인적 차이를 고려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손상 그 자체에서 오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 개인차에 의한 경험들을 포괄할 수 있는 연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정책적 방안들이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향후에는 이러한 경험들을 포괄한 장애학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본 기고는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중도장애인의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연구(2013)’의 일부를 발췌・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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