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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스토리텔링, 장애인의 스토리텔링

공영방송의 스토리텔링 :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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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EBS〔역사채널e〕에서 방송하고, 방송 내용들을 「역사2」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그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읽어보면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었다는 내용이 전개되는데,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를 이상향으로 조명한다.

“조선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없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갔고, 국가도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위한 정책 수립과 운영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양반 계층의 장애인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며, 각자의 능력에 맞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비장애인과 함께 일을 하였다. 또한 예술방면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며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의 대한민국도 표면상으로는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국가는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여러 조직들을 구성해 시행착오를 거쳐가면서 지원정책들을 끊임없이 제안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능력에 따라 사회 곳곳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을 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또 예술 방면에서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장애인들이 있는데, 이들의 사연은 종종 신문 등의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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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역사채널e] 2013년 1월 25일 방송

하지만 조선시대에 자립이 가능한 장애인과 자립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이 있듯이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생존의 위협을 받는 장애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사각지대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장애인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과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장애인들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기에는 애매하게 성장하고 비장애인의 세계에 편입돼 차별을 덜 겪는 삶을 영위한다. 또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비범한 입지전적 인물로 거듭나기도 한다.

명재상 채제공 vs 장애인 채제공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의 지난 시대에 대한 칭송은 계속된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이더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관이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벼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장애인’이란 명칭조차 없었던 조선시대는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겼다고 역설하면서도 교육정신으로 충만한 공영방송은 세상에서 버림받지 않은 그들이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 친절하게 일일이 가르쳐준다. 조선 초기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척추장애인 허조,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간질장애인 권균,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지체장애인 심희수, 영조 때 대제학과 형조판서에 오른 청각장애인 이덕수, 영ㆍ정조 때의 명재상인 시각장애인 채제공, 장애인으로 태어나 생육신이 된 권절 등을 줄줄이 나열한다. 그런데 이 ‘장애인 관료’들 중에서 익히 들어본 이름이 있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역사채널e을 통해 조선 역사에 등장하는 이 관료들이 ‘질병’을 가졌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공영방송의 이 낭만적이면서 일말의 의문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스토리텔링은 다음에서 정점을 찍는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장애인 관료들의 신체 결함을 언급하는 내용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장애인 관료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데, 교육방송은 궁금하면 스스로 찾아보라는 듯이 숙제를 남기고 다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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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제공 73세 초상> 사복본. 1972년에 이명기가 비단에 그렸고 현재 수원화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조가 불세출의 인물이라고 표현한 ‘시각장애인’ 채제공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할아버지 영조와 손자 정조의 신임을 받으면서 50여년 동안 조정의 요직들을 두루 거친 채제공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정조실록」에는 채제공이 권모술수에 능했고, 외모는 거칠어 보였지만 속마음은 실상 비밀스럽고 기만적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채제공이 매번 연석에 올라가서는 웃으며 말하고 누구를 헐뜯거나 찬양하는데 있어 교묘하게 임금의 뜻을 엿보았고, 물러가서는 임금의 총애를 빙자해 은밀히 사적인 일을 성취시켰다고 한다.

명재상 채제공의 스토리텔링과 장애인 채제공의 스토리텔링은 확연히 다르다. 이제 우리는 진중하고 엄격해 보이는 한 관료의 초상화에서 교활하면서 장애(조선시대에는 ‘질병’이다)까지 있는 한 문제적 인간을 대면하게 된다. 정조가 하사한 부채와 향합(향을 담는 용기)을 양손에 쥐고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임금님의 은혜. 부채도 향합도 임금님의 은혜. 온 몸 꾸민 장식품이 뭔들 은혜가 아니리오. 부끄럽게 무능한 몸, 은혜 갚을 길이 없네”라고 스스로 시를 짓고 초상화를 남긴 이 73세의 정치인이 후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한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나는 임금에게서 버려지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까.

세상에 버려지는 사람들은 있다.

조선시대에 비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하는 공공연한 편가르기와 배제가 드세졌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장애인에 대해서만 유별나게 차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조선시대의 신분제에서 장애인들이 노비들과는 달리 인권의 사각지대에 버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조선이 우리가 복원해야 할 공동체라고 할 수는 없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견고한 사회이고,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하가 일상화된 민족이다. 또 싱글들의 사연을 들으면 우리는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호기심 지옥 사회이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차별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회이다. 가히 총체적 폭력사회, 무개념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사회의 한 단면에서 벗어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는 공공연하게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공동체의 암묵적 동의와 무관심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 중에는 장애인들도 포함된다.

문명사회라고 하지만 현대 역사에서도 장애인들은 버려야 할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존재했다. 나치가 지배하던 시기에는 유태인, 동성애자, 집시들과 같이 사회에서 영구 제거되어야 하는 표적으로서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은밀하게 집단학살되었고, 이들에 대한 추모기념비는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에 이어 2014년에야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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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의 장애인학살프로젝트 T4를 추진한 본부 자리에 세워진 추모비

장애와 장애인. 그 사이에서의 스토리텔링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면 곧 ‘장애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면서 다름에 대해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 사회는 끝끝내 장애와 인간을 분리해내지 못한다. 때문에 장애인의 스토리텔링은 장애와 인간을 분리하지 못하는 태생적 결함으로 늘 똑같은 덫에 걸리고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장애인 차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에게 지금의 사회보다 조선이 더 괜찮은 세상이었을 것이라고 호도하는 맹랑한 역사인식에 근거한 스토리텔링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거기서 받은 감동을 사람들은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장애인에게서 장애를 거두어내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이 아닌, 장애와 인간을 분리불가의 합일체로 결합한 장애인의 스토리텔링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내면화한다.

장애의 스토리텔링과 장애인의 스토리텔링, 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사람에게 “죄는 미워할지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말을 비틀어서 “장애는 차별할지라도 사람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답해주면 그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을까.

작성자홍영주 디자인소조아시아 기획이사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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