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맞춤형 서비스(tailored services)?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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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슈-맞춤형 서비스(tailored services)?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이명박 정부에서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내세우고, 박근혜 정부도 복지정책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맞춤형 복지는 모든 복지영역에서 주요 화두가 됐다. 또한 맞춤형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올해부터 정부는 국민중심 맞춤형복지 전달체계로 ‘읍면동 복지허브화’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18년에는 모든 읍면동을 복지 중심축으로 변화시켜, 정부가 복지가 필요한 사람을 먼저 찾아가 복지대상자를 발굴해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복지사각지대가 존재하다보니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찾아 읍면동이 먼저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일면 좋아 보인다. 하지만 ‘맞춤형’을 어떻게 정의하는 지에 따라 이용자들의 삶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맞춤형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서비스 맞춤형과 사람 맞춤형이 있다. 서비스 맞춤형의 기본 전제는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현재의 모든 서비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합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이용자를 제대로 사정(평가)하고, 개인에게 적합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서비스를 만들어 낸 전문가들이 그 서비스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그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맞춤형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용자가 전문가를 속이는 일이 발생하면, 즉 조금 더 아파보이게 행동하거나, 전문가가 사용하라고 지정해 준 범위를 벗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부정수급이 되고 도덕적으로 나쁜 장애인이 된다. 따라서 서비스에 대한 통제의 권한은 전문가에게 있는 것이고, 이용자들은 전문가들의 간택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서비스가 개인의 욕구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서는 서비스를 더 세분화해 만들어 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활동보조서비스는 신체활동지원, 가사활동지원, 사회활동지원의 필요도에 따라 전체 총량이 결정되고, 총량이 결정되면 이용자가 알아서 시간 배분을 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장애인이 신체활동지원 20시간, 가사활동지원 30시간, 사회활동지원 30시간이 필요한데, 신체활동지원에 40시간, 사회활동지원에 40시간을 사용하고, 가사활동지원을 한 시간도 사용하지 않아 집안 꼴이 엉망이 된 경우, 전문가들은 엄격하게 사정평가대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 이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정도구가 필요하고, 서비스 세분화에 맞춰 사정도구의 정밀화가 필요해진다. 결국 정부는 맞춤형이라는 철학아래 활동보조 시간을 조금 더 세분화시키고 이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장애인이 정확하게 그 시간대로 살도록 제도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에 사람의 욕구를 맞추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어떻게 매월 동일하게 80시간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는가? 여름에 2박3일 휴가 갖다오면 72시간 사용하고, 그러면 나머지 28일 동안 8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만 이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장애인은 휴가를 가면 안 된다. 그런데 장애인도 휴가가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중증장애인도 여름에 피서를 한번 갔다 오는 게 정상적인 또는 일상적인 삶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을 받는 사람의 삶까지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 즉 국가 또는 국가의 위임을 받은 전문가가 통제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자원을 재분배해 지원해 주는 선까지 이다. 이후 지원을 받아 삶을 통제하는 것은 장애인 본인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시민권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또는 국가의 위임을 받은 전문가가 통제하는 삶은 온전한 시민이라 할 수 없다. 아무리 편하게 산다고 해도 이류시민 또는 유사인간, 심지어 동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의사결정, 이동 등에 도움이 필요할지라도 그들의 삶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대신 나의 삶을 통제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는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적격성을 판단하고, 실제 필요한 서비스는 본인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 본인의 삶을 위해 우리가 아직 사회서비스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서비스까지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장애인들의 욕구에 맞출 수 있는 서비스를 모두 개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개인별로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 맞춘 맞춤형 서비스라는 것은 개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서비스 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당사자가 갖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맞춤형을 서비스 맞춤형으로 생각하겠지만, 장애인들이 바라는 맞춤형은 사람 맞춤형이다. 그게 훨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원을 받는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맞춤형은 사람 맞춤형인 것은 명확하다. 결국 맞춤형 장애인복지서비스 급여체계구축이라는 말은 과거의 제공자 중심의 장애인서비스 복지체계에서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무엇인가를 지원한다고 해서 장애인 당사자를 수동적 존재로,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지원을 받되 그 지원을 장애인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장애인 맞춤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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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전정원님의 댓글
전정원 작성일
저희 아이는 경계성 장애를 가진 아이입니다.
일반초등학교에 통합반으로 다니고 있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들의 왕따 혼자된 고립감으로 심적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까지 온 상태이고요
지역이 고양시인데...서울에는 서울시에서 지원받아 위탁교육을 하는 대안학교가 있는듯한데
제가 사는 지역에는 딱히 경계성 아이들이 갈만한 학교가 없네요
그렇다고 경진, 명현 같은 중증장애 아이들에 속하지도 않고 일반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제 주변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엄마들의 하나같이 하는말은 고양시에도 특수학교가 아닌 경계성이나 사회성이 안되는 아이들이 마음편히 다닐수있는 대안학교가 생기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대안학교가 있지만 금액적인 부담으로 보내지 못하고 또 경계성 아이들이 적응하기도 쉽지 않더군요~
아이가 학교는 좋고 가고싶은 곳인데 친구들이 싫고 슬프고 외롭다고,,,점점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로써 학교를 그만둬야할지...어떤 선택을 해주어야 좋은지 답답해서 몇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