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가 아닌 사람 엉덩이에 교통카드를? > 이슈광장


단말기가 아닌 사람 엉덩이에 교통카드를?

장애인 이동권 연재

본문

 
지난 호 ‘장애인 이동권 연재’에서 시각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시각장애인이 또 다른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며 겪는 어려움을 취재했다. 지하철과는 체계가 다른 버스를 이용하면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맹 시각장애인 안승준 씨와 저시력 시각장애인 박철민 씨의 인터뷰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어려움 1. 버스번호 구분
시각장애인이 기차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지원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탑승해야 하는 곳과 좌석까지의 안내는 물론 하차하는 곳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버스는 그런 지원인력 시스템이 기차나 지하철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기차나 지하철로만 갈 수 없고, 버스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도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 할 때가 있는데, 앞을 잘 볼 수 없는데 지원인력도 없으니까 원하는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안승준 “아무래도 타려고 하는 버스의 번호 구분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번호를 어떻게 구분해서 확인을 한다고 해도, 버스 정류장에 여러 대의 버스가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중에서 해당 버스를 타려고 하기 전에 그냥 가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또 요즘은 정류장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고 중앙차로에 정류장이 있는 경우도 있는 등 굉장히 다양한 모양으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정류장을 찾는 것도 힘들어요.”
 
버스 어플을 통해 타고자 하는 버스가 분명히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정류장에 두 대 이상의 버스가 같이 들어오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 시각장애인이 정류장에 서 있어도 그의 앞에 멈추는 버스가 타고자 하는 버스일 수도 있고 그 버스의 뒤에, 또는 그 뒤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타고자 하는 버스가 두 대 이상의 버스 중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또 이젠 정류장이 인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도로의 중앙선 부분에 따로 만들어둔 경우도 있다. 안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섬처럼’ 된 그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을 시각장애인이 익숙한 곳이 아닌 이상 혼자 찾아가기가 매우 위험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다양한 버스의 노선과 도로 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중앙차로에 버스 정류장을 두는 방법이 이상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그런 도로 디자인은 사고에 대한 위험을 야기시킬 수 있다.
 
 
박철민 “저시력인 제 눈에는 버스의 ‘앞’에 적힌 버스의 번호가 잘 안 보이고, 버스 ‘옆’에 크게 적혀 있는 번호가 더 잘 보여요. 그래서 저는 보통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정류장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기다리다가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올 때 버스 옆의 번호를 확인하고 버스를 타요. 그런데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버스가 멈추니까 제가 원하는 번호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 정류장에 사람이 서 있지 않으면, 저도 정확하게 정류장에 서 있지 않으니까 버스 옆의 번호를 제대로 확인하기 전에 버스가 그냥 가 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박 씨에 의하면 전국의 시내버스는 버스마다 번호가 적힌 ‘디자인’이 다 다르다고 한다. 어떤 곳은 번호가 버스의 앞바퀴 옆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데, 또 다른 곳은 버스의 앞문 옆에 적혀 있기도 한다. 또 숫자의 크기와 색깔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역에서 버스를 탈 때는 번호가 어디에 적혀 있는지를 찾느라 한동안 애를 먹기도 한단다. 대부분의 버스는 그런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기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안승준 “버스의 번호 구분이 어려우니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정류장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정류장에 있는 사람이 저랑 같은 버스를 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먼저 가버리는 경우도 있고, 괜히 저 때문에 더 기다리게 하면 저도 부담이기도 해요. 그래서 어플을 활용해서 버스가 오는 것을 예상하기도 하고 정류장에 음성으로 안내하는 기능이 있는 곳도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다 활용하더라도 결국에는 ‘운’에 기대야 해요. 버스마다 물어보기도 해야 되고 잘못 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꼭 버스로 가야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각장애인들은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운 좋게 한 번에 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씩 기다려야 한다. 운 좋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타거나 아니면 운 좋게 본인이 잘 구분해서 탈 수도 있다.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대중교통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한민국 시각장애인들은 ‘운’에 기대서 버스를 타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어려움 2. 단말기의 위치 찾기
운 좋게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요금을 지불해야 하므로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어야 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단말기의 위치를 정확히 찾기가 쉽지 않다. 서울지하철은 각 호선마다 단말기의 단말기 찍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시각장애인이 충분히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만큼 대부분 단말기가 비슷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버스 단말기는 버스마다 위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안승준 “버스를 타면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잖아요. 그런데 버스마다 단말기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단말기를 찾아서 찍으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의 엉덩이에 찍기도 하고,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기도 해요. 그러니까 버스 단말기의 위치가 표준화되는 것도 굉장히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단말기의 위치 하니까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눌러야 하는 벨의 위치도 버스마다 달라요. 그래서 벨의 위치를 찾을 때도 한참 더듬거릴 때가 많아서 불편하죠.”
 
박철민 “한번은 버스를 타면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빈 자리에 앉았거든요. 버스가 출발했다가 얼마 안 가서 멈췄어요. 다음 정류장에 도착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버스 기사가 저한테로 오시더라고요. 교통카드가 단말기에 찍히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으면 단말기에 찍혔다는 ‘표시’가 뜨는데, 그걸 제가 제대로 보지 못하니까 이런 경우가 한번씩 생기게 돼요.”
 
단말기도 모양이나 디자인이 버스마다 조금씩 다른데,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단말기의 위치를 확인했더라도 ‘교통카드를 찍어야 되는 위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박 씨의 경우 교통카드의 잔액이 나오는 단말기의 부분에 카드를 찍어서 제대로 찍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찍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버스 이용,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안승준 “버스가 정해진 위치에 딱 설 수 있도록 하거나 시각장애인이 정류장에 있다는 것을 버스기사에게 미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보통 사람이 다 타면 버스가 바로 출발하는데 시각장애인은 버스를 탄 뒤 빈 좌석을 찾거나 균형을 잡고 서 있을 위치를 찾는 등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자리를 잡은 다음에 버스가 출발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박철민 “저시력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지역마다 버스의 디자인이 다르다는 게 큰 불편한 점 같아요. 원하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의 번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역마다 버스의 번호 디자인이 달라지니까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구분하고 적응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거죠. 솔직히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색을 버스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런 부분도 이해하거든요. 그렇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편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버스 번호 디자인만큼은 하나로 통일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류장에 서 있는다고 해서 원하는 버스가 시각장애인 앞에 반드시 서지 않듯이, 버스에서 내릴 때도 반드시 정류장에서 하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로나 신호의 상황에 따라 정류장에 미처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차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시각장애인에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된다. 이렇게 정류장이 있더라도 그 정류장에 버스가 정확하게 서지 않을 수 있고, 버스 번호의 디자인이 다양하고, 버스 단말기위 위치도 다양하다는 등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버스는 너무 큰 변수들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기술적인 부분이 발전하더라도 한 정류장에 여러 대의 버스가 서게 되면 시각장애인은 버스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안 씨의 말처럼 정류장에 같이 있는 사람이 몇 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도와주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또한 버스기사도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타는 경우에는 시각장애인이 버스에서 균형을 잡은 후에 버스를 출발시키는 등의 ‘감수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장애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기술적인 어플 없이 모두가 더불어 사람 냄새나고 정겹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이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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