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와 거주 환경, 폭 넓은 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다
모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거주 환경
본문
다양한 거주 환경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정신장애인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 환경은 ‘살 곳’, ‘갈 곳’, ‘머물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 곳’은 말 그대로 ‘살고 있는 장소’, 집 그 자체를 의미한다. ‘갈 곳’은 영화나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이나 카페, 식당 등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라 볼 수 있다. ‘머물 곳’은 어떤 지원이나 도움이 있어서 오랜 시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현재 사회를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은 살 곳, 갈 곳, 머물 곳을 끊임없이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에게 있어 살 곳, 갈 곳, 머물 곳은 충분한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코로나19로 인해 갈 곳 없는 요즘이라지만, 코로나19 이전에도 정신장애인이 살 곳, 갈 곳, 머물곳은 충분하지 않았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조례를 조사하여, ‘정신이 박약한 자’는 문화시설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제들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 문화시설 뿐만 아니라 대학교 기숙사, 의회방청, 심지어 복지시설도 정신장애인의 이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차별을 당하는 정신장애인을 위해 그만큼 더 많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장애’라는 영역은 고쳐야 하는 ‘질환’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에, 장애인복지와 무관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복지영역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경험하는 거주 환경에서의 다양한 차별은 ‘장애’ 때문이 아니라 ‘지원 정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거주 환경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정신장애인이 거주 환경(살 곳, 갈 곳, 머물 곳)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차별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살 곳은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의미하며, 주로 주거 점유와 관련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갈 곳은 다양한 장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에, 접근성과 물리적 환경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머물 곳은 살 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기 위하여 필요한 지원들을 뜻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들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개선방안들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안정적으로 살 곳을 박탈당한 정신장애인
정부는 장애인의 살 곳 마련을 위해 공공임대아파트를 지원하고 있다. 공공임대아파트는 최소 10년 최대 60년동안 거주할 수 있기에, 입주 확정이 되면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이 공공임대 아파트에 거주한다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공공임대아파트에 거주하다가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어렵게 입주한 공공임대아파트를 포기해야 한다. 즉, 시설입소와 공공임대아파트 입주권 둘 다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시간이 흘러 이들이 시설에서 퇴소를 하면 또 다시 살 곳을 찾아야 한다.
공공임대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각해보자. 정신장애인은 주로 혼자 살기 때문에1) 공공임대아파트 우선순위에 밀려 입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공임대아파트 입주에 거부당하면, 높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고시원이나 지하방에서 삶을 이어나가게 된다. 모든 정신장애인이 열악한 환경의 고시원이나 지하방, 쪽방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 환경은 정신적인 부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정신장애인은 시설에 입소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은 시설과 주거지를 왔다갔다 하면서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적인 거처에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병원 입원이나 시설 입소로 인해 장기간 집을 비우면 이웃들은 정신장애를 이유로 마을을 떠나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이에 정신장애인은 비자발적으로 살 곳을 찾기 위해 떠날 수 에 없다.
결국, 정신장애인에게 있어 ‘안정적으로 살 곳’이란,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안정적으로 살 곳은 삶의 다양한 문제들이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주거우선 정책(housing first)’, 유럽의 ‘주거주도 정책(housing led)’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정신장애인은 시설 재입소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퇴소 이후의 삶을 고려하여 이들의 살 곳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살곳을 우선 지원하고 살 곳을 기반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시설 재입소를 예방하고 살 곳 주변의 지원기관을 통해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갈 곳이 부족한 정신장애인
정신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이 부족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정신장애인을 배제했기 때문에 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주로 갈 곳이라 함은, 먹고 놀고 쉴 수 있는 일상생활의 필수 인프라이다. 이는 곧 생활SOC(생활밀착형 사회기반시설)를 의미하는데, 최근 정부는 국민들의 편익 증진을 위하여 생활 SOC 사업 가이드라인을 개발하여 배포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돌봄, 체육, 문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을 조성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도보 5분, 길게는 30분 이내의 위치에 생활SOC 시설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생활SOC시설이 설치되어야 함은 지당하다. 그러나 이용시설이 정신장애인의 입장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신이 박약한 자'는 문화시설과 같은 다양한 시설에서 입장을 제한받는다. 이러한 악조건을 없애지 않는 한, 다양한 생활SOC 시설들이 집 주변에 가깝게 위치한다 한들 입장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내 다양한 곳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정신장애가 악화되어 외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 조사에 의하면 주거 외 거처인 열악한 공간에 사는 정신장애인의 비율은 다른 장애유형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연구들은 매우 많은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은 정신장애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러한 영향이 장기간 누적되면 일상을 살아가는데 어렵게 만들 수 있음을 유추 할 수 있다. 실제로 고시원이나 쪽방, 반지하에 거주하다가 우울이나 불안의 증상이 악화되어 시설에 입소하게 된 정신장애인의 사례를 다룬 기사들이 간혹 발견되기도 한다.
장애인의 삶과 물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여러 지자체는 주거공간과 도시 곳곳에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아래 UD)을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을 의미한다. UD는 7가지 원칙으로 구성되는데, '공평한 사용', '사용의 유연성',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쉽게 알 수 있는 사용정보', '사고방지와 오작동에 대한 포용', '최소의 신체적 부담',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크기와 공간'이 있다. UD의 원칙을 살펴보면, 정신적 장애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신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물리적 환경 구축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머물 곳이 부족한 정신장애인
정신장애인에게 머물 곳이라 함은, '집' 그 자체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정신장애인이 한 집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가? 정신장애인이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지역주민들이 이주하라며 항의하는 일들은 간간히 볼수 있기에, 이것만으로도 정신장애인은 한 곳에서 오래 머물기 어렵다. 이러한 사례처럼, 정신장애인의 머물 곳이 부족한 이유는 정신장애에 대한 몰이해가 큰 몫을 한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정신장애인의 일상을 지원하는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현재, 장애계에서 자립생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오랜 시간 시설에서 거주하다가 지역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자립생활 지원은 발달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추어 져 있어 정신장애인이 이용하기에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이 독립을 위해 주거를 마련할 때 누군가 동행해서 매물을 본다거나 계약을 진행한다거나 하는 등의 지원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들이 집을 구해 독립한다고 하더라도, 주거환경이나 일상생활 관리에 대한 지원 또한 부족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독립하여 거주지에 머물기도 어렵다. 간혹 주거복지지원센터가 관련 사업을 운영하기도 하나, 주 이용자는 발달장애인으로 정신장애인이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외에도 독립하여 살아가는 정신장애인에게 약물 및 스트레스 관리, 심리 지원 등 정신장애와 관련된 일상생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자립지원센터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일까? 정부의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별도의 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존의 자원을 활용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 상황에 적합해 보인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의 주요 지원기관인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기에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인력을 추가 채용하여 정신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할 수 있겠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매칭되는 주거코치처럼, 정신장애인도 자립지원인력과 매칭하여 이들이 정신건강을 관리하고 있는지, 자립에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논의하고 자원을 연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인력의 추가 채용이 어렵다면, 이웃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인천의 한 거주시설은 발달장애인의 자립 지원을 위하여 주변 이웃 3-4명을 발달장애인과 매칭하여 주거환경 관리, 요리, 장보기 등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웃이 발당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것과 이웃과 관계 형성을 통해 장애인의 고립과 소외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의 자립지원프로그램은 주로 가사 코치에만 집중하고 있어, 사회적 관계 확장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이웃 자원을 활용하여 사회적 관계를 확장함으로써 정신장애인이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집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집이 사람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인터넷 기사에서 발췌한 한 전문가의 말이다. 이 말은 곧, 정신장애인이 집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들의 욕구와 생각을 집에 담아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 정신장애인에게 맞출 수 있으려면, 거주자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곳’, ‘내가 심심할 때 놀러갈 수 있는 곳’,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곳’이 만들어져야만 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영화관, 미술관, 체육관, 병원, 친구 집을 갈 수 있어야 하고, 오랜 시간 한 마을에 머물면서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들어 ‘정신장애인복지관’, ‘정신건강친화마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중심으로, 그동안 거주 환경에서 차별당해왔던 정신장애인들의 애환이 보상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정신건강친화마을, 정신장애인복지관이 정신장애인만을 위한 고립된 곳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며 많은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는 마을이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작성자글. 남지현/(주)밀리그램디자인 연구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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