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하고 조직적인 협약 위반에 대한 직권조사
본문
글. 김소영/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국제협력 담당
제6조
1. 당사국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중대하고 조직적으로 침해하였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위원회에 접수된 경우, 위원회는 당사국에 정보 조사에 협조할 것과 정보에 대한 당사국의 견해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2. (…) 근거가 충분하고 당사국이 동의하면, 조사는 당사국의 방문을 포함할 수 있다.
3. 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심리한 후 이 결과를 논평 및 권고와 함께 당사국에 전달한다.
4. 당사국은 위원회로부터 조사 결과, 논평, 권고를 전달 받은 후 6개월 이내에 자국의 견해를 위원회로 제출한다. (…)
제7조
1. 위원회는 본 의정서 제6조에 따라 수행된 조사와 관련하여 취해진 모든 조치의 상세한 내용을 협약 제35조에 따른 보고서에 포함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또는 협약) 선택의정서의 제6조와 제7조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의 당사국 직권조사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직권조사제도(Inquiry)는 개인진정제도(Individual communication)와 함께 당사국의 CRPD 이행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유엔에서 발간한 한 자료에 따르면, 직권조사제도가 개인진정제도와 비교하여 갖는 특성은 △공식적인 진정 접수 없이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조사가 시작될 수 있고 △중대하고 조직적인 권리의 침해가 발생한 경우 사용 가능하며 △피해자가 특정되거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중대한(grave)’ 위반은 누군가의 생명이나 완전함,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을 의미하며, ‘조직적인(systematic)’ 위반은 규모와 빈도가 상당한 경우를 의미하며, 특히 법률·정책·관행 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권조사제도(Inquiry)의 과정
직권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위원회가 당사국의 중대하고 조직적인 침해에 대한 신뢰할만한 정보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로 당사국의 NGO이다. CRPD뿐 아니라 다른 조약기구들, 예를 들면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사회권규약위원회 등도 주로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직권조사에 대한 최초 정보를 받게 된다. 위원회는 수신한 정보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 추가로 정보를 수집한다. 다음으로 △위원회는 당사국에 협조를 요청한다. 위원회가 앞서 수집한 정보를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당사국에 이와 관련하여 정보나 의견을 추가로 제출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이어서 △위원회는 조사 담당 위원 혹은 그룹을 지정하고, △담당 위원은 조사를 실시한다. 필요한 경우 조사를 담당하는 위원들은 당사국의 동의를 받아 당사국을 직접 방문할 수 있다.
당사국을 방문하면, 위원들은 중대하고 조직적인 권리침해를 받은 장애인당사자, 정부 관계자, NGO 관계자, 법조인 등 수많은 사람들과 직접 인터뷰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다음으로는 △위원회의 조사 결과·의견·권고를 당사국에 제출한다. 그러면 이 보고서에 대해 △당사국은 6개월 이내에 당사국의 의견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조사 과정은 비공개지만, 위원회나 당사국의 보고서·의견서는 유엔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마지막으로 △당사국이 권고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는데, 위원회는 당사국에 조사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당사국의 국가보고서 제출 시 보고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조사가 실시되고 나면, 당사국은 정기적으로 국제 인권전문가의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직권조사제도(Inquiry) 활용 사례
2006년 협약이 채택되고 2008년 발효된 후 현재까지 선택의정서의 조사제도를 활용하여 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국가는, 유엔 웹 사이트를 참조하였을 때 영국, 스페인, 헝가리, 총 3개국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영국의 직권조사는 제19조(자립생활과 지역사회에의 동참)·제27조(근로 및 고용)·제28조(적절한 생활수준)와 관련한 조사였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는 2015년 10월 영국을 방문하여 200명이 넘는 장애인당사자와 공무원, 단체 관계자 등을 만났다. 위원회는 영국 당국이 실시하고 있는 복지개혁이 장애인이 받고 있는 다양한 사회연금을 상당 수준 축소시킨다는 정보에 비추어, 당국이 협약의 제19조·27조·28조를 위반하고 있음을 밝혀냈고, 의견과 권고를 당사국에 전달하였다.
스페인 대상의 조사는 제24조(교육)에 대한 내용이었다. 스페인 조사 역시 위원회는 스페인을 직접 방문하였고, 스페인의 교육 시스템이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을 고수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장애인을 특수교육으로 분리하고 배제한다는 내용의 정보를 검토하였다. 관련한 유엔과 당사국의 보고서들이 당국의 제도·법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어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스페인과 영국은 유엔의 권고로 인해 본 사건이 권리의 침해임을 배우고, 유엔에 개선을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를 보고하고 있었다. 또한 과정에서 NGO·DPO 입장의 정보도 전달되고 있어, 당국의 권고 이행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 취득이 가능했다.
지난달(2020.10.13)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서 개최했던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및 실효성 강화 국제포럼’에, 직권조사제도 활용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헝가리 ‘발리더티 재단(Validity Foundation)’의 공동대표 ‘스티븐 앨런(Steven Allen)’이 참여했다. 유엔은 직권조사를 통해 헝가리가 제12조(법 앞의 평등)·제19조(자립생활과 지역사회에의 동참)·제5조(평등과 비차별)를 위반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헝가리에서는 후견제도를 통한 장애인의 권리 박탈이 계속되고 있으며(제12조), 시설의 유지·보수를 위한 국가의 예산 투자가 확대되고 있고 (제19조), 법·정책·관행 등 구조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기제가 여전히 존재(제5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앨런은 “비록 정부 답변서에 정부의 의지가 거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절차의 결과는 △국내법과 정책에 권위 있는 지침을 제공하고,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장애인과 활동가가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고 내용을 제시하며, △차별적-시혜적 정책의 중단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 전달로 이번 조사의 결과가 잘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개인진정제도와 조사제도의 권한을 모두 인정하는 선택의정서의 완전한 비준
지금까지 오스트리아·호주·스페인·영국·헝가리 사례에서 다뤄진 대중교통이나 선거 접근권, 특수교육을 빙자한 분리교육, 소득보장이 되지 못하는 연금제도,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성년후견인제도, 시설수용 중심의 중증장애인 보호정책 등은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주요 아젠다(의제, 안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도 협약의 인권 패러다임을 반영하여, 권리중심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CRPD 선택의정서 비준은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의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선언이어야 한다.
나는 <함께걸음>의 지면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강조하는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알리고, 협약의 실효적인 이행을 위한 각 당사국 NGO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가늠해 왔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연재를 읽고, CRPD에 대해 알게 됐다면, 1년간 이어졌던 나의 연재는 성공이다! 12개월 동안 이어졌던 연재는 여기서 마치지만, 앞으로도 CRPD와 선택의정서를 알리고 활용하는 일은 계속해 나갈 것이다. 시혜에서 권리로, 모두의 시선이 달라지는 날까지. Voice of Our Own(우리의 목소리로!)!
○ 참고자료
-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및 실효성 강화 국제포럼 자료집, 헝가리 발제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트레이닝 가이드, UN
알림 : 2019년 11월호부터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를 자세하고 폭넓게 소개해 주신 김소영 님의 기고는 이번 11월호를 끝으로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다시 돌아옴을 약속하신 김소영 님께 감사드리며, 더 나은 지면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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