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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았다, #살아있다 대한민국 탈시설운동의 역사 다시 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15주년 맞이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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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이라는 일상 표현이 있다. 무모함 그 자체인 줄 알면서도 뭔가를 시도하고 도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 표현에 가장 적합할 조직이 출범 15주년을 맞이했다. ‘옥순·준민·소연·숙경·정하’로 상징되는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핵심 활동가 5명이 현장으로 뛰어나가 탈시설을 외친 지 15년, 대한민국 탈시설 정책의 수립과 환경 변화는 최소한 그들의 땀과 눈물을 빼놓고선 설명할 방법이 없게 됐다. ‘살아남았다’는 감회가 모두의 회고였다는 그들, 이젠 ‘살아있음’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15년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 이전에 자신들의 조직이 깨끗이 사라질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15주년을 응원하며, 그들의 발자취를 짧게 되돌아본다.  


이 세상에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한국사회 최초의 장애인 탈시설운동 중심의 시민사회단체(NGO),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는 장애에 대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사람 그 자체만으로 존엄하다는 가치를 실천한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의 목소리, 권리, 선택과 결정을 중심에 둔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힘으로 함께함을 실천한다.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은 인권을 보장하는 삶으로의 방향전환이기에, 이 길에 공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한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시설수용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5공화국 집권세력의 ‘거리청소’가 그 시작이었다. 사회정화의 명목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거리청소는, 단지 사회적약자라는 이유로 도시에서 밀려나야 했던 이 땅의 민중사(史)와도 그 맥을 함께한다.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양지마을의 등장은 사회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인 양 포장됐고, 그 이면에서 진행됐던 게 바로 일부 종교와 결탁한 ‘장애인 청소’였다. 전국 각지의 인적마저 드문 외진 곳에 장애인 수용시설이 들어섰고, 수용된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긴 인생을 박탈당해야 했다.
“폭력과 성폭력과 비리가 없는 곳이라 해도, 수용시설은 시설생활 그 자체로 인권침해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같은 시간에 기상해야 하고, 같은 시간에 식사해야 하고, 같은 시간에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고, 같은 시간에 소등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하루 24시간 매 순간 사람으로서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평생 시설 안에서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버림을 받고 모든 희망을 잃은 채 ‘있을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탈시설운동의 의미는 거대한 것이다.”
박옥순 발바닥행동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지워져 인권 자체가 배제된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알리는 일에서 탈시설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발바닥행동 결성 이전에 탈시설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1996년 에바다대책위, 2003년 조건부시설공대위, 2004년 성람재단대책위, 정립회관민주화대책위, 시설인권연대, 2005년 성람재단공투단, 시설민주화연대, 청암재단대책위, 인화학교대책위, 2008년 석암비대위, 석암공투단 등 비리시설과 비리재단의 문제는 연이어 곪아터지고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의 대립은 일간지 사회면의 한칸을 늘 채워놓고 있었다.
그런 시대상황에서 등장한 발바닥행동은 탈시설운동의 중심점과 지향점을 제시한, 대한민국 NGO역사에서 ‘맨땅에 헤딩’을 실제 증명한 보기 드문 사례로 기록될 일이다. 알고 있다 해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영역에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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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전직 현직 활동가들이 오랜만에 무대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는 모습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이젠 누구나 갈 수 있다
각종 수용시설의 문제점은 울타리 밖으로 드러나야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 말은 울타리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 간에, 밖에서 모르면 그 상태 그대로 수십 년이 지속된다는 뜻이 된다. 강제노동, 열악한 처우, 폭행, 성폭행, 구타에 의한 살인 등, 담장 안이 생지옥이라 해도, 정부의 대처는 언제나 관행처럼 미봉책으로 끝났다. ‘가해자 처벌→일부는 시설폐쇄→개별사건으로 종료→운영자 다시 시설운영’의 악순환은 끝없는 도돌이표로 반복되기만 했다.
형제복지원, 수심원, 양지마을, 소쩍새마을, 한국자립원, 무장애육원, 대전종합복지관, 신망애, 신아원, 믿음의집, 사랑의집 등, 언론에 등장해서 그 실태가 일부나마 알려진 곳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곳은 여전히 ‘담장 안’의 전혀 다른 세상일 뿐이다. 발바닥행동은 그 담장 안을 주목했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 ‘행동’했다. 발바닥행동의 첫 사업이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연구용역사업의 결과보고서 첫 머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시설이 인권침해의 온상이었음에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시설운영자·장애인의 가족·국민 등 4자간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었다. 정부는 거액의 예산을 들이거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고서도 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설의 인권침해문제를 외면한 채 침묵했다. 일반 국민은 손쉽게 별다른 부담도 없이 장애인들을 우리 주변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시설운영자는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왔다는 동정론에 기대어, 장애인들을 영리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장애인의 가족은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가 없는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장애인 가족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침묵했다.’
발바닥행동이 걸어온 길을 모두 설명한다는 건, 별도의 단행본 몇 권이 필요할 만큼의 길고도 깊은 내용들을 필요로 한다. 탈시설운동의 절실함과 절박함으로 시작을 하긴 했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든 게 난감한 현실이었을 때, 그들은 ‘행동’을 앞세워 수용시설들의 출입문을 직접 열고 들어감으로써, 문제를 발견하고 찾아내고 대안을 얻으며 해결책을 이끌어냈다. 다른 단체들과 발바닥행동이 비교되는 기준점이 그것이다. 생각하고 설계하며 기획안 문서작성에 공을 들일 그 시간에, 발바닥행동은 직접 행동함으로써 가장 확실한 해답을 가장 빠른 기간 안에 도출해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24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공간에서 진행된 15주년 기념행사에서, 발바닥행동 전·현직 활동가들은 수많은 기억을 쏟아내는 대신 ‘살아남았음’을 서로 자축하며 의미 깊은 시간을 참가자들과 함께 나눴다. 어떤 일에 착수하더라도, 그들이 실행했던 모든 작업은 전부 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었다. ‘지원주택’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되고 있는 요즘, 그들이 걸었던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은 이제는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길’로 열리고 있다. 그 모든 길바닥에 떨어져 새겨진 흔적들 모두 발바닥행동의 땀과 눈물이었음을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탈시설 당사자들로 일상의 거리에서 주민으로, 이웃으로, 동료로, 활동가로 마주치며 살아가는 얼굴들이다. 어쩌면 2020년 지금 이 시점까지 ‘단체행동’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이들인 것이다.
발바닥행동은 지난 15년과 같지만 완전히 새로운 15년을 새로 설계하겠다고 다짐한다.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과거의 장애인권운동 용어로 남겨지기를, 시설이라는 공간이 아예 없는 사회가 되기를, 그래서 장애와 인권발바닥행동이라는 조직이 축하와 환호 속에 해단식을 거행하는 날이 실제 오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지난 2018년 1월, 서울시는 서울특별시장 명의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권리 선언문’을 발표했던 바 있다. 탈시설이 공공의 영역에서 제도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대한민국 국회와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대한민국 장애인 탈시설 권리 선언문’이다. 발바닥행동의 다음 발걸음이 그 지점으로 향하고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들은 ‘행동’으로 직접 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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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행동의 15주년의 축하 자리에는 시와 그리고 허클베리핀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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