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누리 엄마를 위한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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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말 실종됐던 조은누리(14) 양이 11일 만에 군견의 도움으로 무사히 발견됐다. 지적장애 2급인 조 양은 어머니 등과 함께 동네 산을 오르다 벌레가 많아지자, ‘먼저 내려가겠다’고 한 뒤 사라졌다. 이와 같은 내용은 실종 신고를 한 어머니가 밝힌 말이고, 언론을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지적장애가 있는 자식을 어떻게 홀로 산에서 내려보낼 수 있는가?’ 라며 어머니를 비난하기도 했다. 또 실종 이후에 어머니가 너무나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내가 꼭 찾을 겁니다’와 같이 인터뷰하는 모습에, 일부 국민들은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아이를 일부러 혼자 보냈다’ 등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판의 요지는 ‘어떻게 장애인 자식을 산에서 집까지 혼자 내려가라고 하고 자신은 등산할 수 있는가?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라기엔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 아닌가? 자식을, 그것도 장애인 자식을 잃어버렸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모자랄 판에 너무나 의연하게 인터뷰하는 게 말이 되는가?’ 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이 오히려 장애인들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에 조양 어머니를 위한 몇 가지 대변을 하고자 한다.
등산 중에 지적장애 자식을 혼자 내려가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부모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 초행길이 아니라 동네에서 익숙한 길이었다. 이에 은누리가 잘 찾아가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혼자 내려가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은누리는 왜 길을 잃어버렸을까?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도 아주 익숙한 길에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잠깐 다른 길로 접어들면 당황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아마 은누리도 아주 잠깐의 방심으로 익숙한 길을 벗어났을 것이고, 이후 당황했거나 또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의해 길을 잃어버렸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통계조차 없어 영국의 ‘missing people’이라는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를 살펴보면, 지적장애인이 실종된 사례에서 15%는 교통편이나 길을 잘 알고 있던 상황에서 실종됐다고 한다. 익숙한 길에서도 얼마든지 실종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익숙한 길이라도 엄마가 함께 집으로 가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말이 성립하려면 지적장애인이 움직일 때마다 보호자는 항상 동행해야 한다. 그러나 동행해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사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살라고 하면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루를 살아도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 있는 삶이란 그냥 생명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자기 주도적으로,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항상 위험을 내포한다. 경험이나 발달은 반드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위험’의 개념을 잘 알 필요가 있다. 우리말로는 다 위험이지만 영어로는 몇 개의 단어가 있는데, 그중 리스크(risk)와 데인저(danger)에 대한 개념 파악이 필요하다. 리스크는 ‘삶의 기회와 발달에 도움이 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투자 리스크가 있다. 투자할 때 위험이 클수록 수익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즉 위험과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투자를 유치하는 펀드매니저라면 리스크에 대해 알려주면서 아마 당당하게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리스크가 발생하면 위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지원자는 리스크를 예방하는 전략, 리스크가 실제 발생 시 위해를 최소화시키는 전략에 대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 반면 데인저(danger)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위험’을 의미한다. 만 볼트 고압선에는 데인저 표시가 붙어 있다. 만 볼트 고압선을 만지면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하는 위해만 존재하지, 이를 통해 어떤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즉 데인저는 피해야 하는 위험이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인은 위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데인저만 회피한 것이 아니라 리스크도 회피했고, 이에 따라 리스크 제로(risk zero)가 됐고, 삶의 기회도 제로가 됐다. 결국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삶의 기회는 없고 시간만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적장애인을 잘 보호한다고 안전이라는 새장 속에만 가두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의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그저 생명만 연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은누리 어머니가 은누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놔 둔 것은 너무나 잘한 것이다. 오히려 은누리를 새장 속에만 가둬야 한다고 말하는 국민 인식이 문제다.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은누리 어머니도 실종 이후에 은누리에게 휴대폰을 진작 사 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여름방학 뒤로 약속을 미룬 걸 원망했다고 한다. 물론 실종 지점이 산속 깊은 곳이라 휴대전화 연결이 끊기는 지역이었으니, 이번 실종에 큰 도움이 안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길을 잃을 위험(risk)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는 부모의 몫일 수 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본인이 하고, 아는 길도 혼자 가도록 하는 위험을 촉진하면서, 지원자는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몇 가지 지원을 해야 하고, 그 지원의 하나로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 구매 자체도 위험할 수도 있다. 언론 보도에서 자주 보듯이 성관련 광고, 도박 사이트 등에 심취해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휴대폰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을 사용함에 따라 생기는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또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이 있더라도 위험을 촉진하면서 이와 같은 위험이 발생하지 않거나 위험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리 방법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모든 행위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부모 등 보호자는 끊임없이 위험 촉진 이후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야 함에 따라 힘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시행하자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애는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누구도 그 발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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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님의 댓글
김병민 작성일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