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상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 : 제5조 평등 및 비차별
본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 정책위원회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대한민국 정부 2,3차 병합심사를 앞두고 민간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최근 연구소에서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평등권, 생명권, 사법접근권 및 자유권 관련조항(5, 10, 12, 14, 15, 16조)의 이행상황과 개선방안을 UN의 권고사항과 질의목록을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연재합니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2014년 9월 30일에 채택한 ‘최종견해’의 제6항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를 2019년 1월 1일까지 제출하게 되어있다. 또한 최종견해 제6항의 내용에 따라, 국가보고서 제출 기한으로부터 최소 1년 전에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쟁점목록을 준비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8년 2월 14일부터 3월 9일까지 진행된 제19차 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에서, ‘대한민국 정부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 제출에 대한 사전 쟁점목록’을 채택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3월 ‘대한민국 정부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의견을 표명하였고, 민간기구인 ‘장애인권리협약 NGO연대’도 민간보고서를 발간하였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국가보고서를 중심으로 심의를 하지만, 심의를 위해 민간보고서 등을 활용하기 때문에, 민간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2020년으로 예정되었던 한국정부에 대한 심의가 2021년으로 연기되었기 때문에 민간 장애인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정부 보고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제5조 평등권 및 비차별 조항과 관련하여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제출한 쟁점목록은 다음과 같다.
● 4-a.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 확충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조치 및 방안에 대해 제시하시오.
● 4-b. 장애인 차별 피해자들이 법원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소송비용을 면제 또는 경감하기 위한 방안, 그리고 법무부의 시정명령 발부 요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제시하시오.
● 4-c.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효과적 이행의 필요성 및 법원에 부여된 중지명령권 행사의 필요성에 대한 법원의 인식제고 사업과 활동에 대해 제시하시오.
● 4-d.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통보받은 진정사건 중, 기타 진정사건의 비율과 비교하여 장애 관련 진정사건 비율 및 진정사유를 제시하시오.
● 4-e.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소송과 관련한 법률구조(legal aid) 통계를 제시하시오.
쟁점목록과 관련한 현재의 문제점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과 기능의 미흡, 법무부 및 법원의 장애인 차별 시정기능 미흡과 소송비용의 부담, 법원의 중지명령권 등의 행사에 대한 미흡한 인식, 정부 견제를 위한 NGO 기능의 부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점의 현황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1) (4-a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과 기능의 미흡
가. 진정사건 조사인력의 부족
가) 조사인력의 충원
정부 보고서에서도 장애차별 진정사건 조사관 인력 부족을 인정했다. 연간 5명 정도의 증원이 필요하나, 지난 3년 동안 1명의 증원만 있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진정사건 당 처리기간은 법에서 정한 기한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구제규칙’ 제4조(사건처리기한)에 따르면, 진정은 이를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2016년 1월 기준으로 진정사건 470건 중 276건(58.7%)이 처리기한인 90일을 경과했고, 148건(31.5%)이 6개월을 경과하였다. 2015년에는 진정사건 1건 처리에 평균 156일이 소요되었다(임성택 외, 2018).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 진정사건을 조사하는 인력의 충원이 필요하다.
나) 장애차별조사국으로의 개편
정부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 및 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차별시정국’을 신설하였다고 하였으나, 이는 장애차별 사건에 대한 조사 기능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차별 사건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고, 장애차별조사 1과와 2과를 차별시정국에 두었을 뿐이다. 또한 현재의 인원으로는 각 진정사건에 대한 조사만 하기에도 빠듯하고, 그 외의 세미나나 토론회, 이행상황관리, 모니터링까지 하기에는 더더욱 부족한 현실이다(임성택 외, 2018). 따라서 장애차별 진정사건에 대한 조사인력을 지금보다 상당히 확충할 경우 과단위 배치보다는 국단위 배치가 바람직하다. 이에 따라 “장애차별시정국”을 별도로 신설하고, 국 아래에 장애차별정책 및 연구, 교육, 모니터링 등을 담당하는 장애차별시정총괄과와 각종 차별사건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는 조사1과, 2과, 3과를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다) 장애인차별소위원회로 구분
국 단위를 넘어 소위원회 형태로의 전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른 차별과 다르게 장애차별은 「국가인권위원회법」뿐만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고 있다. 따라서 장애차별은 차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19가지 속성 중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입법 체계를 갖춘 비중이 다른 차별의 속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만큼 현재 우리사회에서 장애인 차별이 위중하고 시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영역별 소위원회가 있으며, 일인인권위원제도(One Commissioner)를 실시하고 있다. 즉 장애차별인권위원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으나 독립적으로 장애차별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며, 공동 사무처를 지휘, 감독한다. 각 주에는 각 차별분과별로 집행기구가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이동석·안선영, 2002).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내 ‘장애인차별소위원회’를 별도 조직으로 만들고, 현 위원 중 상근 위원을 장애 전담 위원으로 임명하여 전권을 부여하고, 관련 조직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나. 협소한 인권위원 자격
정부는 국가보고서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2016년 2월 3일 시행) 개정을 통해 인권위원 자격 기준 등을 마련하였고, 또한 인권위원 구성 시 양성평등 이념을 고려하였다고 밝혔다. 개정 법률에 따라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부교수 이상의 직이나 이에 상당하는 직에 10년 이상있거나 있었던 사람, 판사ㆍ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인권 분야 비영리 민간단체ㆍ법인ㆍ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등 인권 관련 활동에 10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 그 밖에 사회적 신망이 높은 사람으로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은 사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인권과 무관했던 사람이 정권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현장에서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학력이나 자격 외에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은 사람을 추가함으로써, 위원의 자격을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미 1호와 2호에서 부교수 이상, 법조인을 열거하였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학력이나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사회로부터의 교육배제 등에 의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현장에서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수많은 장애인권 운동가들을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구성이 기득권 세력, 다수자 등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인권위원회의 보수화는 예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권위원의 기준을 아예 삭제하거나, 부교수, 법조인과 같은 학력, 자격증을 명시하지 말고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 자로만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원 구성과 관련하여 특정 성이 10분의 6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였다. 성평등을 위한 올바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인권위원회 조직 중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19가지 요인 중 장애 관련 인력이 가장 많고 업무도 가장 많다. 그렇다면 위원 중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비율에 대해서도 법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지식, 인식도 중요하지만, 특정 차별에 대한 민감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뿐만 아니라, 장애 등에 따른 위원 비율을 정할 필요가 있다.
(2) (4-b 및 4-e 관련) 법무부 및 법원의 장애인 차별 시정기능 미흡과 소송비용의 부담
가. 소송비용에 대한 국가 부담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접 구제조치를 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에 그 시정을 권고하고,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는 활동 등을 통해 권리구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옴부즈만 형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옴부즈만 방식은 다른 구제 방법보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처리될 뿐 아니라 장애차별과 관련하여 보다 진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확실한 구제수단이 마련되지 못한 관계로 위원회의 결정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보다 앞서 장애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던 미국, 영국, 독일에서도 옴부즈만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에 따라 실질적인 구제수단이 미비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이동석·안선영, 2002). 이에 따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마련하면서 옴부즈만 형태를 유지하되, 법무부의 시정명령(제43조, 제44조), 시정명령 이행 감독(제45조) 조항을 추가하였다. 또 법원의 긴급구제(제48조), 손해배상(46조), 입증책임의 경감(47조)과 같은 조항을 추가함으로써 법원의 권리구제도 중요한 수단으로써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정부보고서에서 주장하듯,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법원의 소송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구제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는 국가의 보고는 사실과 다르다.
CRPD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최근 3년간 (2015-2017)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관련 소송으로 법률구조를 받은 사례는 1건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장애인 차별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나 법무부 시정명령 등 비사법적 구제수단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으나, 앞서 밝혔듯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리구제뿐만이 아니라, 소송의 전심으로써의 법무부 시정명령, 소송 단계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입법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법원의 소송을 통한 법률구조가 적은 이유는 비용의 부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차별구제 소송을 변호사 등의 도움 없이 진행하기는 쉽지 않고, 이에 따라 변호사 선임비용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별구제 소송은 손해의 입증이 어려운 경우 상대방의 이익을 손해로 추정하거나(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2항), 증거조사와 변론의 전 취지를 통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게 하는 등(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3항) 차별 구제를 구하는 당사자의 입증책임을 상당 부분 경감하여 주었으나, 여전히 차별로 인한 상대방의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나,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받기 위한 입증계획을 세우는 데에 법률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임성택 외, 2018). 반면에 차별적인 조치를 취한 상대방은 주로 고용주나 서비스나 재화의 제공자인 기업 또는 정부가 되므로, 정보의 양과 흐름, 비용과 시간의 투입 등에서 큰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차별구제소송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소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높은 난이도의 소송을 외부의 지원 없이 홀로 수행하거나 모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비법률가는 많지 않다(임성택 외, 2018).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선임 등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법리 정립의 초기 단계이므로 패소의 위험도 상당하며, 패소 위험을 부담하고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패소 시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과 같은 소송비용 부담이 소제기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임성택 외, 2018). 따라서 차별 구제 소송에서 소송비용의 면제 또는 경감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행법상 소송비용을 지출할 자금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신청 또는 법원의 직권으로 국가에서 소송비용을 대납하는 소송구조 제도가 존재한다(「민사소송법」 제128조)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자금 능력이 부족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장애차별 소송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다.
결국 자금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 장애인은 소송비용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데, 장애인 차별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장애인에게, 생애 전반에 걸쳐, 지역사회의 삶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있어 발생하고 있다(김용득 편, 2019). 즉 차별의 문제, 이에 따른 소송을 위한 비용의 문제는 모든 장애인의 문제인데, 소득이 적은 일부 장애인에게만 지원을 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정부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차별 사건에 대한 소송의 경우 자금 능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별구제 소송은 당사자 개인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소송비용을 국가가 한 개인에게 지원한다고 해서 한 개인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장애인 차별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을 소송의 전심 단계로 변화
앞서 밝혔듯이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옴부즈만 방식을 통해 차별구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경우 시정조치의 강제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법무부의 시정명령, 법원의 구제조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처럼 법무부의 시정명령이 2건에 불과할 정도로 사문화되고, 2015-2017년 3년 동안 법률구조를 받은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관련 소송이 단 1건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라면, 장애인 차별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리구제 방식에 대한 변경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리구제 방식 변경이 어렵다면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새롭게 만들고 이 위원회의 권리구제 방식을 소송의 전심 단계로 정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를 소송의 전심 단계로 보면, 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 경우 보다 확실한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피진정인이 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다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는 보수적인 법원에서 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하여 위원회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진정인이 다툴 경우에는 진정인이 최종적으로 구제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법원 판례에 귀속되어 진보적인 판결이 나오기 어려운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이동석·안선영, 2002). 그럼에도 현재와 같이 법무부와 법원의 역할이 미비하고, 이에 따라 장애인 차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위원회의 권리구제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
(3) (4-c 관련) 법원의 중지명령권 등의 행사에 대한 미흡한 인식
장애인이 차별당한 경우에 장애인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에 의하여 법원에 차별을 멈추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법원은 차별이 있었다고 판단하면 그 차별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고의과실의 입증책임을 전환하거나 완화하고 있지만, 이러한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민법상 손해배상은 여전히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만큼(민법 제763조, 제394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 인용되는 것만으로는 차별의 시정을 차별행위자에게 직접 강제하기에는 부족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도입된 것이다(임성택 외, 2018). 따라서 이에 대해 법관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효과적 이행의 필요성 및 법원에 부여된 중지명령권 행사의 필요성에 대한 법원의 인식제고 사업과 활동’에 대해 제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부터 매년 1회 법관 및 법원 공무원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2016년 기준 전체 대상자 14,738명 중 교육을 받은 법관 및 법원 공무원은 9,620명이고(참석비율 65.3%), 2017년 기준 전체 대상자 14,955명 중 교육을 받은 숫자는 9,887명(참석비율 66.1%)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이 권고를 통해 법관에게 요구한 것은 단순한 인식개선 교육의 이행 여부가 아니라, 교육의 내용을 통해 법관들이 실제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의 중지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인지하도록 하여, 구제조치를 활성화하라는 것이다. 법관들이 장애인의 차별을 구제하기 위해서 어떠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 등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장애 인식개선 교육의 내용에는 이와 같은 교육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법원행정처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의 일환이 아닌, 차별구제소송에 대한 교육을 별도로 실시하여야 한다. 즉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필요성, 법원의 권리구제 조치, 법원의 역할 등에 대한 내실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공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4) (4-e 관련 및 추가 제언) 정부 견제를 위한 NGO 기능의 부족
현재 법률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법원을 통해 장애인차별을 시정하고 권리를 구제할 수단을 마련하였음에도, 이 기제들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민간의 자발적 활동을 통해 정부 기구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차별을 당한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지원기관을 비정부기구(NGO)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소송비용 등을 개인에게 직접 지원할 수도 있지만, 사적 남용, 공평성 등의 문제점이 우려된다면, 지원단체에 예산을 지원해 주고, 이 단체에서 지원이 필요한 피해 장애인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역할을 현재 법률구조공단이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법률구조공단은 자금 능력이 부족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하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모든 장애인들을 지원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앞서 밝혔듯이 차별구제는 당사자 개인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익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모든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현재 법률구조공단처럼 공적기관으로 설립하여 지원을 할 수도 있지만, 공단이라는 관료제 특성에 따른 문제점 등을 고려할 때 비정부기구에 위탁하여 지원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수 있다. 지원단체에서는 상담, 법원 소송접수, 소송비 지원, 사후관리 등의 지원 업무를 담당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보건복지부·한국장애인개발원. 2019.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제2·3차 병합 심사대비 연구』. 보건복지부·한국장애인개발원.
이동석·안선영. 2002. “장애차별금지법 법안 설명”.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 장애차별금지법 법안 설명 공청회 자료집.
임성택·김미안·마한일·신혜주 등. 2018.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관한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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