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위험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 이슈광장


막연한 위험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본문

우리는 늘 막연한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막연한 위험이 있다고 하여 해야할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7년 4,185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사망의 위험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망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2,20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있다. 교통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사망을 할 수 있지만, 그 위험이 막연한 것이기 때문에 다들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때때로 막연한 위험을 이유로 유독 장애인에 대해서만 제한, 배제, 분리, 거부를 하곤 한다. 다행이 법원은 2015년에 이어 올해 다시 한번 이 막연한 위험이 있음을 이유로 안전상의 문제를 거론하며 장애인을 제한, 배제, 분리, 거부를 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또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유사한 내용의 결정을 하며 막연한 위험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여 주었다.

아래 사건들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이나, ‘막연한 위험’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하고자 한다. 3명의 시각장애인이 2015년 5월경 놀이공원을 방문하여, 롤러코스터인 ‘티익스프레스(T-EXPRESS)'를 타려고 하였으나 놀이공원 직원은 시각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다며 탑승을 거부하였다. 또 그 시각장애인 중 1명이 동행한 비장애인과 함께 '롤링 엑스트레인’, ‘더블락 스핀’을 타려고 하였으나 역시 동일한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하였다. 이에 탑승거부를 당한 시각장애인들은 법원에 놀이기구 탑승 거부가 장애인차별이라고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소제기가 된 후 약 3년이 지난 2018년 10월 11일 원고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합553445). 이 사건에서 피고는 이 놀이기구들은 모두 고속주행, 높은 고도에서의 낙하, 360도 회전, 예측할 수 없는 회전운동, 다른 놀이기구와 충돌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어서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보다 상황인지 및 반사적 방어행동의 속도가 느린 시각장애인들에게 놀이기구 탑승 중 더 큰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승하차 시의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과 비상상황 발생시의 탈출의 어려움 등이 있다고 하며 원고인 시각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해 탑승을 제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작동방식 등에 비추어보면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상존한다고 보이고, 위 놀이기구들은 탑승자가 안전장치에 의해 좌석에 단단히 고정되어 운행되는 구조로 정상적인 시각이 존재하여도 운행도중 탑승자가 취할 수 있는 움직임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시각장애인에게만 특별히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생략)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 이용에 있어 노출되는 위험정도에 있어 별다른 차이가 없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놀이기구들 이용에 정신적‧신체적으로 이용에 부적합하다거나 본인 또는 타인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고는 볼 수 없는 점,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이 상존하는 놀이기구를 운영하는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존재하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이 사건 놀이기구들 이용이 허용된다고 하여 그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피고의 추측에 불과할 뿐 이를 인정할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위 주장들 역시 이유 없다.” 고 판시하며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 사건에 앞서, 법원은 2015년 지적장애를 가진 아동이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을 방문하여, ‘우주전투기’ 놀이기구를 탑승하려고 하였다가 탑승거부를 당한 사건에 관한 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합593279).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원고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피고의 주장에 대해 “① 이 사건 유기기구의 경우 그 작동방식 등에 비추어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상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점, ② 지적장애인인 원고들에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비장애인의 경우보다 특별히 높다거나, 이 사건 유기기구의 작동방식이 원고들에게 특별히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전혀 없는 점,” 등을 거론하며 원고들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서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는 판단을 하였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 대형 영화관에서 지체장애1급의 장애인이 보호자 없이 4D 상영관에 입장하려 한 것을 거부한 사안에 대해서 판단을 하였다(2017. 10. 31.자 16진정0134300 결정).

영화관 측은 “4D 상영관 특성상 관람석이 앞뒤, 상하, 좌우로 상당히 진동하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이 관절, 팔, 목 등에 부상을 당할 우려가 있고, 화재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휠체어에서 그대로 착석해 관람이 가능한 2D(일반영상) 상영관의 장애인 관람석과는 달리 4D 장애인 관람석은 직원이 장애인을 안거나 업어서 휠체어 착석과 이석을 도와주어야 하므로 2D에 비해 장애인 관람객의 이동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수 있어 보호자의 동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① 피진정인은 이미 장애인 이용자의 낙상 등 사고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장애인 관람석에 관람자의 허리를 감싸는 형태의 안전벨트를 설치하였고, 관람 중 위급상황 발생에 대비해 휴대용 비상호출벨을 함께 제공하고 있는 점, ② 4D 관람석의 작동방식이 중증장애인에게 부상을 유발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점, ③ 보호자가 중증장애인과 동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4D 관람석 작동방식의 문제라면 피진정회사의 직원을 호출하는 것 이외에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항이 없고, 직원의 호출은 장애인 이용자가 직접 비상호출벨을 눌러서도 가능한 점, ④ 진동의 정도나 진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전에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중증장애인에게 설명함으로써 중증장애인이 스스로 영화관람 여부를 합리적으로 결정하도록 할 수 있는 점, ⑤ 피진정인이 4D 영화관을 이용하려는 중증장애인에 대해 4D 영화관 이용 경험이나 장애 정도와 특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고려 없이 단지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4D 영화관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진정인이 부상을 우려하여 중증장애인에 대해 일률적으로 보호자 동행 하에 4D 영화관을 이용하도록 하는 행위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영화관 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이를 장애인차별이라고 판단하였다.

위험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장애인을 제한, 배제, 분리, 거부한 사안에서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러한 위험을 막연하고 추상적인 위험으로 보고, 그러한 위험이 실존하는지 객관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보고, 이를 정당한 차별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만약 이러한 위험이 실제 발생가능하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이 되었다면,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와 같은 장애인차별을 정당한 것이라고 판단을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결국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는 막연한 위험은 위험이 아니고, 그러한 위험은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위 놀이공원과 영화관이 장애인을 의도적으로 차별하려고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로 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그러한 차별을 행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선의(善意)는 선의가 아닌 것이다. 그냥 장애인을 차별하는 악행(惡行)일 뿐이다.

한편 막연한 위험만이 있는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것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는 아니나,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온 지하철 휠체어리프트,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넓은 간격의 경우 이미 사건사고가 발생한 것에 비추어보면 막연한 위험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법은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하면서도 그 보장 방법으로 막연한 위험을 넘어 구체적인 위험이 있는 방법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막연한 위험을 이유로 한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데, 접근성 보장을 위해서는 막연한 위험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이 있는 방법은 허용된다는 셈이니 참으로 이상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위와 같은 법원의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내용이 선의든 악의든 막연한 위험을 이유로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고, 또 한편으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이 있는 방법을 허용하고 있는 우리 제도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