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불씨이슈] 미투 너머(Beyond Me too)
본문
미투 너머(Beyond Me too)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위계에 위한 성폭력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예술계, 학계, 정치권 등 위계구조가 심한 곳일수록 썩은 구조가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 문화가 존재한다고 알려진 정당에서 미투가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은 일부만 노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투 현상을 보면서, 그렇다면 나는 깨끗한가? 자문해 본다. 누군가를 성폭행한 적은 분명 없다. 성추행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성추행의 범위는 보다 넓으니 혹시라도 누군가 기분 나빠했다면 나도 가해자일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실이 과밀학급이니 통로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아마비 장애로 다리 기능이 많이 상실된 나는 걷기 위해서 책상을 손으로 짚어야 했고, 또 상체를 반동하여 몸을 음직이다 보니 양 옆으로의 움직임도 컸다. 그러다 보니 통로를 지나면서 누군가의 몸을 건드렸다. 누군가의 몸을 건드리면서도 사실 나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여학생들을 자꾸 만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지금에 와서 아니 성인이 된 후에는 여학생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로 몸에 민감한 시기였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후 가급적이면 이성과의 신체적 접촉을 피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스킨십이 늘어나기도 했었다. 하여간 고의적 행동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나쁜 일이고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더 큰 문제를 저질렀다. 내가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방관자였던 때는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두세 개의 영상이 떠오르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더 많을 것 같다. 방관자였던 상황을 모두 열거하면 피해 당사자와 가해 당사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구체적 상황을 열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방관자 역할을 한 나의 죄는 큰 것 같다. 피해자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방관했던 나의 행동에 진심으로 반성하고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미투 상황을 보면서 피해자의 고백만으로 이 사회가 아름다워질지 의문이 든다. 피해자의 미투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미투를 넘어 가해자의 고백도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나도 가해자일수도 있고, 적극적 가해자는 아닐지라도 동조자, 방관자일수도 있다는 인식이 사회에 형성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동조자, 방관자로서의 반성이 필요한 때 인 것 같다. 얼마 전 모 단체의 한 여성이 단체 내 성추행 문제에 대해 고백을 하겠다고 단체의 대표에게 미리 말을 했더니 조직의 안녕을 위해 그냥 참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정의를 이야기하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이런 방관자적 시각 또는 은폐시도가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정의를,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의 이익, 내가 속한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가해자도 나쁘지만 동조자나 방관자도 그에 못지않게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또한 미투 운동을 보면서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지난한 여성운동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더디지만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10년 전에도 성폭력이나 성추행에 대해 고발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저 개인의 문제였고, 심지어 피해여성이 문제를 유발했다는 사회 인식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일부 측근들이 언론에 흘렸고, 일부 언론은 이 내용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 사실을 재인용하면서도 그것이 사건의 본질일 수 없음을 명확히 했고 기사로서 지속화되지도 않았다. 물론 이 시대에도 초점을 흐리는 말을 하는 남성들이 있고, 또 그것을 뉴스인양 보도하는 기레기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제는 그런 뉴스에 현혹당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장애인학대,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섬도 아니고 오지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장애인이 15년간 잠실야구장 청소를 하면서 착취를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용역회사 사장이 나쁜 놈이지만, 피해 장애인을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보아 왔으면서도 무관심했던 많은 방관자들도 나쁜 사람들이다. 피해자의 억울함만을 보도하거나 가해자 한 사람만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하는 언론도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불쌍한 장애인이 당했네.’ 라고만 생각하는 국민들도 옳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 가해자일 수 있고 실제로 가해자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장애인 차별이나 학대 등에 대한 방관자도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인식확산이 필요하다. 장애운동보다는 여성운동이 먼저 지평을 넓혀 나간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그렇고 외국도 그러한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장애인 차별 및 학대에 대해서도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퍼지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