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기획이슈]정신장애인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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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D&I가 선정한 새로운 장기주제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이다.
장애인 정책을 고려함에 있어서 장애를 더 이상 개인의 비극, 개인적 문제로 간주하는 개별적 모델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기본 전제로 통용되는 사실이다. UN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장애의 문제는 적절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사회의 문제이자, 모든 이에게 동등한 천부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모델에 입각해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당연한 기본 전제로 인식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 전제가 문장으로만 명시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제도와 정책, 혹은 관련자들의 인식에서도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한 부분들이 보인다. 특히 이러한 인식의 현실화는 장애인을 고쳐져야 할 대상,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동화(同化)가 필요한 integration의 통합 대상이 아닌, 사회 속에서 당연한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는 inclusion의 통합 주체로 간주하고 있는가로 확인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 불어 닥친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의 확산은 적어도 인지기능에 불편이 없는 신체적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inclusion의 통합 관점이 정착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영향력은 장애계의 연대(cross disability)를 통해 더욱 빠르게 자리매김되고 있다.
반면, 장애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소외와 차별을 경험하는 장애 유형이 있지 않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애계 내부에서도 소수에 머무르는 특정 장애유형도 고려의 대상이지만, D&I가 2018년에 함께 고민 하자고 제안하는 정신장애 유형은 단순히 숫자의 열세에서 오는 소외나 차별과는 다른 문제를 겪고 있다. 연대해야 할 장애계가 정신장애인을 정신질환의 연장선상에 있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통합(inclusion)의 주체인 동등한 장애인으로,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인정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D&I는 이러한 고민에 대해 인권의 관점에서 동일한 문제를 제기하며 2015년에 출간된 ‘정신장애인의 인권 – 자유와 평등을 향한 긴 여정-(서미경 저)’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며 장애계와 우리사회가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동등한 장애운동의 주체로 함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서미경의 저서인 ‘정신장애인의 인권 – 자유와 평등을 향한 긴 여정 –’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1부 ‘인권, 정신장애인의 기본권’에서는 가장 먼저 우리가 너무나 친근하게 활용하고 있는 용어인 ‘인권’의 개념을 사전적 정의에서부터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인권의 개념을 잘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짐 아이프의 개념을 인용해서, 인권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향유되는 보편성의 개념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는 집단의 인간성 실현을 위해서도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인 권리이며, 타인의 인권과 상충되지 않도록 제한될 수도 있는 권리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 설명에 이어 인권을 누리기 위한 개인의 의무, 혹은 권리를 인식하고 스스로 행사하는 주체적 동기가 필요함을 설명한다. 뒤를 이어서 정신장애인의 인권 담론을 다루기 시작하는데, 정신장애인을 온정주의적 관점(혹은 보호주의적 관점)의 입장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것인지, 자율성을 보장하는 인권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각각의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1부의 마지막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혹은 침해할 수도 있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 자유와 평등을 향한 긴 여정(서미경, 2015)’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권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서론부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는 먼저 인권의 개념과 속성을 정리해 놓았는데, 앞서 언급한 짐 아이프의 주장과 함께 UN인권선언(1948년)에 포함된 담론으로 ‘정의와 선(justice & goodness), 사회적 포용(social inclusion), 욕구(needs), 가능성(capability)’의 4가지 속성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사회계약론의 관점에서 사회가 자유와 안정을 제공하는 대신 개인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할 국가의 의미, 권리를 행사해야할 시민의 의무를 이야기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인권의 범주를 1세대~3세대 인권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세대 인권이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지 말아야할 소극적 관점이라면, 2세대 인권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같은 복지의 수준을, 3세대 권리에서는 개인을 넘어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집합적 권리를 설명하며, 국가의 기능이 1세대 인권을 넘어 2세대와 3세대 인권의 개념으로 발전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인권의 기본 개념에도 불구하고, 국제법 등이 인정하는 인권의 제한 상황들도 설명된다. 고문이나 노예, 생각, 양심, 종교의 자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한 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강제입원과 같이 정신장애인의 자율권을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제적인 규약이나 가이드라인에 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UN 공민권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의 제한 및 특례규정에 관한 시라쿠사 원칙(1985)’에서는 권리제한을 정당화하는 9가지 조항을 ‘①법에 의한 제한 ②민주적 사회를 위한 제한 ③공공질서를 위한 제한 ④공공보건을 위한 제한 ⑤공중도덕을 위한 제한 ⑥국가안전을 위한 제한 ⑦공공의 안전을 위한 제한 ⑧타인의 자유, 권리, 명예를 위한 제한 ⑨공판(재판의 공개 등)에 의한 제한’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원칙에 의해 정신장애인의 치료권에 대한 자율적 선택이 제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인권의 개념에 대한 설명에 이어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UN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단위를 넘는 인간성 수호를 위해 UN이 기울인 노력인 ‘UN 헌장(1945년), 세계인권선언(1948년), 국제인권장전(1966년)’의 내용이 비강제적이고 선언적인 소프트로(soft law)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강제성을 가진 하드로(hard law)의 개념으로 강화됨을 보여주는 것으로 1부의 1장을 마치고 있다.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정신장애인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제적으로 강조되는 정신보건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의학적 질환이면서 사회적 장애의 성격이 강한 정신장애가 사회적 차별과 배제로 인해 전문적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장애가 악화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이러한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WHO 지적한 ‘정신보건 예산 부족, 전문인력 부족, 정신보건 관련법 및 정책 미비, 정신보건 관련 시민사회운동 저조, 낮은 약물 치료율’과 같은 정신장애 질병부담에 효율적 대처 못하는 이유를 지적하고 있다.
보호의 명목에서 자행되던 강제치료는 인권침해로 연결될 수 있다. 인권침해와 부인, 학대 등이 정신장애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성과 인권을 중심에 둔 접근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
계속해서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점 차이를 Alan 등(2012)을 인용해서 주도적(주류적, 서구적) 패러다임과 비주도적(비주류적) 패러다임의 통합을 통해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주도적 패러다임’은 ‘존중권, 자기결정권, 사생활 보호권 등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데 비해 ‘비주도적 패러다임’은 ‘집단적 문화적 영향으로 문화가 어떻게 정신장애를 정의하고, 가족, 전문가 등이 인권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함께 고려’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Alan 등은 두 패러다임 통합한 인권문제 해결방안으로 ‘①비자발적 입원 최소화를 위한 체계적 전략 필요, ②사회적 포용 기회 확대 필요 ③정책변화가 곧바로 법의 변화, 현장의 직접적 변화를 유도해야 ④전체적 정신보건서비스 모델 필요, ⑤서비스 계획에서 실천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동등한 권한 부여’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 자유와 평등을 향한 긴 여정’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UN과 WHO 등 국제사회의 노력과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을 이어서 소개하고,책의 제1부를 ‘정신장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긴 여정’의 3가지 핵심적 권리에 대한 담론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담론으로 ‘자유권(자기결정과 관련된 권리로 치료결정-강제입원과 강제치료, 일상생활 결정)’과 ‘평등권(시설내에서 또는 지역사회에서의 평등 - 차별 없는 사회적 기회 보장, 평등한 서비스 보장)’, ‘존엄권(입원시설에서의 비인도적 처우와 권리제한 문제, 강제치료와 규제로 인권침해 문제 발생이 사회와 격리되어 시설화, 탈문명화로 지역사회 적응을 더 어려워지게 하므로, 시설 내 인권 보호와 최소한의 규제가 원칙이 되어야 함)’의 3가지 권리를 정의 했다.
이후 이 책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자유권, 평등권, 존엄권이 어떻게 침해되고, 국제사회가 권리보호를 위해 어떤 기준을 제시하는지, 그리고 권리보호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소개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인권의 개념과 정신장애와 인권의 관계, 관련된 국제사회의 노력은 이해하기 쉽고 상세하게 매우 잘 설명되어 있어 인권 중심의 관점에서 정신장애인 문제를 조망하기 위한 입문서로 추천할만하다.
그럼에도 D&I에서는 이 책이 구분한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2가지 관점(주도적·주류적 패러다임 vs 비주도적·비주류적 패러다임)이 장애모델의 개별적 모델(individual model)과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의 관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는 토론 주제를 던져본다. 책이 설명하는 주도적 패러다임은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을 중심에 두고 있는데, 지나친 자율성(치료를 포기할 권리와 같은)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주도적 패러다임과의 통합을 이야기한다. 반면 동양권, 개발도상국에 더 만연한 비주도적 패러다임은 정신장애를 조상의 탓이나 저주 등으로도 외현화 하여 정의하는 것 같은 문화적 개념정의가 임상적 결과에서 서구 선진국의 주도적 패러다임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혹 최근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모델의 관점과 달리 정신장애를 치료대상으로 국한시키는 의료적 모델, 개별적 모델에 입각한 해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토론거리가 형성된다. 특히 이러한 고민은 장애인이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장애 당사자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비정신장애인 영역에서의 사회적 모델과 다르게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는 치료를 통해 완치나 관리를 추구해야 하는 독특성으로 보아왔던 시선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매락에서 D&I에서는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도 당사자 주도적 패러다임에 입각한 대응이 강조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이후 장들을 살펴보면서 독자들과 함께 토론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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