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불씨이슈] 장애인건강권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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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건강권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올해 12월 30일부터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건강권법)”이 시행된다. 2015년 12월에 법률이 제정되었음에도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어 시행시기를 2년이나 늦추었다. 그럼에도 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실질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행령과 시행규칙과 같은 세부 지침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도 시행령과 시행규칙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실질적인 시행을 준비하기 위해 2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하위법령 준비하는데 2년 이라는 시간을 준 것이고, 시행일 이후부터 실질적인 준비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시기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장애인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여야 할 것 같다.
아직 구체적인 세부 업무지침이 없고 실행해본 적도 없으니 장애인건강권법의 실효성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장애인건강권법과 관련하여 돌아가는 세상사를 보면 많은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장애인건강권을 논의 또는 연구하겠다고 하면서 의사들만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 장애인단체를 배제한 것은 물론이고, 사회과학적으로 건강권에 접근할 수 있는 연구자들마저 배제하였다. 아마 연구를 수탁한 사람이나 연구를 책임진 사람들이 장애인건강권을 보건의료서비스권 정도로 파악한 것 같다. 장애인건강권을 보건의료서비스권으로 파악하였다 하더라도 서비스에의 접근권,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장애인이 배제된 논의는 그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단순히 장애인을 대상 또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더 자신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하는 논의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결과가 나오고, 본인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고 강변하여도 이와 같은 비판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데는 장애인들의 책임도 있다. 장애인당사자이면서 보건의료전문가인 국회의원이 법제정을 주도하고, 일부 엘리트 장애집단만 참여하다보니 장애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나의 일임에도 약간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부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공청회를 하는 등 법의 내용을 알리고 공유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도 건강권의 개념은 생소하기만 하다. 따라서 장애인건강권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공유할 필요가 있다.
건강권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가장 권위 있는 해석은 145개국이 비준한 사회권(ICESCR)의 제12조 조항이다. 이 조항과 관련하여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위원회’는 건강권에 관한 일반 논평을 채택하였는데, 일반 논평에서는 건강권이 적절한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안전한 식수 및 적절한 위생에 대한 접근, 안전한 음식, 영양 및 주거의 적정 공급, 건강한 직장 및 환경조건, 성 및 생식보건을 포함한 보건 관련 교육 및 정보에 대한 접근과 같은 기본적인 건강결정요소들에까지 확대하는 포괄적 권리하고 해석했다(신영전, 2011).
이처럼 건강권은 ‘건강할 권리(rights to health)’,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rights to health care)’,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의 권리(right in health care)’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문창진, 1997). 이 중 ‘건강할 권리’란 가장 광범위한 건강권으로서, 개인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소극적 의미에서의 ‘건강할 권리’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위협에 평등하게 대처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건강할 권리’는 건강한 상태를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 또는 사회로부터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보호를 균등하게 받을 수 있는 생존권적 기본권이다(김주경, 2011). 이때의 ‘건강’은 단순한 보건의료 서비스의 향유라는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으로부터 건강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공해로 인한 각종질환, 산업재해, 교통사고, 농약중독, 연탄가스중독 등으로 인한 인명손상 등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으로 귀속되며, 모든 개인은 이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는 보건의료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절대적 개념으로서의 권리와 개인의 신분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균등하게 접근 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 때 의료인력·시설의 물리적인 균등배치 등과 같은 객관적인 접근성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특성들과 관련된 주관적 접근성도 중요하다(김주경, 2011). 객관적인 접근성은 쉽게 측정 가능하다보니 전문가들이 주로 관여하고자 하나, 주관적인 접근성은 개인의 성향 및 심리적 상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평가하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이 권리의 확보 또는 보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의 권리(right in health care)’는 개인이 보건의료 전달체계 내에서 의료자원을 균등하게 향유할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양의 필수적인 서비스를 받을 권리와 동등한 경우에 있어 진료수준의 차이를 배제하는 권리가 포함된다(김주경, 2011).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ㆍ신체를 통제할 권리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손정인·김창엽, 2016).
그런데 우리는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rights to health care)’를 건강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도만을 건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건강은 의료서비스의 제공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과 더 나아가 문화적 조건들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신영전, 2011). 그런데 현재 장애인건강권법도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에 치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장애인건강권을 의료의 영역으로, 의사의 영역으로 한정짓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이고,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성만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건강하기 위해 사회적 문제해소를 주장할 수 있고, 의료서비스에의 접근 시에도 주관적 만족 등 주관적인 접근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 서비스를 구매하는 당사자로서 자신의 건강ㆍ신체를 통제할 권리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건강권의 주체로 장애인이 우뚝 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장애인건강권법이 장애인에게 의료라는 선물을 하나 더 던져주는 상황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상황이다. 이런 걱정이 개인적 기우가 아니길 바라본다.
참고문헌
김주경(2011). 헌법상 건강권의 개념 및 그 내용. 헌법판례연구, 12: 137-180.
문창진(1997). 보건의료사회학. 신광출판사.
손정인·김창엽(2016). 개념으로서의 건강권 – 명명, 사용빈도, 그리고 추세. 비판사회정책, 52: 7-44.
신영전(2011). 사회권으로서의 건강권: 지표개발 및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 상황과복지, 25: 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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