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불씨이슈] 편리함의 기준은 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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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의 기준은 장애인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미래학자들은 정보화 시대를 넘어 이제 4차 혁명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미래가 인간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며 그 반면에 인공지능으로 대변하는 4차 혁명으로 인하여 많은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자동화되고 인공지능화되는 세상이 과연 장애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세가지 다른 단상이 스쳐 지나간다.
<단상1>
얼마전 ooo인터넷 은행이 영업을 시작하여 하루 만에 몇 만명의 고객을 모았다고 한다. 인터넷 은행에서는 은행에 가지 않고 은행직원을 만나지 않아도 통장을 만들 수 있고 돈을 빌릴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하여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이처럼 쉬운데 불구하고 고령층들은 여전히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은행 직원에게 이야기하고 돈을 찾거나 통장을 관리한다.
<단상2>
햄버거를 먹으러 패스트푸드점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매장 입구에 여러 개의 자동주문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기계로 주문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그 기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주문하는게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야 성공하였다. 그때 자동주문기계를 시각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그리고 노인들이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올해 초 미국의 시각장애인 단체가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는 레스토랑 Eatsa를 장애인차별금지위반으로 고발하였다. Eatsa에서는 직원이 도와줄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자동주문기계를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동주문기계나 테블릿기계을 통하여 주문을 받는 식당은 우리나라에서도 더욱 더 늘어나고 있다.
<단상3>
어느날 일을 마치고 아파트에 돌아오는데 옆 동 중앙현관문 앞에 앉아 있는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 한 분을 보았다. 그 분은 아파트 밖에서 누군가 기다리는 듯 보였다. 난 아파트 옆 동이라 무심코 그냥 들어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치매초기증상을 보였는데 중앙 자동문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들어가거나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세가지 다른 풍경들은 장애인, 노령층, 그리고 정보약자들과 같은 정보에 취약한 그룹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컴퓨터로 모든 것이 ‘편리화’ 되어가는 시대에 왜 장애인들과 노령층은 더욱 ‘불편’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편리성’이란 단어 뒤에는 모두를 위한 편리성이 아니라 그 정보들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편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정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뒤에 숨어 있는 자본주의 논리-컴퓨터와 인공지능을 통한 편리성이 이윤 및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장에서는 인간의 노동력 대신에 자동화된 로봇이 일을 하게 되고 식당에는 직원 대신에 자동주문기계를 통하여 주문을 받게 된다. 이렇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편리성과 빠름의 추구는 또 다시 이윤을 남길 만한 사람들-젊은 사람들, 정보를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 등-에게만 편리함을 제공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장애인과 고령층은 이윤을 남길만한 그룹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편리함은 항상 이차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인공지능화되고 자동화된 환경이 장애인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추구하는 ‘편리함’과 ‘빠름’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편리함과 빠름에 익숙하지 않은 장애인과 고령층은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또 쏟아지는 정보들을 소화하는 것조차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리함과 빠름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하이테크(High-Tech) 상품을 통하여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정보접근권’을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정보접근권이란 편리하게 접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장애인 지원과 관련된 환경들이 모두 컴퓨터화되고 자동화되어 하이테크(High-Tech)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들도 ‘일상에서 편리함’을 느끼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원칙이다. 그리고 편리함과 빠름을 추구하기보다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장애인과 고령층이 함께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이러한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독일의 어느 도시에서는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시 전체를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을 위해 미디어교육을 그들의 시각에 맞추어 실시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가치 위에서 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비장애인의 속도에 맞는 빠르고 편리함 속에서 장애인에게 그 속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일상’의 유니버설디자인을 통하여 가장 느린 속도를 가진 사람도 이 사회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빠르고 편리함의 기준은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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