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도 시행 10주년, 제도의 존폐를 논하다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영 교수·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 기고
본문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에 대해 법제처는 민법 제9조에 의거하여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이 가정법원의 결정으로 선임된 후견인을 통해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에 관한 폭넓은 보호와 지원을 제공받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된지 약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후견제도에 대한 대립적 의견이 지속되고 있다. 후견인을 선임한 장애당사자들이 각종 자격취득, 취업을 제한당하고 당사자의 의사결정과 자율성이 침해되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하며 후견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장애인을 취약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인적네트워크 형성 차원에서 후견제도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함께걸음>은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영 교수와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의 기고를 통해 독자들에게 직접 후견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판단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현재 장애계에서 후견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과 각 찬·반 측 의견에 지적되는 문제점들을 함께 제기하였다.
성년후견제도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가
글. 윤태영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성년후견제도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계약 등을 통해 다른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질병ㆍ장애ㆍ노령 등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러한 계약을 체결하거나 부동산이나 예금 등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있어 곤란함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에게 현저히 불이익한 계약에 대해서도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체결해버려 악덕 상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다. 나아가 신체적ㆍ정신적 학대, 경제적 착취, 위법 부당한 신체 구속, 고립 방치, 강제노동, 사회보장급여의 횡령과 부정소비, 성폭력ㆍ성희롱,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지적장애로 인해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성년후견제도이다.
종래에도 이들을 보호하는 제도로 행위무능력자 제도가 있었지만, 금치산 선고나 한정치산 선고에 의해 능력이 획일적으로 제한되어 인권 존중의 사상에 맞지 않았다. 따라서 2013년 7월 1일 민법 개정에 의해 행위무능력자 제도를 폐지하고 법정후견제도로서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의 세 가지 유형이 이를 대체하는 한편, 스스로 후견 계약을 통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임의후견제도를 신설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성년후견제도의 이념은, ‘본인 보호’뿐만 아니라, 본인에게 남은 잔존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자기결정권의 존중’,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도 그렇지 않은 자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이다. 이러한 이념의 조화를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성년후견제도이다.
실제로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는 그 이전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심판을 받은 건수에서 잘 드러나는데, 2006년 부터 2013년까지 금치산 및 한정치산 선고를 받은 건수는 8년간 총 3,778건인데 비하여,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이후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후견 심판 건수는 41,901건으로 11배 이상이나 되며 매년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만큼 성년후견제도의 필요성이 높고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2. 성년후견제도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왜 제기되는가?
성년후견제도 중 법정후견제도는 장애 정도에 따라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후견심판을 받아 제한능력자로 되는 사람은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이다. 제한능력자 제도를 둔 이유는 의사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한 법률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의사 능력 없이 법률행위를 한 자가 이것을 무효로 하여 보호받으려면 법률행위 당시 의사능력이 없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민법은 이러한 점에 대비하여 의사능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행위능력이라는 획일적 기준을 두고, 이 기준을 갖추지 못하는 때에는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이 미성년자제도 등을 포함하는 제한능력자 제도이다. 민법 규정을 보아도 피성년후견인이 되기 위해서는 장애 정도가 너무 심해 일상생활을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상태를 요건으로 하고, 피한정후견인도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여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없을 정도가 된 사람을 말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제한능력자 제도는 의사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의사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잔존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이므로, 제한능력자 제도는 이에 맞지 않은 점이 많다. 왜냐하면 성년후견제도 가운데 성년후견심판이 이루어지면 성년후견인은 피성년후견인에 대해 포괄적 대리권을 가지고, 원칙적으로 피성년후견인의 행위를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후견심판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법원이 지정한 범위에 대해서는 한정후견인은 피한정후견인이 동의를 받지 않고 한 행위를 취소할 수 있고, 대리권을 가진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능력자 제도가 자기결정권 존중 침해라는 비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목할만한 부분은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는 대부분이 성년후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이루어진 후견심판건수 41,901건 가운데 성년후견이 34,394건(82%)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한정후견이 4,016건(9%), 특정후견이 3,361건(8%)이다. 즉 비판받는 제한능력자 제도를 이용하고자 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 그나마 특정후견은 공공후견인 제도를 통해 지원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비율이라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령사회에 대비하여 만든 제도로서 의사능력이 미약하게 되기 전에 미연에 자신이 신뢰할만 한 사람과 후견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제도인 임의후견제도는, 서구 사회에서는 실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제도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총 130건에 불과하여 이 제도를 둔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통계가 나온 이유는 우리나라의 후견이 가족후견 중심이다 보니 성년후견 및 한정후견의 이용이 압도적인 것 같다. 그리고 혹시나 잘못된 계약을 체결하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함도 이에 한 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공공후견 강의를 하는 기회에 상담을 할 때, 성년후견심판이나 한정후견심 판을 신청하고자 하는 부모에게 자녀의 권익보호의 문제를 이유로 특정후견을 권할 경우, 취소제도를 활용할 수 없음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후견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피성년후견인이나 피한정후견인의 후견인들은 실제 경험상 취소권이나 포괄적 대리권이 실제로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러한 권한이 없는 특정후견인이나 아직 후견심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윤태영, 제한능력자의 법률행위에 대한 취소권의 실효성 분석, 2019).
성년후견인이나 한정후견인들도 만약 다른 제도를 통해 보다 쉽게 피후견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굳이 제한능력자 제도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강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안타깝게도 후견제도를 대체할만한 다른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에 대한 법제도적 해소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점만 부각시킨 채 단지 성년후견제도나 한정후견제도를 없앤다면 오히려 의사결정능력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주장될 수 있다. 최근 신탁 등 다른 제도의 활용도 모색되고 있으나, 후견제도의 보완재로서 기능할 수 있어도 대체재로서 기능하기는 어렵다.
3. 후견인 선임 과정에서 피후견인에게 충분한 의사소통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법 제936조 제4항에서는, “가정법원이 성년 후견인을 선임할 때에는 피성년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하며, 그 밖에 피성년후견인의 건강, 생활관계, 재산상황, 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의 직업과 경험, 피성년후견인과의 이해관계의 유무 등의 사정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규정은 한정후견, 특정후견에서도 준용하고 있다. 즉 가정법원은 후견인을 선임할 때에는 반드시 피후견인의 의사를 고려하여 후견을 개시할지 여부, 누구를 후견인으로 정할지 여부 등을 결정하여야 하고 이것은 법에서 정한 의무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상 의무에도 불구하고 피후견인이 자신의 후견인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사소통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후견제도에 대한 법률상 문제이기보다는 그동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 지원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장애인복지를 잘 보장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그나마 부족한 장애인복지마저 신체, 감각 장애인 중심으로 지원되었기 때문에 의사결정 능력 장애인은 복지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그나마 발달장애인법에 기초하여 발달장애인에 대한 통합적 지원체계의 기초가 만들어진 것도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법원에서 피후견인의 의사를 잘 고려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중요한데, 의사결정능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는 이러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AC) 도구가 있지만, 표준화되어 있는 점자나 수어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각 단체 및 기관마다 그 유형이 각각 다르고 활용범위도 천차만 별이다. 더구나 이것이 실제 의사소통을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발달장애인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도구 로써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사회에서 활용하여 자신의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도록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이 발달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관련 종사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실제로 그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원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최근 “발달장애인·언어장애인의 사법접근권 강화를 위한 알기 쉬운 자료와 보완대체의사소통 개발 방안 연구”에 착수하여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만약 이것이 잘 활용되고, 법원에서의 의사소통에 표준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피후견인의 의사를 반영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 다. 법원에서 추진하는 보완대체의사소통 도구가 수많은 각 단체 및 기관의 도구들 중 또 하나가 되어 혼란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법접근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성년후견제도 찬성 측 입장 요약
1. 후견제도가 ‘피후견인(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 여러 후견 유형 중 자기결정권을 가장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는 ‘성년후견’ 유형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오나 현재로서는 후견제도를 대체할 만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므로 무조건적인 후견제도 폐지는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신탁 등의 제도 역시 후견제도의 보완재가 될 순 있어도 대체재로서 기능하긴 어려울 것임.
2. 피후견인(장애인 당사자)이 자신의 후견인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사소통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한 의견은 어떠 한가요?
: 이미 민법에서는 가정법원이 성년후견인을 선임할 때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의무규정을 두고 있으나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후견제도에 대한 법률상 문제보단 당사자에 대한 복지서비스 지원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료됨.
성년후견제도를 넘어서 의사결정지원제도로
글.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2013년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치매고령자 등 정신적 제약이 있는 자(이하 정신적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이념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그에 맞게 운용되고 있을까. 법원이 후견개시, 후견인 선임, 후견인 감독을 최종적으로 담당하며 후견 전반을 통제하고, 정신적 장애인의 복리에 부합하는 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하며, 탄력적으로 후견인의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한정후견과 특정후견 유형을 두었다는 점, 설사 성년 후견이 개시되더라도, 피후견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는 스스로 신상에 대한 결정을 한다는 점, 미리 나의 후견인이 될 사람을 지정하는 임의후견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일견 이 제도는 그 목적대로 운영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10년간의 경과를 살펴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포괄적으로 정신적 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제한하는 성년후견 유형이 전체의 80%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이용되고 있고, 가장 원칙적인 모습으로 설계된 임의후견은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탄력적인 운영이 가능하여 법정후견 유형(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중 원칙적으로 이용될 것으로 예상된 한정 후견은 전체의 10%에 그치고 있다. 제도 설계 당시 성년후견과 한정후견을 구분하는 기준이 정신적 제약의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가 심한 사람에 대하여는 성년후견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는 한정후견을 적용하는 법원 실무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후견인의 권한 남용에 대한 감독체계도 불안하기만 하다. 서울을 비롯하여 그나마 형편이 나은 가정법원들조차 적시 감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상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방법원도 적지 않다. 그 와중에 과거 금치산·한정치산 제도 아래에서 활용되었던, 결격조항들이 이름만 바뀌어 잔존하고 있다. 후견제도를 통해 자기결정권을 실현한다는 목적과는 정반대로 후견이 개시되는 순간 장애인은 직업이나 자격을 가질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떤 나라도 이와 같은 형태의 입법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폐지에 소극적이다.
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하나, 경제적 어려움, 가족의 부재 등으로 후견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운 자들에 대하여 국가가 복지사업으로 제공하는 공공후견제도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다양한 착취나 학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고, 사회복지 전달체계 안에 정신적 장애인을 편입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지방자치단체부터 이용에 극히 소극적이다. 발달장애, 정신장애, 치매로 나뉘어져 제각각 사업을 수행하는 비효율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한 2013년 당시 이미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법적 지원과 보호의 패러다임이 의사결정대행제도에서 의사결정지원제도로 변화된 뒤였다는 것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가 말하는 장애인의 완전한 법적인 권리를 누리는 것과 성년후견제도는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에 보편적으로 자리 매김할 즈음 우리는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하여 비장애인과 달리 법적 권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성년후견 유형은 포괄적으로, 한정후견 유형은 제한적으로 피후견인의 법적 권리를 제한하고, 후견인으로 하여금 피후견인의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나아가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에서 정신적 장애인 본인의 의사가 아닌, 법원에 의하여 후견이 개시되고, 선임된 후견인이 그의 법적 권리를 대리하는 것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사결정지원은 후견인에 의한 대리가 아닌, 정신적 장애인이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자 또는 제도, 의사결정도구, 사회적 배려를 통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결정을 하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후견제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견제도를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우려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사실상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최중증 장애인을 사실상 방임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지와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범죄가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것이다.
먼저 의사결정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최중증 장애인에 대하여는 의사결정대행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는 수긍이 간다. 필자의 사견은 이들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위하여 불가피하게 의사결정대행제도는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이 현재의 성년후견제도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후견인이 최중증의 정신적 장애인을 대리하여 결정할 것들을 처리 하고 나면, 바로 후견을 종료하는 방식으로 운용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후견이 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본인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의 추정적 의사를 탐색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사결정지원의 기본 원칙을 준수해야 할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의 후견 유형 중에서는 특정후견 유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치매 고령자와 같이 후천적으로 최중증 정신적 장애인이 되는 경우라면, 미리 후견 계약을 체결해두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지원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성년후견제도가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굳이 후견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후견인의 도움 없이 스스 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도, 후견을 개시하여 후견인이 그의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후견제도가 시행된 이래 우리 사회에서는 굳이 후견이 필요하지 않은 정신적 장애인에 대하여도 그의 자기결정을 신뢰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후견인을 선임해오라는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금융거래를 거절하고 후견인을 요구하는 일부 금융기관의 실무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극단에 위치한 최중증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보호’를 명목으로 의사결정지원만으로 충분히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보다 많은 정신적 장애인들의 권리가 불필요하게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와 같은 이유로 성년후견제도가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 다고 생각한다.
성년후견제도가 폐지되면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단언컨대 기우에 불과하다.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범죄를 성년후견제도로 막을 수 있다는 기대는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고, 제도에 대한 잘못된 신뢰는 오히려 후견인에 의한 고도화된 범죄가 늘어나는 것에 기여할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성년후견제도를 두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은 후견인에 의한 범죄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히 후견인에 의한 범죄는 법원의 형식적 통제 아래 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져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에 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후견제도ㆍ신탁제도 등 기존의 법적인 틀 안에서 합법을 가장하여 벌어지는 재산범죄를 놓고 ‘실버 칼라 크라임 (Silver Collar Crimes)’라고 부른다.
후견제도가 존재하기 전에도, 후견제도가 존재하는 지금도, 후견제도가 폐지되고 의사결정지원제도가 존재할 미래에도 언제나 정신적 장애인과 그에 대한 제도의 취약성을 악용한 범죄의 위험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고도화되는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 등 각종 학대에 대응하기 위하여 긴밀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하고, 이를 위한 첫 번째 노력은 성년후견제도와 같이 현재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제도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믿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성년후견제도 반대 측 입장 요약
1. 후견제도가 폐지되면 상대적으로 발달장애인이 범죄에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범죄를 성년후견제도로 막을 수 있다는 기대는 잘못된 환상에 불과함. 후견인에 의한 범죄 문제 역시 높은 비율로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범죄는 법원의 형식적 통제 아래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져 밝혀내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음. 따라서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범죄는 성년후견제도의 존폐 여부와 상관없으며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차원의 고민과 대응방법이 필요함.
2. 의사결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에게는 최소한의 보호장치인 후견제도마저 사라지면 방임 등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해당 우려에 대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으며 예외적인 경우를 위해 의사결정대행제도 (현 후견제도)가 남아있을 수 밖에 없겠으나, 현행 제도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운용되어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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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된 ‘이슈 논쟁’ 코너에서는 매호 장애계 이슈와 논쟁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전문가 기고 형식으로 기재합니다. 아울러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양측 의견을 읽은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수집하여 다음 호에 그 결과와 더불어 <함께걸음>의 입장을 정리해 공개합니다.
5·6월호 주제인 ‘성년후견제도’에 대해 ‘대안 없는 현재로선 최선의 제도’라는 윤태영 교수님의 긍정적 의견과 ‘당사자의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위해 없어져야 될 제도’라는 배광열 변호사님의 비판적 입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함께걸음> 독자분들은 ‘성년후견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래의 방법으로 여러분의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해주세요.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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