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로 없는 편의점 등 소규모매장, 시행령 개정 않은 국가 책임인가 사업주 책임인가
대법원,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공개변론 연다(10/23)
본문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장애인 접근권 보장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판단하고자 오는 10월 23일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1998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시행령에서는 경사로와 같은 장애인 편의제공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국가가 이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아 장애인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국가가 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장애인등편의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으며 2022년 4월 27일 해당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바닥면적 300제곱미터(약 90평) 이상인 이용시설에만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였다. 해당 규정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중 97%가 넘는 곳이 편의제공의무에서 면제된다.
이에 따라 2018년,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와 사업주의 책임을 묻고자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된 소송과정에서 피고 투썸플레이스와 신라호텔은 빠르게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였고 본안소송까지 진행했던 GS리테일의 경우에도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는 1심 판결의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행령에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 예외조항을 둠으로써 20년 넘도록 해당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아 장애인등편의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에서 보장한 접근권이 형해화되었고 그 행정입법부작위가 위법하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원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였다. 이에 원고들은 상고하였고 마지막으로 국가의 책임을 판단하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본 사안이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실질적 보장 여부뿐 아니라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가 문제 된 다른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하고 재판 심리의 전 과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전달하고자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10월 23일(수) 오후 2시부터 대법정에서 진행되는 공개변론에서는 크게 ▲행정입법 부작위의 위법성과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투게 된다.
행정입법 부작위의 위법성과 관련하여서는 구체적으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서 소규모 소매점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과소하게 규정하여 모법의 위임범위를 일탈하여 위법한데도 피고가 그 개정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며 법리적으로는 당해 법률 규정의 입법 목적과 규정 내용, 규정의 체계,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헌법 규정 및 헌법적 지위 등을 살펴본다. 또한 현실적 측면에서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 현황과 그 보장을 위한 노력이 무엇이 있었는지와 행정청이 장기간 개선입법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고 그 이유에 타당성이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또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의 책임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피고의 고의·과실 또는 객관적 정당성 상실 충족 여부와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 발생 및 그 범위에 대해서 논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배상법의 맥락에서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이나 직무행위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 요건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지와 장애인의 접근권이 제한된 원인 제공자를 개별 편의점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피고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더 나아가,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이 사건 쟁점규정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장애인의 정신적 손해가 전부 또는 일정 부분 회복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대법원은 각계 각층의 의견 수렴을 위해 유관기관에 서면 의견서 제출을 요청하였다고 밝혔으며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한국지체장애인연합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과소하게 규정한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피고의 부작위가 장애인 접근권을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사회보장법학회는 ‘피고의 부작위가 위법하므로 피고의 장애인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긍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건축공간연구원은 ‘우리나라 건축에서의 편의시설 설치의무 기준이 해외 주요국의 법적 기준보다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법령상 물리적인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시설에 대하여도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체수단이나 인적 서비스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기획재정부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경우에 소상공인이 받을 수 있는 세제혜택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다.
공개변론은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약 150분가량 진행되며 두 가지 쟁점에 대한 원고 및 피고 대리인의 변론과 참고인들의 진술이 있을 예정이다. 원고측 참고인으로는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배융호 이사와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중권 교수가 참여하며 피고측 참고인으로는 ▲한국장애인개발원 환경정책기획팀 안성준 팀장과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안병하 교수가 참여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번 공개변론은 대법원의 판결 결과 이전에 장애인 접근권이라는 주요한 권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성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며 “국민의 한 사람인 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공개변론의 결과에서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평등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법규정으로 인해 장애인의 접근불가 시설은 늘어만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해당 단체는 이 소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0월 7일부터 23일까지 매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공개변론 현장방청은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신청 접수를 받아 지난 23일에 당첨자에게 배부가 완료되었으며 실시간 방송이 대법원 유튜브, 네이버TV,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될 예정이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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