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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병은 계속 진행된다

근육장애인 이야기

본문

 
우리는 근육병에 대해서, 또 근육장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이름 그대로 ‘근육’에 병이 있다고, 그래서 장애로 진단받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병이나 장애로 진단받는 것 이상으로 근육병과 근육장애가 ‘진행성’이라는 무서운 사실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걸음>에서는 근육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근육장애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양지원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사무국장, 정영만 서울다누림관광센터 센터장, 정태근 한국근육장애인협회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육장애인의 삶, 정말 어. 렵. 다.
 
근육병의 사전적 의미는 ‘점진적인 근력 감소로 인한 보행 능력의 상실과 호흡 근력의 약화, 심장 기능의 약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군’이다. 염색체의 돌연변이가 원인으로 지속적인 근육의 손상이 나타난다. 근력이 점점 약해지는 진행성으로, 근지구력이 약화되어 잘 넘어지거나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진다. 대한민국에는 약 2~3만여 명의 근육장애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근육장애인은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 걸까.
 
양지원 “근육장애인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병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근육장애는 희소한 질병으로 아직도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또 근육장애로 진단을 받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앞으로 내 몸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줄 만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단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질병이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뿐입니다.”'
 
정태근 “근육병은 진행성이라 발병 초기에는 근위축 진행으로 중증장애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에 따라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큽니다. 온몸의 근육이 –자율, 비자율 신경계 가릴 것 없이– 급격히 소실되고, 심장과 폐 근육에 침범하면 호흡 발작과 심장마비 돌연사에 늘 노출되어 있기도 합니다. 중증장애인이 된 후에는 근육장애인마다 다르겠지만 사회구성원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경제활동은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게 됩니다.”
 
정영만 “근육장애인은 진행성이기에 모든 게 다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드는 순간부터 다음날 눈을 뜨고 다시 잠들기 전까지의 기본적인 삶 자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몸과 정신의 싸움을 시작하고, 내 신체와 맞지 않는 형편과도 싸웁니다. 감각은 있으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몸과 싸우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절망에 빠지게 되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겠죠.”
 
정 센터장의 표현을 통해 근육장애인의 삶을 상상해 보라. 근육병이 진행되어 근육장애인이 된 몸을. ‘병’이 심화되어 ‘장애’로 진단받게 됨에 따라 감각은 있지만 본인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 얼마나 많은 답답함과 불편함, 어려움이 있을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씻고 옷을 입고 걷는 것과 같은 ‘일상’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활동지원사의 지원이 꼭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활동지원사가 있더라도 근육장애인의 마음처럼 지원이 쉽지 않다. 그래서 정영만 센터장은 ‘마음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영만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과 같은 사회생활을 할 때도 화장실 이동과 식사 등에 이르기까지 타인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사실 많지 않아요. 결국, 내 뜻과는 달리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더욱이 진행성이라 하루가 다르게 점차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요구해야 하는 삶에, 남들처럼 사회생활과 경제활동까지 하기 위한 조직 구성원의 역할과 인간관계, 자기 업무의 역할 등 자기에게 주어진 복잡한 삶을 헤쳐 나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정말 ‘어. 렵. 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꼭 필요한 제도적 지원 : 보조기기와 활동지원서비스
 
근육장애인은 진행성으로 몸이 계속해서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근육장애인 스스로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만큼, 몸을 움직이고 활동을 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보조기기와 활동지원서비스다. 인터뷰에 응한 당사자들도 제도적으로 가장 필요한 부분에 대해 ‘보조기구’와 ‘활동지원서비스’를 꼭 언급했다.
 
정태근 “근육장애인 대부분은 매우 심한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부양의무자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활동지원서비스가 충분히 지원되어야 하고, 고기능의 보조기기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되는 보조기기는 저렴한 가격이라서 그만큼 저기능으로 현실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또 근육병은 질병관리청에서 희귀질환으로 관리한다면서 진료비 등 제한적인 영역에만 산전 특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근육장애인은 진료비뿐만 아니라 각종 진단비, 호흡에 필요한 소모성 의료 용품은 제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육병 치료신약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심사평가원에서 허가해주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지원 “근육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활동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육장애는 지체장애 중에서도 최중증장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장애인은 인지적 사고 능력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회적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육장애는 다른 지체장애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심각한 근육 손상을 갖고 있습니다. 혼자서 파리 한 마리도 쫓아낼 수 없습니다. 물을 코앞에 두고도 고개를 움직이지 못해 물을 삼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근육장애인은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잠을 자는 순간조차도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에 근육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가 24시간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명과 직결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정영만 “신체장애 부분에 대한 보조기기, 그리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충분히 이뤄져야 합니다. 의료비도 많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겠죠. 특히 아직까지 근육병에 대한 마땅한 치료제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치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활 운동 등으로 진행해서 장애를 억제하거나 유지하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에 필요한 게 보조기기인데, 여기에 예상하지 못할 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 구체적인 금액을 질문하지는 않았지만, 정영만 센터장에 의하면 소비되는 의료비와 보조기기, 활동지원과 간병인 등에 대한 비용 산출과 관련한 연구가 아직까지 진행된 바가 없단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보조기기와 활동지원(간병인 포함)이다. 따라서 다양한 보조기기를 구입할 수 있는 지원체계와 근육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
 
정영만 “보조기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신체근력이 떨어지므로 단순히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 틸트(tilt, 모니터 화면을 고개가 까딱거리는 것처럼 상하로 각도 조절 가능), 리클라이닝(reclining, 편한 자세를 위해 좌석의 등받이 부분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의 고기능 전동휠체어가 필요합니다. 또 이동식 전동리프트 1개로 제한하는 게 아니라, 거치 형태의 전동리프트와 자세 변환 전동침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장애 자녀를 둔 가정에도 학교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개조바를 지원해야 합니다.”
 
세 사람이 보조기기나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해 강조했지만, 근육장애인이 겪는 의료비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근육병 진단을 위해 하는 검사만도 혈액검사, 유전자 검사, 근전도 검사, 근육조직생검, 폐기능 검사, 심전도 검사, 심장초음파 등이 있다. 이 검사를 다 받는 데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또한 발병 이후 진행성이라도 최선의 기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재활치료도 하게 된다.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본인부담금까지 생각해 본다면, 근육장애인이 지출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이 과연 얼마나 되는 걸까?
 
 
근육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살아내기
 
정태근 “근육병 초기에는 다리 근육의 약화로 걸음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택시를 잡아야 되는데 태워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근육장애인은 대부분이 중증이니까 사고로 인해 척수장애인이 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육장애인은 척수장애인과 다른데도 말입니다.”
 
정영만 “처음 진행이 되던 시점엔 계단에서 굴러 크게 다쳤던 적이 있고, 도로를 건너다 넘어졌는데 일어나지 못해 곤란함을 겪었던 적도 있었고요. 화장실에서 넘어졌는데 도움을 줄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상황도, 먹고 싶은 게 있었는데 지원해 줄 사람이 없어서 입맛만 다신 상황도 있었지요. 근육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도 많았기에 이런 상황들을 에피소드로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양지원 “근육장애인은 숨을 쉴 때조차 근육으로 이루어진 심장과 폐로 인해 인공호흡기라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숨을 한번 내뱉는 것조차도 본인 의지로 할 수 없다는 문장으로도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진행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근육장애인이 겪는, 또 앞으로 겪어야 하는 상황들에 대해 공감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양지원 사무국장은 말한다. 처음에는 자주 넘어지는 사소한 변화가 나중에는 걷지 못함을 인정하고 계속되는 진행에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고. 근육병이 생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하지만 당장 내일 죽지는 않는다고. 서서히, 천천히, 조금씩 생활이 평범함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한다고.
 
어찌 보면 근육장애인의 이야기는 슬프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지면에 이야기를 들려준 세 사람처럼, 근육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장애인도 그렇겠지만 장애로 인한 부분에 경제적으로 많은 비용이 부담되고,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또 살아내고 있는 근육장애인에 대해 공감과 관심을 넘어 제도적인 개선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함께걸음>도 근육장애인들이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걸음 할 것이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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