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을 학대한 스님에게 면죄부를 주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력하게 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성명]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7월 31일)
본문
32년 동안 절에서 발달장애인을 학대한 스님에게 끝내 면죄부를 쥐여주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력하게 만든 사법부를 규탄한다!
지난 7월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무려 30여 년간의 장애인 착취 사건에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유죄,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위반 무죄를 인정하며 단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명의를 도용하여 마음껏 이용한, 노동력을 착취하며 ‘울력’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훼손한 자에 대한 사회의 정의는 단돈 500만 원이다.
사법부는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행사하는 국가기관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권익을 구제하며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심판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존립의 이유가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의무를 부여받은 이들의 이와 같은 비상식적 수준의 장애 감수성에 우리는 깊은 유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수많은 장애인과 인권 활동가의 의지와 투쟁으로 쟁취한 제도로서,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가열하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한 그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입각한 사법부의 판단은 이러하다.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피해자를 차별적으로 대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9조 제1항의 구성요건 중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사정에 해당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고,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차별구제조치나 손해배상, 국가인권위원회 차별판단 모두 해당 요건을 들지 않는다. 이는 발달장애인이 불이익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 한순간도 고려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기득권의 오만한 판단이다.
“피해자로 하여금 사찰 내 종교적 사역에 비장애인 스님과 같은 지위에서 참여하도록 한 피고인의 조치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고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에 오히려 부합하는 정황으로 볼 여지가 있을 뿐 ‘장애인에 대한 악의적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함부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피해자는 승적에 승려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1심 2심 법원에서는 모두 피해자가 수행한 고강도의 노동은 스님이 행하는 울력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피해자가 종교적 사역을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고려했을 때 스님의 호칭과 울력은 단순히 피해자의 노동력을 손쉽게 착취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의 수단으로 이용된 것은 아닐지 재판부는 의심하고 고려했어야 했다.
불교 정신에 반하는 수 차례의 폭언과 폭력을 감내하면서 노동하는 것이 그들이 정의하는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인가. 피해자를 가해자의 부를 위한 ‘도구’로 이용한 사실을 보고서도 어떻게 재판부는 ‘악의적 차별행위가 아니었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사법부는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 없이 '울력'이라는 허울만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확립해 온 "정당한 노동권의 보장, 장애인의 권익 보장,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피해자에 대한 총 12회의 폭행 혐의로 2019.11.30.경 벌금형이 확정된 피고인의 범행도 장애인 비장애인 여부와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수준에 불과하여”
경미한 폭행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1회의 폭행만으로도 명백한 형법 위반 사항에 해당하는데, 본 사건에서는 뺨 때리기, 발로 수 차례 차기, 나무 괭이로 머리 때리기, 팔 꼬집기 등 최소 10회 이상의 폭행과 폭언이 반복되었음에도 사법부는 경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여된 장애 감수성 뿐 아니라 폭행 범죄에 대한 경각심마저 상실한 사법부의 바닥난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사건은 종교를 이용한 발달장애인 대상 착취사건이다. 사법부는 피해자가 오랜 시간 머문 종교시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특수성과 ‘가스라이팅’형 범죄피해 노출의 취약성을 반드시 고려했어야만 했다. 판결문 어디에도 피해자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준 것’이라는 피고인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피해자가 일관적으로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한 내용은 묵살한 사법부에 실망을 넘어 허무함까지 느껴진다.
종교시설의 경우 관할 관청의 관리감독 범위에서 제외되어 인권침해가 일어날 소지가 높으며 이 사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묻혀져 있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 또한 선할 것이라는 믿음과 종교적 기대로 인해 사회적인 감시와 자정기능 역시 작용하기 어렵다. 해당 판결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어 온 수많은 미신고 시설과 기도원 등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도 면죄부를 준 셈이다.
장애인 학대 사건에 있어 가해자에 대한 엄벌은 유사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전제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이 판례가 다른 장애인 차별 및 학대사건에서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우려스럽다.
부당한 판결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 연구소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가 장애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반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위해 끝까지 이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다.
2024년 7월 31일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상기 내용은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작성 및 배포한 성명서 원문입니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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