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내 장애인 학대 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 규탄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결실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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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내 장애인 학대 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 전체 사진 ⓒ함께걸음
32년 간 절에서 '보호'라는 이름 아래 노동착취와 폭행, 명의도용 등을 당한 한 발달장애인의 학대사실을 두고 피해자와 장애인단체는 2018년부터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법정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1심과 2심에서는 피고인에게 각각 1년과 8개월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피해자가 절에서 제공한 육체적 노동에 대해 가해자는 불교 수행인 '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에서는 그 정도를 넘어선 장애인 학대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가 있던 절에 당사자 이외에도 비장애인 여러 명이 별도의 급여를 지급받지 않고 일을 했고 벌금형이 확정된 폭행에 대해서도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수준에 불과하며 피해자를 돌보아주고 스님으로 만들어준 주지스님의 행위가 오히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부합하다며 파기환송을 하였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다시 2심 재판부에서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한 판단을 받게 된다.
오늘 31일 오전 10시 대법원 앞에서 지적장애인 사찰노예사건 반인권적 대법원 판결 공동대책위원회(전국장애인부모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하 공대위)는 이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 한 사건이었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A씨가 절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경찰에 고소했지만 수사기관은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오직 단순폭행죄로 약식명령 벌금 500만 원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에 장애인단체의 개입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 ⓒ함께걸음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 법 어디에도 장애인 차별 판단 시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없어”
그러면서 이번 판결에서 차별행위를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부당한 취급할 때만 성립된다고 본 점을 이번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차별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법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고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차별구제조치나 손해배상, 국가인권위원회 차별판단 모두 이 요건을 들지 않는다”며 근거 없이 해석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이어서“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비장애인도 똑같이 불리하게 대하면 된다. 장애인을 한 대 때리고, 옆에 있는 비장애인도 한 대 때리면 차별이 아닌 것이냐”며 “적어도 수익적 행위가 아닌 침익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취급했는지 여부를 따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임 변호사는 “이 사건 재판장(권영준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본인이 소수종교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수자를 잘 대변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며 “피해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했던 원심의 사실관계를 대체 무슨 근거로 대법관이 해석한 것이냐.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12차례 폭행을 행사하고,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명의 도용하여 부동산을 매입하고, 1심 선고가 나기도 전에 법인으로 사찰 소유권을 이전하여 집행을 회피한 사람에 대해 자애로운 은덕이라도 베푼 것처럼 봐준 셈”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 ⓒ함께걸음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 “조계종, 유사 학대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 요청했으나 묵묵부답,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과 권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지 성찰 필요해”
김강원 부센터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판시를 보면 가해자인 피고인의 입장만 고려할 뿐 가장 중요한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시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판결 어디에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없었으며 이리저리 재단하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대상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행위를 ‘보호’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돌봄서비스와 보호의무를 제대로 제공했겠는가, 만약 복지시설, 거주시설에서 이런 행위가 발생했다면 그 시설은 어떻게 평가받았겠는가”라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데리고 복지시설처럼 기능하는 것은 신고하지 않고 복지사업을 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위법소지가 있고 관할 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니 인권침해가 일어날 소지가 높으며 이 사건처럼 오랜 세월동안 묻혀져 있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꼬집었다.
김 부센터장은 “이 사건 고발 당시 조계종 측에 유사사례가 없는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직접 종단 사무소를 찾아가서까지 했지만 종단 측은 묵묵부답했으며 이번 판결이 선고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장애인차별금지법을 휴지조각으로 전락시킨 법 해석이다.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행도 시켜주면 해당 사건의 행위들이 무죄가 된다는 장애감수성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함께걸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장애인권옹호자들이 가열차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하고자 했던‘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가치를 하나의 판결로 무너뜨려”
조인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장애인의 권리보장, 차별과 학대 근절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를 형혜화시켰다”고 밝혔다. 이어“노동력착취의 사전적 의미는 생산수단의 사유자가 노동자를 노동시간 이상으로 일을 시켜 성과를 취득하는 일”이라며“피해자가 한 노동은 가해자가 사찰은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건축공사도 가해자가 세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피해자가 한 노동의 성과는 모두 가해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다”고 강조했다.
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철저히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무시했다”며 “사전에 피해자는 스님이 되기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원한다면 노전스님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사찰에서는 노전스님에게 보수를 지급하나 우리는 줄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무보수로 고된 노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가 이해할만큼 설명하고 이를 피해자의 자유의사로 승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이번 판결의 판단기준,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반한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며 “이러한 판결이 다른 장애인차별사건에서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왼쪽)와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문석영 활동가(오른쪽) ⓒ함께걸음
이어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대변하는 발언도 진행됐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 “이 사건은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한 차별행위,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
백선영 활동가는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착취와 차별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묻고 싶다”며 “피해자가 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피고인 마음대로 피해자 명의를 도용하였는데 비장애인 스님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한 학대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인이 ‘가스라이팅’형 범죄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대법관은 더욱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법 체계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파했다.
마지막으로 백선영 활동가는 “우리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차별과 착취의 문제는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사건은 피해자 한 사람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어떤 발달장애인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문석영 활동가, “누구나 일을 하면 월급을 받아야 하고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문석영 활동가는 “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당사자가 일한 만큼의 월급과 같을 수 있냐”고 말하며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정당한 월급을 받았다면 먹고 자는 비용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모아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의 노동을 그저 의미 없는 일, 도와주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더 이상 장애인의 보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노태호 소장은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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