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논란 속에 실종된 학대받는 장애인의 현실 > 국내소식


검수완박 논란 속에 실종된 학대받는 장애인의 현실

장애인 권익옹호 이야기

본문

 
 
검수완박이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줄임말이다. 검찰은 범죄의 의심이 있는 경우 수사를 하는 ‘수사(搜査)권’과 수사 결과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재판을 열어 줄 것을 법원에 청구하는 ‘기소(起訴)권’을 갖는다.
 
 
수사를 시작하여 재판에 올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 다시 말해 누군가의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권한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고 그 권한의 남용 문제가 심각하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수사권은 검찰이 아닌 경찰이 갖고, 검찰은 기소권만 가짐으로써 그 역할과 역할에 수반되는 권한을 분배하자는 것이 검수완박으로 일컬어지는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의 취지이다.
 
 
검수완박의 결과물인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내용(검찰청법 4조, 형사소송법 196조, 198조 제4항, 245조의 7 제1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제한했다. (수사권 축소)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와 ‘경찰공무원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속 공무원이 범한 범죄’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이다.
 
 
수사 중 새로 알게 된 범죄라고 해도 수사권을 갖는 범죄와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범죄만 수사할 수 있게 되었다. (별건 수사 금지) 직접 수사를 했다 하더라도 수사한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가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수사 기소 분리)
 
 
검수완박에서 장애인 등 약자의 인권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슈로는 경찰 수사에 대한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가 있다. 피해자가 직접 자기가 당한 일에 대하여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고소(告訴)’, 피해자가 아닌 제삼자가 타인이 당한 범죄 피해에 대해 처벌해 달라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고발(告發)’이라고 하는데, 고소나 고발이 접수되면 경찰은 범죄혐의를 수사하여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검찰로 사건을 보내고, (이를 ‘송치’라고 부른다) 검찰이 판단해도 혐의가 인정되면 기소를 한다.
 
 
만약 경찰에서 사건을 수사한 후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검찰로 사건을 보내지 않고 종결하는데(이를 ‘불송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불송치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경찰이 수사를 성실히 하지 않았다거나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사법지원이 부실한 결과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서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가 접수되면 경찰은 곧바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여야 한다. 그런데 종전에는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고소인이나 피해자가 아닌 제삼자인 고발인 모두가 불송치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었고, 이의신청하면 검찰로 송치되어 검찰수사가 시작되거나 경찰에 보완 수사를 하라는 검찰의 명령이 내려졌었지만, 검수완박으로 인해 제삼자인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폐지되었다. 경찰로 수사권이 일원화되어 경찰의 수사업무가 늘어나게 되는데 피해자도 아닌 제삼자들이 고발을 남발하게 되면 경찰 수사 부담이 과중해지므로 제삼자 고발을 경찰이 통제할 수 있도록 피해자가 아니면 경찰 수사의 결과에 이의제기하지 말라는 취지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장애인의 인권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장애인 학대 사건의 피해자는 지적장애 등 정신적 장애인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시설이나 염전, 농장, 축사 등 지역사회에서 은밀하게, 장기간 착취당하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고소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고소한다고 해도 상대방이나 수사기관이 의사능력을 문제 삼기도 하는데 실제 지난 2018년 소위 ‘잠실 야구장 노예 사건’으로 불린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에서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였지만, 검찰은 고소 의사가 ‘내적 기준을 가진 의사로 보기 어렵다’라며 고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인, 사회복지종사자나 장애인 학대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 기관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제삼자로서 ‘고발’을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피해자 보호나 원활한 사건 진행을 위해 고소보다 오히려 고발이 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고발했다가 경찰에서 사건을 ‘불송치’하게 되면 더 이상 사건을 다툴 수 있는 여지도 없어진 채 사건은 사실상 영영 종결되고 만다.
 
 
검수완박이 시행된 이후 현장에서는 ‘한 번 더 다퉈볼 기회’, 내지 ‘위에다(검찰에) 호소할 기회’를 잃게 될까 봐 염려되어 형사고발을 꺼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밝혀진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인 ‘제2의 염전노예 사건’의 경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형사고발을 했지만, 경찰은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해 검찰에 송치했고, 고발인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지만 이의신청을 할 기회가 없었다. 또 다른 지적장애인 대상의 감금 및 재산착취 사건의 경우 고발 대신 고소로 사건을 진행하려다 보니 후견인 선임이 필요하여 후견인 후보자를 물색하고 후견심판청구를 진행하는 길고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인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 의사소통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가해자와의 합의 문제나 소 취하, 항소, 적절한 사법지원의 신청 등 사법 절차상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 지원방안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고소인 스스로가 이 모든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또 지적장애 때문이거나 가해자로부터 소위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당한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고소 의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고발을 통해서라도 장애인 학대범을 단죄할 필요가 있지만, 경찰이 의지가 없거나 입증해 내지 못한 경우, 이의제기할 기회가 없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고발인 이의신청권을 부활시키는 법안을 장애 당사자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발의했다. 또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의 경우에는 검수완박 이전에 이미 고소 고발을 따지지 않는 무조건 송치(제24조) 조항을 두고 있었다. 검수완박과는 관련이 없는 입법이지만 해당 조항으로 인해 아동학대 사건은 무조건 검찰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장애인 학대 사건에 대한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예지 의원이 발의했듯 고발인 이의신청권을 완전히 복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당장 모든 범죄의 고발인 이의신청권을 복원하기 어렵다면 장애인 학대 사건이라도 고발인이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거나, 아동학대처벌법처럼 특별법에 무조건 송치 조항을 두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은밀하고 은폐되기 쉬운 장애인 대상 학대 사건은 제삼자 고발 남용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주변의 옹호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신고해야 할뿐더러 고발도 해야 한다.
 
 
검수완박과 장애인 학대 사건의 고발인 이의신청권 문제, 중요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이 논란 자체에 대해 씁쓸한 마음도 든다. 애초에 경찰이 장애인 학대 사건에 대해 고소 고발을 따지지 않고 성의껏 수사하여 학대받는 장애인들을 구제하고 가해자를 엄단했다면 고발인 이의신청권 박탈이 이토록 불안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 과거에 검찰이라고 얼마나 장애인 학대 사건에 열의가 있었나를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수사권이 있던 당시에도 이의신청하면 고작 경찰에 다시 사건을 내려보내는 정도로 처리했지 직접 수사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고발인 이의신청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넘어 이 논란이 장애인 학대 사건을 대하는 수사기관의 태도와 장애인 학대 범죄의 수사절차, 장애인 피해자나 증인에 대한 지원시스템 등 전반을 다시 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작성자글.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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