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장애인의 직장생활과 삶, 엔데믹의 끝에는…
일상회복, 장애인의 사회참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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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굳게 닫혔던 국제선 하늘길이 열렸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일상으로의 회복이 본격화 된 가운데,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던 이들은 어느새 코로나19 이전 생활로의 복귀에 피로감을 느끼며 ‘엔데믹 블루’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기업과 직장인의 삶에도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시장경제가 얼어붙자 기업은 인력감축의 칼을 들었고,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확산으로 직장 내 문화도 바뀌었다. 코로나19 풍파 속 대한민국 장애인 근로자의 삶은 어땠을까? 9년 차 직장인에 접어든 이루리 씨와 정미나 씨를 만나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직장생활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루리 씨의 직장생활
국내 컨택센터 아웃소싱 기업 ‘유베이스’에서 9년 차 사무직원에 접어든 이루리 씨는 말과 수어를 모두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중증 청각장애인이다. 회사의 대표사업 중 하나는 고객사와 계약을 맺고 콜센터를 운영하는 것으로, 그녀는 콜센터 근무자를 지원하는 경영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다.
장애인이 그 능력에 맞는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하 장애인의무고용법)」 제28조에 따라 상시 5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민간 사업자의 경우 올해 기준 매월 상시 근로자 수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하여야 한다. 임직원만 1만 명이 넘는 전국 규모의 기업인 유베이스는 장애인 채용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이전부터 사내 카페테리아에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를 채용하는 한편, 최근에는 5개 분야 운동선수·발달장애가 있는 미술작가를 비롯해 장애인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팀을 정식으로 고용해 사내 전시 및 행사에 이들을 섭외하여 활동을 지원해 오고 있다. 경영지원부서 내 장애인 근로자는 이루리 씨가 유일하다. 코로나19 시기 그녀의 직장생활은 어땠을까.
이곳에 일하게 된 계기와 업무 환경은 어떤가요?
이루리 “저는 사회복지 일을 하다가 이곳에서 먼저 일하고 계셨던 지인분의 소개로 이직을 하게 되었어요. 직종을 아예 바꾸게 되었고 처음에는 업무 용어들이 익숙지 않았지만, 오랜 실무 기간을 거쳐서 이제는 업무에도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팀원들끼리 불화가 없고 저의 편의를 잘 봐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좀 츤데레(무심한 척 뒤에서 다 챙겨주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연차도 눈치 안 보고 사용할 수 있고 사람으로서의 복지가 괜찮아서 오래 다닐 수 있었어요.”
코로나19 당시,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나요?
이루리 “저는 말이 가능해서 비교적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청각장애 특성상 소통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마스크 의무착용으로 인해 더 힘들어졌다.’ 정도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저는 구화를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방식으로 쓰고 있고, 구화로도 소통이 힘들 땐 메신저나 컴퓨터 메모장을 통해 팀원들과 소통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시기엔 텍스트를 통한 업무공유가 배로 늘었고, 즉각적인 소통을 해야 할 땐 필담을 활용했어요. 또, 타 부서에 비해 재택근무가 적은 편이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재택근무가 불편했어요. 집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다보니까 효율도 떨어지고 시각적인 피로까지 더해져서 아무래도 업무에 지장이 좀 있었죠.”
▲이루리 씨(사진. 이은지 기자)
코로나19 시기 담당 업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루리 “저희 부서가 하는 일이 경영지원업무이다 보니까 코로나19 리스크를 관리하는 업무를 추가로 맡게 되었어요. 본래의 업무에 더해져서 일이 많이 타이트해졌죠. 콜센터를 운영하다 보니까 유리 칸막이 설치라던지, 코로나 검사키트 지원, 예방용품 도입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를 부서별로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했어요. 다른 직원들에게 감염병 관련 공지 및 예방·대응 조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위치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질병관리본부 보도자료나 뉴스 기사 등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더 빨리 알 수 있었어요.”
코로나19 시기에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루리 “일단은 장애가 있음으로써 겪는 불편과 어려움에 대해 장애인 근로자가 확실하게 ‘나는 이런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회사 측에서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에는 수어가 편하지만, 매번 회의 때마다 수어 통역사를 부를 수는 없으니까 내가 부족한 부분이 뭔지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들의 도움을 통해서 배려를 조금만 받는다면 제가 얼마든지 업무를 확인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알 수가 있어요. 최대한 어필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번거로워도 못 들었으면 못 들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두 번, 세 번 더 말하지 않도록 텍스트로 전달한다든지 시간적인 능률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향하고 있는 요즘, 회사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루리 “예전에는 회사 내에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까 사내 동호회도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중단된 상태예요. 회사 차원에서도 아직까진 회식을 금지하고 있어요. 코로나19가 심할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상관없이 각자 자리에서 뭉치지 않고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는 ‘혼밥(혼자 밥 먹기) 캠페인’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조금씩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정미나 씨의 재택근무 생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특정 장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는 이루리 씨와 달리 지체장애 당사자인 정미나 씨는 재택근무 경력만 9년 차에 접어든 직장인이다. 올해 6월부터 대기업 마케팅부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대형할인점을 통해 유통되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에도 재택근무만 해왔던 탓에 직접 경험했던 생활상의 불편은 없었지만, 그녀가 겪은 고용상의 가장 큰 피해는 아무래도 ‘실직’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장애인 재택근무의 현실은 무엇일까.
재택근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정미나 “제가 경영학과를 졸업해서 처음에는 금융계열공사 취업을 희망했었어요. 아무래도 일반 기업에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사기업보다는 공기업이 장애인이 일하기에 조건이 더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구직기간이 길어져서 일단은 재택으로라도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 회사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업무 환경은 어떤가요?
정미나 “작년까지는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똑같이 재택근무였고 지금과 비교했을 때 딱히 비중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인터넷에서 단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는데, 그래도 무기계약직으로 그 일을 꽤 오래 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인원 감축이 들어가면 서 권고사직을 당했고 불가피하게 재취업을 한 거죠. 채용공고 자체도 잘 안 올라오는 시기에 이직을 고려하지도 않았고 자의는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 더 좋은 기업에 취직했고, 예전에 했던 일이 저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 내용에 대한 권한도 없었던 그런 일이라면 지금은 업무가 더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진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더 좋은 거 같아요.”
코로나19가 직장생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정미나 “지금이야 취업이 잘 돼서 큰 영향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만약에 취업이 안 됐으면 저는 지금 당장 실업자 상태인 거죠. 작년 10월쯤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는데, 회사에서도 코로나19가 시작되고 1년이 지나서 인원 감축에 들어갔어요. 재택근무를 하는 저한테까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으니까 모르고 있다가, 이제 저한테까지도 연락이 오게 된 거죠. 다행히 실업급여가 끝나기 전에 취업이 되었고,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요?”
코로나19로 인해 업무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정미나 “이직으로 인해서 회사 규모 자체가 커지고 시스템적으로 잘 갖춰진 곳으로 옮기다 보니까, 코로나19 시기였지만 오히려 좋았어요. 이전 직장은 코로나가 아니었는데도 더 심했거든요. ‘내가 여기 소속되어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도 없었고 일이 있으면 이메일을 통해서 확인만 하는 정도였어요. 지금은 메신저를 통해 출퇴근 보고부터 실시간으로 업무소통까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정미나 씨(사진. 이은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생활이 아쉬웠던 부분은 없나요?
정미나 “지금 회사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라던가 회사 홈페이지가 조금 복잡하게 되어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아예 모르고 시작해서 적응하는 좀 어렵긴 했어요. 예를 들면, 기본적으로 휴가를 신청할 때 어디로 들어가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용을 알아야 하는데, 메신저를 통해 사진과 이름만 아니까 결재라인을 파악하기도 힘들더라고요. 또, 서로 친밀감이라든지 교류감이 아예 없으니까 업무를 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편하게 여쭤보기가 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코로나19 이전에는 회사에서 재택근무자를 위한 워크숍이나 사내 교육이 있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운영하지 않고 기약도 없다는 점이 좀 아쉬워요.”
코로나19 이후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재택근무가 발히 시행되기 시작했다. 대유행이 끝난 현재도 일부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으며, 21년 통계청 경제 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재택근무자는 2년 새 12배나 증가했다. 비장애인 근로자도 재택근무를 더 선호하는 추세로 노동시장이 변화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재택근무 그 자체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정미나 “비장애인으로 인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거에 대해서는 그런 걸 못 느꼈어요. 제가 여러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장애인 재택근무 일자리는 회사가 그 업무에 필요한 사람을 뽑기 위해 고용하는 느낌보다는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업종을 개발해서 뽑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크게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닌 거예요. 한 번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욕설이나 음란물,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을 삭제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한 게시판에서 장애인 6명이 똑같은 업무를 하는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을 하면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거든요.”
상시 근로자가 100명 이상인 기업 중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미달한 기업은 장애인고용법 제33조에 따라 고용부담금을 납부하여야 한다. 이는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사업주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어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와의 평등을 조정하고 사회 연대책임 이념을 바탕으로 장애인 고용에 따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인 고용 대신 부담금을 택해 책임을 공식적으로 회피하거나 명단공표에서 제외되기 위해 모집 입원보다 적게 채용하여 의무고용률의 절반만 달성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의무고용률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할지라도 장애인 근로자에게 단순하고 반복적인 질 낮은 업무만을 부여하여 장애인 채용을 고용부담금을 면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문제도 장애인 고용률 이면에 자리 잡힌 현실의 문제다.
정미나 “또 재택근무의 단점을 뽑자면,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에 일을 4시간밖에 못한다는 거예요. 재택도 점점 단시간 근무 위주로 바뀌는 추세예요. 전일제 근무를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할 수가 없죠. 건강이나 체력적으로도 출퇴근이 쉽지 않아서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데, 단시간 근무는 그만큼 월급도 반이라는 거잖아요. 만족은 하지만 너무 박봉이에요. 급여는 적응을 한다 쳐도 오후 1시에 일이 끝나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그런데,1 장애인 1 사업장’이라고 해서 다른 일을 더 할 수도 없더라고요. 이런 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장애나 건강상의 이유로 전일제 근로가 어려운 장애인에게 단시간 근로는 유용한 직업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근로자의 고용안정성 및 급여 등 생활 여건에 있어 단시간 근로자는 전일제 근로자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 근로자에게 그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일제 근무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되거나 그러한 욕구가 있어도 일자리가 없어 단시간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 장애인고용지원제도의 구조상 장애인 고용장려금 선정 기준이 되는 ‘상시 근로자 수’는 기간제, 단시간 근무 등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임금지급기초일수가 16일 이상 60시간 이상’인 ‘하나의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모든 근로자’를 말한다. 즉, 사용자로서는 전일제 장애인 근로자 1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2명의 단시간 근로 장애인을 고용해 임금을 낮추고 동시에 장애인 고용률을 높여 정부로부터 고용장려금을 받는 편이 혜택 면에서 더 좋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사업체들이 인건비를 줄이고 주휴수당 등의 비용 절감을 위해 초단기 근로자 채용 및 일자리 쪼개기에 혈안이 된 현시점에 가장 우려가 되는 문제다. 지급 조건이 되는 기준 시간을 늘리거나 고용형태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하는 등 논의의 여지가 있는 지점이다.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모두의 삶에 침투한 그 여파가 한순간에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위기의 터널 끝에서 만날 변화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은 장애인의 노동과 직업선택에 대한 사회적 기본권이 보장되는 포용적 회복의 모습과 닮아있기를 바라본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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