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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과 걸림돌, 역사이자 현주소를 비추는 판례들

디딤돌 판결 12건, 걸림돌 4건, 주목할 판결 2건으로 총 18건 선정

본문

 
 
겉보기에 같은 돌도 그 용도와 위치에 따라 우리 사회에 다르게 작용한다. 지난 9월 2일 열린 ‘2024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보고회’는 2023년 ‘장애’ 키워드가 들어간 약 3,800건의 판례를 수집해 총 41명의 위원이 의논 끝에 선정한 장애 인권에 디딤돌이 되는 판결, 걸림돌이 되는 판결, 그리고 주목할 판결의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다.
 
작년 2023년 디딤돌·걸림돌 판결은 각 디딤돌 판결 4건, 걸림돌 판결 6건, 주목할 판결 4건인 데 반해, 올해 2024년 디딤돌·걸림돌 판결은 각 디딤돌 판결 12건, 걸림돌 판결 4건, 주목할 판결은 2건이 선정되었다.
 
12건의 디딤돌 판결 중 5건은 대법원판결이었다. 법률적 해설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법원판결이 디딤돌로 들어감은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디딤돌 판결 중 대법원판결에 해당하는 판례 중 하나는 정신장애인이 면접 과정에서의 차별을 인정한 판례(대법원 2023두50127 불합격처분취소)가 있다. 해당 판례의 원고는 정신장애 3급으로,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이후 면접시험을 응시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면접위원들이 원고에게 장애와 관련된 다수의 질문을 하였고 결국 면접 결과 ‘창의력·의지력 및 발전 가능성’ 항목에 저점을 받아 ‘미흡’ 등급을 받게 되었다. 이후 추가 면접시험을 치렀음에도 최종적으로는 불합격하게 되었으며 이에 소송을 진행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면접시험에서 직무와 관련 없는 장애에 관한 질문을 함으로써 응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면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하였으며 피고가 추가 면접시험을 통해 절차상 하자가 보완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최초 면접시험에서 ‘미흡’ 등급을 받은 것에 선입견을 두고 면접에 임하였을 가능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였을 때 추가 면접시험으로 하자가 보완되었다는 주장이 적절치 않다고 하였다.
 
▲ 디딤돌 판결에 대해 발표하는 조인영 변호사
 
이 판례에 대해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법원이 고용을 ‘장애인의 소득 기반과 인격 실현과 사회 통합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 판단함에 따라 고용 영역은 차별이 금지되어야 하는 핵심적 영역으로 강조한 것에 의미가 깊다”며 “추가 면접시험으로 하자가 치유되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차별을 인정한 것에서 디딤돌 판결로 선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디딤돌 판결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장애등급으로 결정한 판결(대법원 2019두51451)이 있다. 해당 판결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 장애로 판정될 수 있다는 것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의원회는 “질병과 장애의 경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하고 있는데, 장애를 넓은 범위로 해석하게 되면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 장애로 판단한 것에 매우 긍정적 판례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만 통증 자체가 장애의 요소로 인정된 것이 아님은 아쉽고, 정도와 상관없이 경증으로만 등록되며 지속적으로 재진단을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했다.
 
▲ 디딤돌 판결과 주목할 판결에 대해 발표하는 임한결 변호사
 
걸림돌 판결과 주목할 판결은 임한결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가 발표했다.
 
걸림돌 판결 역시 다양한 판례 중, 대법원 판례가 있었다. 해당 판례(대법원 2023도2982)는 피해자가 지적장애 3급으로, 1985년부터 2017년까지 사찰에서 생활하며 2000년경부터 노전스님 역할을 맡아 예불과 기도, 마당쓸기, 농사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의 지적장애를 악용해 보수를 요구하지 않는 점을 이용하여 1억 3천만 원 상당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금전적 착취를 하였던 내용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 사건은 종단과의 관계에서의 문제에 불과할 뿐 피고인이 장애인이라 차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를 노전스님으로 대우하며 병원비 등을 지급하였으므로 차별 피해나 금전적 착취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피해자를 돌보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선정의원은 해당 판례를 디딤돌 판결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해당 판례는 장애인을 착취하는 행위 자체를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으로 인정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형해화 했다”며 이어서 “사찰이라는 공간의 종교적 특성으로 인한 폐쇄성, 피해자의 지적장애, 사찰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피해자의 상황 등 여러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지적했다. 또한 “장애인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한 가해자의 행위를 ‘선행’과 ‘돌봄’으로 포장한 것은 주체적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판결이 다른 판결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걸림돌 판결은 ▲발달장애인이 장애인콜택시를 탑승하는 경우 운전석 대각선에만 앉아야 한다는 지침에 대하여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 ▲장애학생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사건에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판례에 따른 재량행위 위법성 판단기준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소극적으로 판단한 사례, ▲투표사무원의 장애인 투표보조 제한 행위에 대하여 현행 투표보조인 제도가 장애인에게 실질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추가적인 법적 보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례가 선정되었다.
 
주목할 판결은 디딤돌이나 걸림돌 판결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장애인인권에 대해 고민하게 한 판결들이다. 주목할 판결에 들어간 판례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으로 표준휠체어에 관해서만 고정설비 안전기준을 규정한 시행규칙에 대하여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다르게 취급하여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아 입법부작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한 사례다.
 
해당 판례에 대해 선정의원은 “입법부작위에 대한 흔치 않은 위헌 결정이라 디딤돌 판결로 선정될 수도 있었지만, 해당 사안을 장애인 간의 평등권 문제로 판단하는 것에서 헌법재판소가 여전히 이동권을 국가의 ‘시혜적 급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 아쉽다”고 전했다.
 
디딤돌과 걸림돌, 주목할 판결에 대한 발표가 끝난 후에는 2부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은 최정규 대한변호사협회 프로보노지원센터 센터장이 좌장으로, 김재왕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 김성태 서울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가 토론자로 참석해 진행되었다.
 
▲ 토론자로 참석한 김재왕 변호사
 
김재왕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장애 인식에 대해 발언하였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판결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중요성을 짚으며 그만큼 하나하나가 중요할 것이라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디딤돌 판결로 선정된 사찰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잘못했다”고 하며 비판적 의견을 내었다.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어디에도 ‘비장애인과 비교해서’라는 내용은 없는데 대법원의 판결은 장애와 비장애 간을 비교하였고, 이 논리에 따라 해당 사건에 차별은 없었다고 한 것은 상당히 모순되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괴롭힘을 개인 간의 일탈로 본다면 사건 해결을 어려울 것이며 차별의 개념에 괴롭힘을 확장하여 포함 시킬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였다. 이에 대해 장애를 이유로 괴롭히는 것도 장애인차별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는 호주의 장애인차별금지법(DDA)의 제35~39조를 예로 들었으며,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제32조 ‘괴롭힘 등의 금지’ 제호 안에 장애를 이유로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범위를 규정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김재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법률해석에 관한 최고사법기관이니만큼 이러한 판례들이 다른 사건에 적용될까 우려스럽다”며 “대상 판결의 문제점을 널리 알려 되풀이를 막아야 할 것”이라 말하며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토론자로 참석한 김성태 팀장
 
다음으로 김성태 팀장은 ‘정신장애인의 진술 신빙성을 사법 절차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주제로 발언하였다. 김 팀장은 정신장애인 개개인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을 짚으며 관련 판례가 많을수록 그에 맞는 지원에 용이할 것이라 했다. 그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에게는 이동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장애인에게는 소통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신장애인에게 소통이란 권리와 신뢰성의 차원에서 중요하며 개인적 특성과 생애 배경 등 다각도 접근을 통해 법률적 지원 구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김 팀장은 끝으로 “그들의 진술을 의심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토론자로 참석한 배융호 이사
 
세 번째로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특별교통수단 관련 판례들을 통해 바라본 장애인 이동권 현황’을 주제로 발언하였다.
 
배 이사는 “올해는 특별교통수단 관련 판례가 많았는데 이들의 특징은 ‘자격’에 관한 것이다. 판례들을 보았을 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제도가 명확지 않을 때 개선이나 마련을 해야지 제도가 명확지 않으니 탑승이 어렵다거나 우리도 모른다는 식의 대응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였다. 또 “특별교통수단에 관해 해외의 경우 대중교통에 보편적으로 이동권을 보장하고, 특별교통수단은 조금 더 특수한 상황이 있는 사람이 이용하곤 한다”며 사례를 공유했다.
 
배 이사는 보호자의 동석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장애인을 아직 보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의 일례”라며 발달장애인은 보조석 탑승이 불가하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장애인 선택권 박탈의 문제로도 봐야 할 것”이라 비판하였다. 끝으로 “올해 판결에 나타난 특별교통수단 이용 거부와 탑승 거부는 우리 사회의 혐오와 편견, 그리고 차별의 축소판이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과 차별을 철폐할 때 장애인의 권리와 인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사회적 변화를 촉구했다.
작성자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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