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배상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을 환영한다.
본문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의 문제는 ‘쇼핑’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비장애인은 점심시간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거나, 귀가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서점과 꽃집에 들르고, 갑자기 배가 아파 약국을 이용하거나 동네 의원에 가면서, 내가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없는지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일상생활 또한 그래야 한다”- 대법원 2022다289051 판결문 중 일부 발췌
202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대법원이 장애인의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확히 인정하고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장애인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명령한 최초의 역사적인 판결을 우리는 뜨겁게 환영한다.
이 소송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그 설치대상을 바닥면적에 기반으로 하고 있어 사람들의 이용빈도가 높은 카페와 편의점은 사실상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황을 문제 삼은 것이다.
1998년부터 24년간 시행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제3조가 ‘바닥면적 300㎡ 미만’의 소규모 소매점을 편의시설 설치 의무에서 제외함에 따라 2019년 기준으로 1.8%의 편의점만이 경사로와 같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었다.
이에 2018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의 접근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놓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여도 여전히 방관하는 정부의 책임을 묻고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시행령의 위법성을 인정했으나, 국가의 배상책임은 부정했고, 2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졌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장애인등편의법 제7조에 따른 편의시설 설치의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한 시행령 규정을 문제 삼고, 행정입법의무의 불이행이 위법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특히, 이번 판결은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에 대해 배상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중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동안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권리 침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례가 없었으나, 이번 판결을 통해 위헌적ㆍ위법한 행정입법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 금액이 상징적이라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의 의미를 넘어,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재확인하고 유사한 인권 침해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그동안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장애인의 접근권 문제에 대하여 헌법적 권리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접근권을 단순한 이동의 편의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본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우리는 이 판결이 투쟁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법원의 판결은 시작일 뿐이다. 여전히 95% 이상의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는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판결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1층이 있는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에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2014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친 UN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를 고려하여 시기 기준, 면적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공중이용시설이 접근성을 갖춰나갈 수 있도록 단순한 법령 개정을 넘어 접근성을 가로막는 모든 형태의 물리적․제도적․심리적 장벽을 철폐하기 위한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1984년 서울의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외침을 우리 사회에 남기고 떠난 고 김순석 열사부터 1992년‘함께걸음 시민 대행진’을 통해 거리의 턱과 계단이 장애인에게 다가오는 장벽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했던 선배 활동가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2cm의 턱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이 땅의 장애인 당사자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우리 연구소는 장애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