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마주한 정신장애인의 삶, 변화의 첫 단추를 여미다 > 해외소식


몽골에서 마주한 정신장애인의 삶, 변화의 첫 단추를 여미다

몽골의 정신장애 이야기

본문

 
 
 
세계여행자들이 대개 몽골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드넓은 초원과 자유롭게 풀을 뜯는 말과 소, 밤에는 쏟아질 것 같은 별들까지. 도무지 스트레스라고는 없을 것 같은 탁 트인 낙원, 내가 갖고 있던 몽골에 대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몽골을 찾게 된 것은 그곳의 정신장애인과 관계자들을 만나 정신건강의 현주소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낙원과 같은 나라에도 정신장애인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몽골에서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장애인’을 떠올린다. 우리나라나 주변의 국가들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장애를 ‘정신장애, 심리사회적장애’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몽골의 정신장애 개념은 정신질환뿐 아니라 뇌전증,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다운증후군 등을 포괄한다. 때문에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개념을 몽골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여 처음에는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나중에야 몽골인들이 조현병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씨쩌프런(schizophrenia, 조현병)’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장애인’이라고 말하기보다 ‘씨쩌프러니떠(조현병을 가진 사람)’를 예로 들어 말하니 소통이 수월해졌다.
 
몽골 정신장애 당사자가 마주하는 일상
몽골의 정신장애 당사자 및 가족들이 자주 호소한 것은 지금까지 몽골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조사가 전혀 이루어진 적 없다는 점이다. 정신장애인의 분포와 욕구 데이터가 부재하니, 정부에서도 정신장애인의 존재를 애써 살펴보려 하지 않는 듯했다(현재 몽골 정부의 주요 관심사는 호흡기 질환, 대기오염 등이 다). 변화의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몽골은 아직 그 인식의 기회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인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정신장애 당사자들 역시 사회의 편견과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의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몽골에서도 정신장애인은 ‘미친 사람’, ‘위험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어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 달에 한 번 지급되는 장애수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18만 투그릭, 한화로는 약 7만 5600원에 불과한 돈이다(코로나 발생 이후로는 28만 투그릭을 받고 있지만, 당사자와 가족들은 이내 곧 18만 투그릭으로 회귀할 거라 예상하고 있다). 18만 투그릭은 현지인들이 느끼기에도 ‘마트에서 한 번 장 보는 금액’으로,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지조사 초반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몽골의 국립정신건강센터 등 관련 공공기관들을 방문하였고, 이후에는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공기관에서 들은 내용과 당사자와 가족들을 직접 만나 알게 된 내용은 사뭇 달랐다. 몽골 당사자의 생생한 삶은 정부 기관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 다음은 당사자 인터뷰의 일부 내용이다.
 
“일을 하려고 하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의사의 진단명 하나 때문에 증상이 경하든 중하든 사회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있다. 조현병을 가진 나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내는 아파트 관리인으로 취직한 적이 있다. 한 달 남짓 일했는데 주민들의 시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잘리게 되었다. 일한 만큼의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절반이라도 줘야 할 텐데 4분의 1만 받았다.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어느 자리든 취직을 하게 되면 처음부터 약속한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일을 하고 아무 보상도 없이 쫓겨난 적이 많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해고를 신고하거나 법정공방 하기도 어렵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니, 고용주들이 계약서 작성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인이 이를 신고하고 대처할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하여 쉽게 차별한다고 하였다. 또 취업 초기 신분증을 제출하면 어떤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고용주가 조회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장애를 숨기고 취업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정신장애를 숨기기 위해서는 고용계약 없이 일을 해야 하는데, 결국 근로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정신장애인들은 사회에서, 특히 고용시장에서 어떠한 보호망도 없이 편견과 차별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었다.
 
 
▲ 몽골현지에서의 회의모습
 
 
 
몽골의 정신보건 서비스
정신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달체계는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유일하다. 수도에만 1개소 있을 뿐, 그 외 지역에는 전달체계가 전무한 셈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병상을 보유한 정신과 전문 의료기관으로, 정신장애인은 이곳에서 약물을 처방받고 입원·외래·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다. 종합병원 중에 정신과를 보유한 병원이 있어도, 정신과 병동은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만 운영하기 때문에 입원을 원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상 수가 적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이지만, 치료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당사자와 가족들 모두 입원 치료를 기피하고 있었다.
 
현지조사를 가기 이전에 살펴본 보고서에서는 국립 정신건강센터가 운영하는 게르센터(Ger Center)가 재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여 많은 기대를 안고 방문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니 무연고자들의 수용시설에 불과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장기간 입원한 무연고자들은 게르센터로 보내졌는데, 이들에게 별도의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으며 외출이나 외박도 허용되지 않는다(외출은 관리인의 허용 하에 가능, 외박은 전면 금지). 가동할 수 있는 병상 수를 늘리기 위해 무연고자를 별도로 수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있는 게르센터
 
 
 
결국 정신장애인이 받고 있는 정신보건서비스는 약물치료가 유일하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벨기에의 지원을 받아 외래·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재활치료(음악활동, 공예활동, 독서활동, 노래방 등)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프로그램은 점차 축소되고 외래·입원환자 중 일부만 이용한다(코로나 상황 2년간은 운영 중단). 당사자는 약물치료에 기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낮시간에는 어떠한 활동의 기회도 없이 집에서만 고립생활을 해야 한다.
 
한편 인터뷰 한 당사자 중에는 자의적으로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유는 몽골에 아직 2세대 항정신병약물이 잘 보급되지 않아 대체로 1세대 항정신병약물이 처방되는데, 이는 좌불안석 증상, 침 흘림, 발작, 근육경련과 같은 부작용을 심하게 경험하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리스페리돈이 일부 처방되지만 공급량이 부족하여, 대부분 할로페리돌을 처방받고 있었다). 다만 약물 처방을 중단하면 완치된 것으로 간주되어 장애수당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처방은 받되 복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2세대 항정신병약물이 주로 쓰이고 있는데도 많은 당사자들이 약물의 작용과 부작용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몽골 당사자들의 고통은 더욱 크리라 생각된다.
 
맺음말
앞서 말했듯이 몽골에서는 발달장애를 비롯한 기타 정신적 장애가 ‘정신장애’의 개념에 모두 포괄된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몽골은 개념적으로 덜 진보되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판단은 사실 주류 정신의학, DSM(정신질환진단 및 통계편람)에 종속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의료가 발달한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DSM의 진단체계에 맞추어 정신장애 개념을 구성하고 있다. DSM은 일반화할 수 있는 정신병리가 실제로 존재하여 질병 간의 경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DSM은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있으며, 인식론적·존재론적으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정신질환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그것을 정확하게 분류하고 판정할 수 있는가? DSM은 결국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등). 따라서 다른 국가나 문화의 현상을 두고 무엇이 더 진보되었고 덜 진보되었다고 쉽게 논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정신의료시스템, 진단체계, 약물 보급이 탄탄하니까 정신장애인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몽골의 한 가게를 들렀을 때 콧수염을 가진 남성을 본뜬 기념품들이 여러 개 있어 현지인에게 그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린치니 차이넘’이라는 몽골의 가장 유명한 시인인데,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에 있을 때 이를 비판하는 글을 썼던 사람이라고 했다. 사회를 뒤덮고 있는 담론과 체제에 반하는 행위는 수많은 저항과 억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의 윤동주 시인, 몽골의 차이넘 시인의 업적을 높이 사는 이유는 그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갔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는 정신의료 패러다임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몽골과 한국의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모두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고, 낮 시간에 활동하고 싶으며, 일자리를 얻고 싶다고 말한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릴 장악하고 있는 이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작성자글과 사진. 배진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연구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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