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애인의 ‘소중한 한 표’를 위해 지금 다시 새겨야 할 권리
장애인 참정권: 선거권
본문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 대한민국 헌법 24조
“국가는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 공직선거법 제6조 1항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통로로서 민주정치 실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선거 참여를 통해 국가에 의사를 표현할 수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고 국가는 모든 국민이 가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의무를 서로 갖고 있다.
장애계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투표소의 편의시설 부재로 인한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는등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요구가 본격화되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경우,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지 않은 토론회와 유세 활동, 점자홍보물 부재로 인해 후보에 대한 정보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시켰다.
장애계의 줄기찬 요구로 시각장애인 점자 선거공보및 투표용지 제작, 공직선거법 개정,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2000)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특히 공직선거법 규정에 ▲투표편의 차량지원, ▲점자 형선거공보 작성 의무화 및 비용 국가부담, ▲장애인 거주시설 거소투표용 기표소 의무설치, ▲투표소 점자형투표보조용구 비치, ▲투표보조허용 등을 명시 해놓은 것은 지난한 법적 투쟁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현실적 장벽은 높기만 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 따르면 매 선거 때마다 투표소에서 유형별 편의지원을 받지 못해 참정권을 침해받은 사례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장애 편의지원 매뉴얼을 제작, 배포했으나 지역별 편차도 두드러지고 있었다.
2023년 장애통계연보에 따라 제21대 국회의원 총 선거의 장애 유형별 투표율을 살펴보면 지체장애는 86.3%인 반면 자폐성장애는 42.3%, 정신장애 52%로 정신적장애인의 투표율이 신체적장애인의 투표율 보다 훨씬 더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함께걸음>에서는 다가오는 4.10 총선을 대비하여 참정권 보장에 제약을 받는 장애당사자들의 유형별 어려움을 살펴보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1. 청각장애인의 참정권
수어 및 한글자막 의무화
선거기간 동안 후보자의 공약과 연설 내용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도 공직선 거법 제72조 2항에는 '후보자 연설 방송에서 청각장애 선거인을 위해 한국수어 또는 자막을 방영할 수있다'고 되어 있어 의무가 아닌 권고에 그치고 있다. 동법 제82조의 2(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담,토론회) 조항은 자막 방송 또는 한국수어통역을 ‘하여야 한다’라고 2020년 12월 29일에 개정되어 해당 방송 때는 수어통역이 필수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2~3명 이상의 후보자가 나오는 토론회에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모든 참석자를 전담하여 누구의 발언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에 따르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100분동안 수어 통역사 한 사람이 통역을 진행해 양측의 공방이나 발언의 특성들을 농인이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정당과 선거출마자들의 유튜브 등 온라인 매체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보편화되고 있어 관련 영상에도 수어와 자막을 동시 삽입하여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투표소 수어 통역 지원
이외에도 농아인단체에서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 수어통역사 상시 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바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대해 예산적 한계와 투표 진행과정에 대한 정보는 투표안내문을 통해 충분히 제공된다는 답변을 해오다 지난 20대 대선 투표때 영상통화 수어통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어플리케이션 IMO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청각장애 유권자에 비해 통역사 인력이 부족하여(통역사 1명 당 2 천 명의 청각장애인 유권자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 여전히 투표 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2. 시각장애인의 참정권
한국점자규정 준수 및 품질 검수
지난 2020년 12월, 김예지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 통과 이후 지난 대선부터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와 디지털 파일 저장매체 등 다양한 형태의 시각장애인 선거공보 제공이 의무화됐다. 점자형 선거공보물 또한 책자형 선거공보 면수의 두 배 이내로 확대됨에 따라 책자형 공보물과 같은 내용의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제65조에 따르면 대통령선거의 후보는 점자형 선거공보 대신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로 대체할 수 있으며, 디지털 파일 저장매체 또한 선택 사항으로 남아있어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들의 편의를 고려한 접근성이 완전히 보장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 점자 검수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나타난 일례로 후보자들이 점자형 선고공보를 제작해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하였으나, 일부 지역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공보의 점자를 제대로 검수하지 않아 점자표준규격에 맞지 않고 시각장애인이 내용 해독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발생하였다.
3. 지체장애인의 참정권
투표장 편의시설 설치
지난 201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공직선거관리규칙에 '투표소는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등 이동 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여야 한다'(제67조의 2)고 규정해 장애인의 투표 편의를 보장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이에 따라 투표소 설치 시에는 입구에 이동약자를 보조할 투표사무원 등을 배치하거나 임시 기표소를 설치하는 등 이동약자가 투표하는데 지장이 없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규정에는 예외조항이 있다. '다만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하여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것. 이로 인해 투표소 내 편의 시설 설치를 피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2층 공간에 투표소를 마련하는 등 전체 투표소 중 10% 가까이가 여전히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 현행 투표소 설치와 관련해 공직선거법은 투표장의 층수, 편의시설 등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4.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공보물 제작
지적·자폐성 등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간결한 단어, 그림 자료, 영상 등을 활용한 선거 절차 및 선거 방법을 알기 쉽게 제작해 배포할 필요가 있다. 또 각 세대에 발송되는 투표안내문에 선거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약 등을 풀어 써놓은 자료가 함께 동봉되어야 하며 투표용지에 후보 사진, 정당 로고 등을 삽입하는 방법을 고려하여 발달장애인의 투표율을 타 장애유형만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 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선거제도와 투표 방법 등이 쉽게 설명된 안내책자를 자립생활센터, 주간보호센터, 거주시설, 복지관 등 당사자들이 자주 가는 곳에 배포할 필요가 있다.
모의투표는 발달장애인이 선거 전후 과정에서 겪게될 어려움을 해소하고 자연스럽게 투표 방법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2018년 5월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모의투표를 진행했던 것처럼 정부 차원 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실전훈련이 필요하다.
5. 중증재가, 시설 거주 장애인의 참정권
거소투표의 절차적 공정성 확보
공직선거법 제38조에 따라 병원·요양소·수용소에 기거하는 자,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어 거동할 수 없는 자는 거소투표를 할 수 있다. 거소투표를 희망하는 장애인 또는 거주시설 등에서는 선거인명부작성기간 중 구·시·군의 장에게 서면으로 거소투표신고를 하여야 한다. 거소투표자는 선거일 10일 전까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송부받은 투표용지에 1명의 후보자 또는 정당을 선택하여 기표한 다음 회송용 봉투에 넣어 등기우편으로 발송한다. 또한 10명 이상의 거소투표인을 수용하고 있는 기관·시설의 장은 일시·장소를 정하여 거소투표를 위한 기표소를 설치할 의무가 있다.
다양한 사유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거소투표 제도는 더 많은 이들의 참정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으나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오고 있다.
첫째로, 거소투표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인해 당사자 들이 참정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22년, 정신장애인 A씨가 폐쇄병동에 입원해있어 선거권이 제한될 위기에 처해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고 인권위 조사 결과 해당 병원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로 부터 관련 절차를 안내받지 못해 입원환자에 대한 거소투표를 신청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로, 거소투표자는 직접 선거와 비밀 선거의 원칙을 침해 당할 위기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 직접 선거 원칙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 본인이 직접 투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족, 시설 관계자 등 제 3자에 의해 당사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기표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거소투표 제도가 가진 한계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이들의 참정권이 침해당했을 때의 신고절차를 구체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떠한 경우가 참정권이 빼앗긴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며 반복적인 사례가 발생할 경우, 선관위 차원에서 예방할 수 있는 대책도 강구 해야 할 것이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일정
3월 19일 ~ 3월 23일(5일간) 거소투표 신고 및거소투표신공인명부 작성
※ 신고서식: 가까운 구·시·군청, 읍·면사무소 및 동주민센터 비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통합자료실(선거자료)’ 메뉴의 ‘각 종서식’』에서 거소투표신고 서식을 출력하여 사용 가능
※ 장애인 거주시설에 기거하는 사람은 통·리·반의 장의 확인 필요
※ 거소투표신고대상자 중 점자형 투표보조용구가 필요한 선거인은 관할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하여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신청할 수 있음
3월 31일까지 거소투표용지 발송 (선거공보, 안내문 동봉)
※ 선거일(4/10) 10일 전까지 기표 완료한 투표용지 발송
※ 거소투표 시 타인에 의해 참정권을 침해당했을 경우, 본인 거주지역 선거관리위원회 통화(국번없이 1390) 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선관위 신문고’를 통해 신고 가능
4월 5일 ~ 4월 6일 사전투표 (오전 6시 ~ 오후 6시)
※ 필수 준비물: 신분증
※ 주소지에서만 투표가 가능한 4월 10일 선거일과 달리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기간
4월 10일 투표(오전 6시 ~ 오후 6시)
※ 필수 준비물: 신분증
※ 주소지에 따라 정해진 투표소에서만 투표 가능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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