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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축구, 들리는 열정 : 프라미스랜드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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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도면 뛸만한데?” “이 정도면 시원한 거지”
 
30도를 훌쩍 넘은 날씨, 송파의 한 축구장에 여름의 햇빛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공을 차는 사람들이 있다. 시각장애인 축구팀 ‘프라미스랜드’의 선수들이 그러하다. ‘잘그락, 잘그락’ 굴러가는 공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있었다. 
 
시각장애인 축구라고?
 
대한민국에서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축구에 대한 관심을 범국민적으로 공유했던 2002년 월드컵부터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까지. 이제 누군가에게 축구란 어떤 것인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축구는 어떨까?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같은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 시각장애인 축구공은 일반 축구공에 비해 잘 튀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축구란.. 축구보다도 일명 ‘작은 축구’라 불리는 풋살과 더 가깝다. 팀은 4명의 필드 플레이어와 골키퍼 1명으로 구성되며, 경기는 전후반 각각 20분씩 진행된다. 경기장은 40m x 20m 크기이고, 사이드라인에는 공이 나가지 않게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골키퍼는 비장애인이나 약시자가 맡고 수비 시에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가이드는 골대 뒤에 서서 공격 시에 팀원들에게 위치와 지시를 내린다. 선수들은 소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관중들은 침묵을 유지해야 하며, 선수들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스페인어로 ‘간다’는 뜻인 ‘보이(voy)’나 ‘고(go)’ 등의 단어만 사용할 수 있다. 공 안에는 방울 주머니가 달려있어 굴러가거나 튀길 때마다 소리가 난다. 선수는 이 소리를 들으며 공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축구가 좋아 모이는 프라미스랜드
 
2012년도, 프라미스랜드는 시각장애인 축구의 저변 확대와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동아리 프로그램으로 창단되었다.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은 선수들의 대회 참가를 돕거나 안전·운영인력 동원, 교통 지원 등 선수들이 축구 외적인 것들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끔 돕고 있다고 한다. 창단 이래 주기적으로 꾸준히 모임을 이어오고 있으며 시각장애인 축구를 할 수 있는 지역별 단위가 많지 않다 보니 격주에 한 번 모일 때마다 소속 구분 없이 누구나 함께하고 있다.
 
“우리 축구단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편하게 형 동생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거? 어차피 우리가 지고는 못 살 것처럼 뛰는 것도 아니니까 서로 즐겁게 땀 흘리다 가자는 게 모임의 가장 큰 목표죠!”
 
길게는 25년의 구력, 짧게는 오늘이 처음.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실력과 나이에 직업도 다 다르지만 프라미스랜드는 ‘축구’라는 공통 분모로 뭉치고 있다.
 
 
평생의 좋은 친구, 커다란 취미, 스트레스 해소처
시각장애인 축구의 매력
 
격주마다 열리는 이 시간을 위해 선수들은 평균 1시간, 많게는 1시간 반을 달려온다. 준비부터 귀가까지 세어 보면 황금 같은 주말 중 하루가 축구로 다 보내진다고 말한다. ‘평생의 좋은 친구’, ‘커다란 취미’, ‘스트레스 해소처’ 등등 선수들이 말하는 시각장애인 축구의 의미는 각자 다 달랐지만 일상에 치여 지냈던 몇 주간의 피로를 풀러 그들은 축구장에 다시 나오게 된다.
 
“OO 씨는 목소리를 들어보니까 힘이 좋을 것 같아”
“제가 골볼을 합니다”
“그럼 축구도 곧잘 잘하겠네. 오늘 기대할게요”
“OO 씨, 목소리 크게 내는 게 장땡이에요”
 
마침 취재 날 축구단에 처음 온 선수가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옆에는 축구단 고참 선수가 꼭 붙어 알려주고 있었다.
 
선수들이 시각장애인 축구를 처음 접할 때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두려움’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선수들에 부딪치지는 않을까, 혹여 다치지는 않을까 두렵단다. 그래서 장애인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진입장벽이 높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 축구가 도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발을 들인지도 25년째인 오용균 선수는 시각장애인 축구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두렵죠. 늘 부상이 도사리고 있고요. (…) 근데요, 시각장애인들은 살면서 자기 의지대로 어딜 힘차게 뛰어간다거나 누구랑 부딪치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마라톤이나 러닝도 옆에 가이드가 함께하고 그 밖에 평소 일상에서도 늘 조심히 다녀야 하니까요. 축구에서는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해방감이 크죠. 이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 프라미스랜드 선수단과 감독
 
학교 체육의 축소, 시각장애인 축구 저변의 쇠약으로 이어져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더 많이 생기길
 
대한민국 시각장애인 축구 대표팀은 2004년 아테네, 2008년도 베이징패럴림픽에 출전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출전권 경쟁을 하고 있지만, 선수단의 고령화는 어려움을 낳는다.
 
두 대회 모두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프라미스랜드의 오용균 선수는 “제가 맹학교를 다닐 때는 잘 안 보이더라도 나가서 엉켜 놀고 뛰어놀았는데 이제는 워낙 개인화도 많이 됐고, 운동 말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서.. 학교 체육이 많이 축소됐죠. 왜 그런가 제가 찾아보니까 시각장애 아동을 둔 학부모들이 아이가 혹시 다칠까 봐 체육활동을 많이들 반대한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선수들이 배출이 안 되니까 가뜩이나 얇은 선수층이 많이 위기예요. 젊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줘야 해요.”라며 현재 실정을 이야기했다.
 
프라미스랜드의 이형주 감독은 “다른 국가랑 경기를 해보면 매년 새로운 선수들이 나와요. 그에 반해 우리는 계속 같은 선수들인 거죠. 운동이라는 건 학생 때부터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기회가 적어요.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죠.”라며 입을 모아 ‘청소년기 경험 확대’를 강조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정기적으로 오는 선수들의 수도 줄었다고 한다. 많게는 스무 명까지도 모였던 것이 이제는 열 명 내외로 유지되고 있다. 가정을 꾸리고 일이 바빠진 이유도 있다지만, 빠지는 수만큼 채워지지 않은 건 분명 선수층 약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형주 감독은 2023년 화성시에 시각장애인 축구 실업팀이 생긴 것을 예로 들며 시각장애인이 즐길 체육의 선택과 경험의 폭을 넓히는 데 앞으로 여러 시·도들이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것,
프라미스랜드의 목표이자 계획
 
“그럼.. 시각장애인 축구를 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하면 돼요?
 
“프라미스랜드 모일 때 오세요! 제일 쉬운 방법은 같이 뛰어보는 거예요. 우리는 누가 오든 반기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연락만 미리 하고 오면 돼요.(웃음)”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 축구에 관심 가지고 함께하기 위해 축구단을 지속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자 시각장애인 축구의 목표라고 한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할 곳이 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프라미스랜드는 앞으로도 몇 시간을 달려와 모일 것이다. 무더운 여름, 송파의 한 축구장에서 울렸던 “보이!” “보이!” “슛~!”의 외침이 더 넓은 무대에 울려 퍼지길 기원한다.
 
*프라미스랜드 축구 가입 문의: 02-3433-3834(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통합복지팀)
 
▲ 드리블하는 모습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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