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사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천막사진관
본문
<함께걸음>은 장애인권언론이기에 어떻게든 ‘장애’와 연관된다. 하지만 <함께걸음>이 가진 장점 중 하나가 꼭 ‘장애’와 관련되지 않더라도 <함께걸음>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지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함께 하는 세상’에서 지금은 ‘세상, 한 걸음’으로 바뀐 코너가 바로 그곳이다. 그동안 <함께걸음> 기자로 근무하면서 ‘세상, 한 걸음’에 꼭, 반드시 소개하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2022년을 마무리하는 11,12월호에 소개할 수 있도록 삼고초려 끝에 취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천막사진관’이다.
‘이동형 사진관’, 천막사진관의 탄생
보통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진관을 방문한다. 그런데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천막사진관은 ‘천막’이라는 독특한 컨셉이 있다. 정해진 위치의 건물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쉽게 표현하면 ‘이동형 사진관’이다. 사진작가가 카메라 등 촬영장비와 ‘천막’을 준비해서 사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직접 가서 사진관처럼 꾸민 뒤 사진촬영을 하는 곳이다. 당연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천막사진관의 탄생 배경에 대해 오상민 작가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9년 정도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근무를 했었어요. 다른 직장인들이 그렇듯 이런 저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사실 직장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하는 고민이죠. 계속 이 길을 가야 할지, 아니면 더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할지에 대한 생각이죠. 그때 후배와 함께 낸 아이디어가 길거리에서 인물사진을 찍는 거였어요. 인물사진을 찍는 건 회사 다닐 때도 계속 하던 일이었죠. 어떻게 보면 그때는 특정인물, 소위 언론에 나오는 사람들, 돈 많이 벌고 인지도 있는 사람들 위주로 촬영하죠. 그런데 거리에서도 일반인들에게, 아니면 사진이 좀 필요한 분들에게도 사진을 찍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아이디어로 생각했지만 실제 길거리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플리마켓이 열리면 그 기간동안 천막을 쳐서 외부로부터 빛을 차단하고 천막 내부에 조명 등 촬영 장비를 설치해서 ‘이동형 스튜디오’를 만들었다고 한다. 플리마켓에서 문을 열자마자 시작해서 문을 닫을 때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을 미친 듯이 사진 찍고 현장에서 출력과 액자 작업을 했다고한다. 그 시작이 직장인에서 밖으로 나온 첫 행동이었고 독립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천막사진관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이 ‘이동형 사진관’이죠. 사진관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분들, 아니면 사람을 기다린다는 개념보다는 사진이 필요한 분들에게 제가 가겠다는 개념이 천막사진관에 대한 개념인 거죠. 그래서 어디든지 말 그대로 제가 천막을 들고 카메라와 조명을 들고 그분들이 필요한 사진을 현장에서 찍어 드리겠다는 겁니다.”
길거리에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찍는 것도 그 의미가 나쁘진 않지만 정말 사진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텐데, 그분들에게 가서 사진을 찍어 드리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깊어진 오상민 작가의 대상에 대한 고민이 현재 천막사진관의 가치관이 된 것이다. 여기서 천막사진관이 찾아가는 대상, 즉 꼭 사진이 필요한 사람들 중에 장애인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지역에서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의 증명사진, 또 발달장애인의 장애특성에 따라 사진관 방문이 어려운 가족의 가족사진을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이동하는 사진관’ 천막사진관이 움직이는 것이다.
▲ 특수학급 가족사진 촬영을 위해 학교 체육관에 천막을 펼쳤다. 천막사진관은 이동형 사진관이다.
천막사진관의 장점, 소통
오상민 작가는 사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천막사진관 인물시리즈’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진을 촬영하면서 오상민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소통’이다. 사진을 통해 인물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되지만, 그 ‘어떤 모습’이 작가와 대상자 사이의 충분한 소통과 호흡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게 있어 사진은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입니다. 저의 사진 촬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진을 보는 분들에게도 제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저는 이 사람을 기쁘게 봤는데 보는 사람에겐 슬프게 보인다면 그건 저의 표현방법이 잘못된 거죠. 그래서 천막사진관 인물 시리즈는 간단하게 프로필 사진을 찍는 그런 접근이 아니라 최소한 한 달에서 길면 두 달, 세 달 정도까지도 계속 인연을 맺고 찾아 뵙고 인터뷰도 하면서 좀 긴 호흡으로 가고 있습니다.”
사진, 그리고 천막사진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상민 작가의 사진에 대한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 그 무언가가 잘 느껴진다. 천막사진관이 이동형 사진관이라 카메라와 조명, 프린트기, 노트북 등 바리바리 챙겨야 할 게 적지 않은데, ‘이동형’과 ‘장비’ 보다 결국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느꼈다. 바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찍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이 장비나 촬영 방법 같은 물리적인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누군가에게 좋은 사진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누군가에게 좋은 사진을 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제 자신에 대한 만족이 더 커요. 좋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그 열망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일 첫 번째는 제 자신에 대한 부분이 제일 커요. 그래서 남들이 잘 찍었다고 해도 제가 아직 마음에 안 들면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오상민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직업으로 하고 있고, 사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서 사진을 찍어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지만, 찍는 사람과 찍히는 대상과의 충분한 소통과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말 솔직하게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바로 천막사진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충남 서산 모수내길에 있는 서준이네 집 앞에 설치한 천막사진관의 모습. 서준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청각장애인이다. 가족이 수화로 “가족은 희망이고 사랑입니다”를 표현하고 있다. 천막사진관은 이동식 사진관이다.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진’이란 매개를 통한 감동
천막사진관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할 것이다. 오상민 작가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사진을 찍기 어려운 사람 들을 만나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만나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오상민 작가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풀어 놓으면 지면이 모자랄 게 뻔하다. 그렇기에 기억에 남는, 독자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에피소드를 부탁했다.
“얼마 전에 발달장애인들의 가족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가족마다 1시간씩 배정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한 가족의 주인공인 발달장애인이 사진 찍는 공간으로 못 들어왔어요. 한 40분 정도 기다렸는데도 들어오는 걸 힘들어 해서 이러다가 사진을 못 찍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만보니 친구가 복도에서는 잘 돌아다니더라고요. 생각을 바꿨죠. 꼭 준비된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있을까? 조명 하나 들고 복도에 가서 앉았어요. 복도에서는 아이도 거부감이 없었지요. 주인공이 왔다갔다 할 때마다 가족들이 동선에 맞춰 가족사진으로 찍었었어요.”
사진 촬영 후 그 친구의 부모님은 가족이 4명인데 4명이 한 프레임 안에만 들어와도 감사하다고 했단다. 카메라를 보거나 포즈를 취하거나 이런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 4명의 뒤통수라도 상관없으니까 하나의 컷 안에 나와도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가 복도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덕분에 카메라도 봐 줬고, 부모님과 안는 포즈도 취했을 뿐만 아니라 갈 때는 오상민 작가에게 ‘안녕’도 했다고 한다.
“저는 큰 걸 드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항상 크게 받아들여 주세요. 덕분에 저는 그분들의 큰 마음을 받아서 결국엔 제가 제일 큰 걸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사진은 찍은 사람이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진에 찍힌 대상, 그리고 사진을 봐주는 사람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갑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진을 큰 감동으로 받아들여주시는 경우가 있고, 그런 분들 덕분에 제가 더 큰 감사함과 감동을 받게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 더스쿠프 이윤찬 편집장과 오상민 작가. 선후배로 만난 인연은 벌써 15년이 되었다. 한명은 글쟁이, 한명은 사진쟁이다. 천막사진관 시리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찍고 있다.
모든 것은 사진에서 시작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것만 들어보면 오상민 작가가 사회공헌이나 재능기부로 소위 ‘좋은 일’만 하는 활동가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상민 작가는 사진작가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고 기업과 함께 일을 하기도 한다. 다만 천막사진관을 통해 사진을 찍으러 오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사진도 찍는 등 ‘좋은 일’도 함께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좋은 일’을 하는 계기나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 취재원으로 나종민 바라봄사진관 대표를 만났습니다. 나 대표는 사진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도 사진을 배워서 장애인들을 위한 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생각이 많아졌죠. 사진으로 이런 일을 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바라봄사진관과 인연을 이어오면서 재능기부도 하고 해외봉사로 캄보디아와 네팔에 가서 300~400 가족씩 찍어서 액자에 담아 드리기도 했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의 많은 부분이 나 대표님의 도움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며 배우고 있지요.”
오상민 작가는 지금의 천막사진관이 있게 해준 것에 바라봄사진관 외에 또 한 가지를 꼭 언급하고 싶다고 했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이다. 천막사진관으로 독립하고 공간이나 시스템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이 편집장은 현재 진행 중인 ‘천막사진관 시리즈’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바라보는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걸음’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상민 작가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을 해서 너무 좋은 게 사진에서 모든 게 시작되는 거 같아요. 제가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하든, 수익을 창출하든 사진에서 시작되죠. 또 신기한 건 사진에서 시작해서 사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출발점으로 시작해서 커지게 되거든요. 그래서 나중에는 더 좋은 인간관계로 발전되기도 하고, 지금처럼 천막사진관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 게 바로 사진인 거죠. 그렇게 사진은 저에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서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가 천막사진관을 알게 되었을 때 취재를 요청했는데, 오상민 작가는 거듭 거절했다. 하더라도 한 10년 뒤쯤 하겠다고. 삼고초려 끝에 성사된 천막사진관 취재를 하면서 어렵고 힘든 세상에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음을 느낀다. 오상민 작가는 여전히 기술적인 부분을 더 배우고 연구한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는 깊이나 피사체를 더 이해하기 위한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세상을 만나며 고민한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천막사진관. 10년 뒤에 더 멋진 모습으로 <함께걸음>에 한 번 더 천막사진관이 소개되면 좋겠다.
▲ 취재하다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비영리사단법인 바라봄 사진관을 운영하는 나종민 대표는 오상민 작가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 장본인이다.
작성자글.박관찬 기자 / 사진제공.천막사진관 오상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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