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왜 바뀌어야 하나 > 함께 사는 세상


정신건강복지법, 왜 바뀌어야 하나

장애인 권익옹호 이야기

본문

 
 
 
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되었나
2017년 5월 30일,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된 지 어느덧 6년이 되어간다. 당시 정신건강사회복지 분야 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개정 활동에 참여했던 여러 선배의 상기된 목소리와 표정을 기억한다. 제시했던 모든 법안이 그대로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씩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고 기대했던 당신들의 음성은 귓가에 아직 남아있다. 법이 바뀌면 입원제도 개편을 통해 퇴원율이 증가할 거라고, ‘복지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장이 신설되었으니 지역사회복지도 확충될 거라고 모두가 기대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선배들은 또 한 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왜 그때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이 지금은 틀린 것이 되었나. 퇴원한 환자의 3분의 1은 여전히 병원으로 되돌아가고 있고, 복지서비스는 6년 전의 것과 다를 게 없다. 결국 ‘강제입원 치료 근절하고, 복지서비스 확충하라’라는 구호는 정신보건법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 자리를 맴돌고 있다.
 
 
당시 법 개정을 통한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였다: (1) 입원제도 개선, (2) 복지서비스에 관한 조항의 추가.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심각한 강제입원율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반영되었고, 이제 정신장애인도 치료만의 대상이 아니라 복지서비스의 대상이라는 시대적 요구도 수용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현실이 바뀌지 않은 것은 이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원율을 먼저 높여야 복지서비스가 확충될 것’이라는 주장과 ‘복지서비스를 충분히 준비하고 난 다음에 퇴원율을 높여야 안정적 탈원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주장 사이에서 결국 어떠한 성과도 얻지 못한 채, 6년의 세월은 머뭇거림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사실 정말로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 먼저일까’라는 고민이 아니라, ‘뭐라도 하자’라는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부동’으로 인한 결과는 정신보건의 ‘실패’임을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신설된 복지서비스 조항들은 구체 적인 시행령이나 정책들이 없어 그저 글로만 남아있다. 강제입원율을 줄이기 위해 신설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역시 형식적이고 졸속으로 진행된다. 보호입원을 통한 입원율은 줄어들고 있지만, 신설된 동의입원제도가 악용되어 줄어든 입원율을 다시 채워 주고 있다. 이처럼 정신건강복지법의 신설 조항들은 정신보건법 시대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법이 바뀌어도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입법 기자회견 현장(2023. 03. 27.)
 
 
그럼에도 왜 다시 법인가
정신장애인의 장애인복지법 적용을 방해했던 장애인복지법 제15조를 폐지하는 것은 정신장애 당사자 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제15조의 본래 의도는 정신건강체계에서의 서비스와 장애인복지체계에서의 서비스를 중복 혜택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조항은 오랜 기간 왜곡되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장애인복지체계에서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장애인복지체계에서는 정신장애 전문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라는 인식으로 굳혀졌다.
 
 
그런데 2022년 12월,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되었다. 장애인복지체계에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할 책임이 공식화되었으므로 정신장애인도 이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 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변화는 역시 미미하다. 장애인정책국과 정신건강정책국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칸막이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이들의 ‘부동’ 자세로 인해 제15조 폐지의 기쁨과 기대는 좌절과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다들 안다. 법 하나 바뀐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부동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법률이기에, 시민사회는 다시 정신건강복지법을 바꾸어보자고 의기 투합했다. 시민사회에서 마련한 개정방안은 사문화 되어 있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복지 조항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담고, 권익옹호를 위한 여러 세부적인 내용들도 추가했다. 당연히 입원제도도 개선하고자 하였다. 현재 정신보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 보니 시민사회단체의 개정안에는 방대한 양의 법조문이 담기게 되었다.
 
 
▲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입법 결의대회 현장(2023. 03. 27.)
 
 
이 개정안은 국회로 전달되어 더불어민주당의 인재근 의원, 남인순 의원이 각각 분담하여 대표 발의되 었다. 인재근 의원은 입·퇴원제도 및 권익옹호 관련, 남인순 의원은 복지서비스 관련 조항들을 중심으로 발의했다. 그리고 올해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기존에 계류되어 있던 8건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통합, 조정하여 대안을 마련하였다. 그중 위기지원쉼터의 설치, 절차조력인 제도의 신설이 포함되어 통과되었다. 그 외의 나머지 내용들은 계속 심사를 위해 계류하는 것으로 의결되었다.
 
 
아직 나아가야 할 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된 위기쉼터 조항, 절차조력인 조항은 오랫동안 시민사회에서 법제화를 요구하였던 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는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불특정한 시기에 정신과적 위기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정신장애인은 그동안 지역사회에 어떠한 자원도 없어 불필요한 입원을 해야 했지만, 위기쉼터가 생긴다면 단기간의 휴식과 지원으로 해 결할 수 있는 위기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도 극복할 가능성이 생긴다. 또 비자의적인 입원이 허용되는 정신장애인은 입·퇴원 과정에서 자기 의견이 묵살되는 경험을 수없이 해야 했지만, 절차조력인 제도가 신설된다면 입·퇴원 과정에 충분히 자기 의사를 반영 할 수 있도록 지원받게 된다.
 
 
한편, 개정방안에 담겨 있었던 방대한 양의 다른 조항들이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또 한 번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먼저 인재근 의원안의 입원제도 개선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발의된 개정안에서는 정신장애인의 돌봄과 치료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게 하는 보호의무자 규정을 삭제하고, 비자의입원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규정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동의입원 규정도 삭제하여 강제입원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즉, 지자체에 의한 행정입원으로만 일원화하여 국가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입원을 책임지도록 하였다. 추후 이러한 개선안이 통과된다면, 그동안 사적체계에서 감당해야 했던 입원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게 되면서 입원 억제와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 돌봄을 해결하고자 하는 기제가 작동하게 될 것이다.
 
 
또 인재근 의원안에서는 당사자와 대면하지 않고 일부 서류만으로 행해졌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대면조사를 의무화하였다. 위원회 구성에서 당사자 및 가족 등 당사자의 권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여 균형 있는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강제입원의 심사 과정에서 대면심사를 의무화하자 강제입원율이 절반 이상 감소하였던 대만 사례를 참고한다면, 이 역시 입원율 감소에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인재근 의원안은 동료지원인 제도와 동료지원센터의 설립도 법제화하고자 하였다. 현재 정신보건 영 역에서는 자생적으로 설립된 당사자단체에서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아 동료지원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동료지원가를 위기, 권익옹호, 회복지원 등 다방면에서 경험전문가로 인정하고 활용하고 있는 점은 그 필요성을 잘 알려준다. 동료 지원이 법제화된다면, 현재 불안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동료지원가 일자리가 확충될 것이고 정신보건 프로그램의 질 향상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인순 의원안에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의 복지서비스 조항이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큰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이를 촘촘하게 구성하고자 하였다. 당사자, 가족,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당사자의 동의를 받 아 복지서비스를 신청하도록 하는 조항, 개인별지원계획을 수립하여 당사자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가 돌아가도록 하는 조항, 그 밖에도 고용 및 직업재활 지원, 문화예술지원, 주거 지원 등의 서비스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또 돌봄 부담을 경험하는 정신장애 당사자의 가족을 지원하는 조항도 담았다. 위기지원과 전환지원을 통해 정신장애인의 입원을 예방하고 퇴원을 촉진하고자 하였다.
 
 
남인순 의원안은 정신건강복지법이 UNCRPD의 정신을 구현함으로써 의료모델이 아닌 인권모델로 전 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장기입소와 인권 침해의 온상이 되고 있음에도 방치된 채 운영되고 있는 정신요양시설을 폐지하는 조항을 담아, 탈시설화의 흐름에 따라가도록 조정하였다. 두 법률안이 완성도 있게 통과된다면 입원과 입소로 갇혀있던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사회에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입원과 입소를 억제하고 퇴원을 촉구하며 동시에 지역사회에서의 복지 인프라를 확충함으로써 정신장애인에 대한 탈원화, 탈시설화가 현실화될 것이다.
 
 
이처럼 두 의원의 발의안은 작동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있던 것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전달체계에 놓여있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제도와 담론, 정책과 법률에 따라 행위하고 상호작용한다. 지난 6년간 정신건강복지법은 각 위치의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데도 움직이지 않게 하고, 또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했다. 이러한 커다란 비뚤림을 고치지 않는다면 정신보건은 어떠한 내용물을 갖게 된들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신건강복지법은 마땅히 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작성자글. 배진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부센터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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