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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우리는 서로가 든든한 후원자"

배융호, 전정옥 씨 부부

본문

[사람사는 이야기]

 

 

"우리는 서로가 든든한 후원자"

배융호, 전정옥 씨 부부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그들의 빨간색 애마 프라이드는 여봐란 듯이 서울 거리를 달리고 있다. 아내 전정옥 씨는 사무국장으로, 남편 배융호 씨는 든든한 후원자로, 이들 부부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장애인 편의 시설 촉진 시민의 모임"(이하 편의모임)을 끊임없이 화제로 올리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한쪽 손을 내밀어 힘껏 잡아본다.
  사실 그동안 택시비로 날린 돈이 얼마였던가. 작년 4월 결혼했으니 아직은 신혼이지만 그동안 변변하게 신혼기분 한번 내보지 못했던 그들이다. 어디를 가든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서있는 계단, 턱, 그리고 수많은 난간들. 사람들을 좋아하고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며 일을 귀하게 여기는 두 사람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골형성부전증이라는 보기 드문 장애를 갖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편, 그리고 장애우 가족으로서 새삼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리적 장벽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아내.
  "멀쩡한 여자가 저렇게 심한 중증장애우랑 결혼을……, 천당가겠구먼"
  아직도 간혹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동정적인 장애우관.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당차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는 웃어넘기지만 가슴 한구석은 씁쓸하기만 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들이 서로 쌓아온 사랑과 신뢰의 깊이만큼만 보여지길 원하는 배융호, 전정옥 씨 부부.
  올 4월이면 목사가 되는 종교인으로서 "장애인교역자후원회" 간사로 활동하며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남편 배융호씨. 오랫동안 장애아를 가르치는 특수교사로 일해오다 지난해 말 출범한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아내 전정옥씨. 24시간 하루해가 짧기만 한 그들을 맺어준 일등공신은 컴퓨터통신이었다. 두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 연애사는 전자우편함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컴퓨터통신을 통해 장애우운동을 해보자는 뜻을 같이 한 몇몇이 의기투합하여 "장애인복지 실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때가 94년 8월이었죠. 당시 모임을 주도하고 있던 저와 통신모임 내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던 정옥씨는 자연스럽게 편지를 교환하며 서로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3년 초가을쯤 장애우관련 어느 모임에서 처음으로 수인사를 나누었던 그들은 컴퓨터통신을 매개로 일 년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거의 매일 수많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던 그들은 통신모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비젼, 그리고 영화, 노래 및 사소한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고 한다. 이렇듯 공통분모가 많다보니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통신을 통해 밤을 새울 정도로 가까워졌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신기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던 우리였지만 대부분 남녀의 만남이 그렇듯이 사소한 문제로 의견충돌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95년 1년 동안 호주에 가서 공부하고 있을 때 몇 번의 위기도 있었죠. 하지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오고간 편지를 통해 서로간에 신뢰는 깊어졌어요. 단돈 100불을 들고 저를 보기 위해 시드니 공항에 내리던 융호씨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콧등이 시큰한 거 있죠. 호주에 계속 남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반쪽이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하고 서둘러 귀국했어요."
  장애우이기 전에 한 남성으로, 특수교사이기 전에 한 여인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자연스러운 순리로 사랑을 하게 된 이들의 귀결은 결혼이었다. 하지만 양가의 심상찮은 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집 건강하고 귀한 딸을 어떻게 데리고 와…" 무척이나 도덕적이고 인자하신 시부모님. "장애아를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장애우랑 결혼은 하지 않았으면…" 은근한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자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시던 친정 어머니. 사회적 편견 못지 않게 그들을 무겁게 했던 가까운 사람들의 속 깊은 우려들.
  하지만 오랫동안 장애우문제를 같이 고민했던 사람들답게 두 사람은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양가 부모님들을 설득해 나갔고 마침내 5백 명 하객들의 뜨거운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그렇게 그들은 봄이 한창 무르익어갈 때쯤인 작년 4월, 도봉구 창동의 아담한 아파트 신혼집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결혼생활 만족하십니까?" 그 질문 속에 숨겨져 있는 짓궂음까지 간파한 그들은 대답한다. "진작 결혼할 걸 그랬어요. 문제 없습니다." 장애우의 성문제도 이제 더 이상 감추거나 비밀스런 이야기가 돼서는 안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1965년 1월 서울생으로 2남 2녀 중 장남인 배융호씨. 그는 아내와 본격적인 연애를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전자우편을 띄우게 된다. "의사의 말로는 앞으로 20년밖에 살지 못하고, 아직까지 원인불명인 골형성부전증은 유전의 가능성이 있으며…" 물론 그러한 장애는 두 사람 앞에 아무런 걸림턱이 되지 않았지만 배융호 씨의 인생항로에 놓인 변화무쌍한 닻줄로 작용했다.
  "우리 용호 울지도 않고 애답지 않게 얌전하네" 자수성가하신 인텔리인 아버지와 다른 엄마들처럼 끔찍이 자식을 사랑하시던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다가 아이의 이상을 직감하고 병원을 찾게 된다. 병명은 알 수 없지만 뼈가 자주 부러지는 걸로 봐서 구루병의 일종이며….
  우리나라 내노라하는 병원들에서 받은 진단은 한결 같았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던 60년대 후반 배융호 씨의 가정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던 큰아들 때문에 더욱 빈궁한 살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칠 수 없습니다." 여섯 살 때 받은 의사의 선고에 결국 부모님도 포기하게 된다. 뼈가 부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발이 몹시 약했던 어린 배융호는 가끔 전주에 있는 외가댁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문밖 출입을 하지 못했다. 물론 휠체어는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우리 죄 때문에…" 장애아인 그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들 앞에 늘 당당하게 소개하시던 부모님이셨지만 아들이 장애를 갖게 된 것을 본인 탓으로 돌리시던 어쩔 수 없는 그 시대 분들이셨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습관적으로 잠재우며 열다섯 소년이 될 때까지 집에서만 지냈던 그는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 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독학을 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87년도 장로회신학대학을 들어가게 됐다.
  "당시만 해도 장애우들에게 대학문턱은 한없이 높기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들어간 학교는 관대한 편이었죠. 휠체어를 타고 주로 택시로 통학을 했는데, 가는 데마다 부딪히는 계단들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선후배, 동기들의 도움이 무척 컸죠."
  도서관도 못다니고 마음대로 화장실을 갈 수가 있나,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대학과 대학원 7년의 세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를 이해하려 했던 동료들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도움을 주던 사람들이 있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과 신앙이 있었기에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원 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는 또 다른 사회적 장벽이 버티고 있었다. 대학원과정까지 마친 고급인력의 전도사였지만 그를 부르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었다.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우라는 결격사유가 그를 이른바 청빙되지 않는 전도사로 만들었던 것이다. 목회를 희망했고 그 누구보다 당당한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94년부터 구의동에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을 얻어 장애인교역자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청빙이 되지 않는 목회자들을 교회에 소개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는데, 여의치가 않습니다. 현재는 장애우목회자들을 각 교회에 알리는 작업과 함께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죠."
  또한 그는 장애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를 벗어나서 장애우 모두의 문제이며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 사회 전체의 화두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장애우를 만나고 각 단체를 찾아가 교류를 갖는 것은 물론이고 세미나, 관련 모임 등을 참석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 장애우운동을 확산시키고자 컴퓨터통신 모임을 만들었던 그는 인생의 동반자인 그녀, 전정옥씨를 만나게 됐던 것이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교육심리를 공부했으며, 호주에서 1년 동안 장애우복지 이모저모를 살펴봤던 전정옥씨. 그녀는 10년에 가까운 특수교사 생활로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 대열에 들어서 있기도 한다. "대학시절부터 농촌활동과 한벗회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자원활동을 해왔고 키비탄 회장도 지냈었어요. 장애우복지를 둘러보기 위해 유럽 쪽에 배낭여행도 갔었죠.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고 어느 정도 장애문제를 간파했다고 자부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남편과 결혼해서 몸으로 부딪히는 사회적 장벽들은 너무나 심각한 거 있죠."
  그나마 다행히 얼마 전에 차를 구입해 어느 정도는 이동에 자유로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시장에 가서도 남편은 차를 주차시켜 놓고 기다려야만 했으며 4층에 있는 구청 사회복지과에 가지 위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가깝고 햇볕이 잘 드는 아파트 입구 대신 어둡고 분리수거를 모아 놓아서 지저분한 뒤편의 경사로를 이용해야만 하는 일상. 이러한 부당한 대우들과 맞서기 위해 그녀는 장애아동의 교사로서가 아니라 편의모임 실무를 총괄하는 활동가로 나서게 되었다.
  "편의모임은 한벗회 기획운영회에서 처음 제안이 돼서 호응을 얻었고, 올 2월부터는 본격적인 조직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연대 교목이신 이계준 목사님이 대표로 계시고 한벗회 관계자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죠."
  하지만 창동에 있는 그들의 살림집을 편의모임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는 등 아직은 운영상의 어려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장애우만을 위한 차원이 아니라 노약자, 임산부, 유모차를 끄는 엄마 등 우리 사회 이동의 약자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무장애공간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죠. 시민의 운동으로 전개할 계획입니다. 편의전화 개설과 구체적인 단체 행동도 할 생각이에요. 예를 들면 공공시설 등을 방문하고 개선시켜달라는 공문도 보내고, 반응이 없을 때는 그 앞에서 침묵시위 같은 집단행동도 해야죠."
  결혼 후 이삼 년 안에 장애복지가 잘 돼있는 외국에 나가 부부가 함께 공부해 보자던 두 사람의 굳은 약속을 몇 년 뒤로 접어둘 정도로 그들은 "편의모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장애복지현실이 장애우 당사자와 가족들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며 뒤에서 울분만 터뜨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뼈아픈 진단을 두 사람은 내렸던 것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한 중견작가의 자서전적인 책의 제목처럼 "장애우를 둘러싼 그 많은 차별과 장벽의 거대한 산이 과연 거기 있었단 말인가?"라는 말들을 우리는 몇 년 후쯤이나 추억으로 되뇌일 수 있을까.
  이 땅의 거리를 장애우들이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날, 자존심을 지키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는 날,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배융호, 전정옥 씨 부부는 오늘도 그들의 애마 빨간색 프라이드를 타고 서울거리를 달려가는 것이다.
  "사무실 한 켠 내주는데 없을까, 책상만 하나 들여놓으면 되는데… 늦더라도 오늘은 꼭 극장에 가서 "제리 맥과이어"를 봐요… 우리들의 2세 만들기는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죠." 그들은 마주보며 다시 한번 손을 꼭 잡아본다.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 아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장애우가 다른 장애우를, 비장애우가 장애우를, 지체장애우가 다른 장애우를, 휠체어 장애우가 목발 짚은 장애우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열어보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글/ 조 옥 객원기자

작성자조 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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