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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삐삐수첩" 만든 청각장애우 추영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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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전하는 말
            "삐삐수첩" 만든 청각장애우 추영무씨

<군대에서 쓰는 암호에서 착안해>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라고 불리는 통신수단이 청각장애우들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 초량동에 있는 장애우 공동체 "늘 사랑 가족" 식구인 청각장애우 추영무(31세)씨가 개발한 "삐삐수첩"은 현재 부산 청각장애우들 사이에서 편리함을 인정받으며 급속도로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추영무씨가 공식 명칭이 부산 청각장애우용 무선호출기 수첩인 이 "삐삐수첩"을 개발한 것은 2년 전인 92년 초, 당시 추씨는 공동체에 자원봉사자로 있던 비장애우 박일한씨로부터 군대에서 암호를 사용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삐삐수첩"을 착안해냈다고 한다. 이때 "삐삐수첩"이 가능했던 것은 소리뿐만이 아니라 진동으로 삐삐가 온 것을 알 수 있고, 삐삐에 입력 가능한 숫자가 열두 자리에 이른다는 것이 계기가 됐다.
 추씨가 "삐삐수첩"을 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청각장애우들의 의사소통 수단은 팩스가 주를 이루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팩스로 보내고 받고 해야 했는데 팩스를 이용한 통신수단은 팩스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구입하기가 벅차고 수신하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팩스를 사용할 수 없었던 청각장애우들은 비장애우에게 부탁해 대신 전화를 걸게 해 의사소통을 했는데 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무척이나 갑갑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편함과 갑갑함을 일거에 해결한 것이 바로 추씨가 개발한 "삐삐수첩"이다. "삐삐수첩"에는 하고 싶은 말과 만나고 싶은 지명이 고유번호로 매겨져 있어 청각장애우들은 삐삐만 차고 있으면 거의 하고 싶은 말을 무한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

<고유번호로 의사소통>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청각장애우 박아무개씨가 집에 있는데 삐삐가 진동한다. 삐삐를 켜니 07이란 숫자와 09란 숫자, 608이라는 숫자 그리고 821이라는 숫자가 연속적으로 입력돼 있다. 그는 번호를 확인하고 "삐삐수첩"을 펴들었다. 수첩에서 07번과 09번은 삐삐를 친 사람과 수신하는 사람의 고유번호다. 그러니까 07번은 삐삐를 친 이아무개라는 친구이고 09번은 삐삐를 받고 있는 박아무개 자신의 고유번호다. 수첩에는 608이라는 숫자가 "왜 소식이 없냐."라는 단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와 있고 821이라는 숫자는 "미워 죽겠다."라는 단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숫자를 연결시키면 "이아무개가 박아무개에게. 왜 소식이 없냐? 미워 죽겠다."라는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삐삐를 받은 박아무개씨는 빙그레 웃으며 수첩을 뒤적여 전화를 이용해 같은 요령으로 삐삐를 쳤다. 09(박아무개가) 07(이아무개에게) 524(손님이 있다.) 416(나중에 연락 하겠다.) 이 숫자를 연속적으로 누르며 박아무개씨는 새삼 "삐삐수첩"이 편리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삐삐수첩"이 아니고서는 복잡한 단어를 신속하게 전달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삐삐수첩"에는 이런 단어뿐만이 아니라 부산 시내 지명도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예를 들자면 40(태종대 공원 입구) 30(부산역)이라는 숫자로 기재돼 있다. 만날 장소를 정하고 몇 시에 만나자는 시간약속까지 수첩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통일된 수첩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추영무씨에 따르면 처음 "삐삐수첩"을 만들 당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고 한다. 특히 문장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경우를 다 상정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날은 밤을 새워 책을 뒤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청각장애우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문장도 가능하면 청각장애우들이 자주 쓰는 단어를 수첩에 담기 위해, 일일이 친구나 선배들을 불러 물어보고 확인하는 절차를 걸쳐 거의 두 달이 걸려서 추씨는 겨우 수첩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수첩을 완성한 추씨는 수첩을 1백부 찍어 시험 삼아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수첩을 받은 청각장애우들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적이어서 찍은 지 얼마 안돼 수첩이 동이 났다. 용기를 얻은 추씨는 문장과 장소지명을 대폭보강해서 두 번째 개정판을 냈고 이 개정판 또한 금방 동이 났다.
 그래서 현재 추씨는 세 번째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사전식으로 단어를 분류해서 수첩을 이용하는 청각장애우들이 자기가 찾고 싶은 문장을 보다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한다.
 추씨가 펴낸 수첩은 의사소통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청각장애우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첩을 사용하려면 고유번호를 지정받고 수첩에 이름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청각장애우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고 있다.
 추영무씨는 가까운 시일 내에 "삐삐수첩"을 사용하는 청각장애우들을 모아서 단합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만든 수첩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전화를 이용하기 불편했는데 이 수첩 사용해서 삐삐 치니까 너무나 편리하다고 그래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전국적으로 통일된 수첩이 있어서 전국에 있는 청각장애우들이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문장은 별 문제가 없고 지명이 문제인데 큰 단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청각장애우 의사소통의 새 장을 열며 손에 이어 숫자로 된 말을 만든 추영무씨의 말이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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