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사람] "봉사"를 넘어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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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하기만 한 복지시설 현실을 개선시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자원봉사로 시작해서 이제 시설문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화두로 고민하는 시설문제연구회 사람들, 이들이 있기에 복지시설의 내일은 밝다.
<봉사만 하고 떠나는 사람들>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상철은 한 선배가 일러준대로 부지런히 학생회관으로 발을 옮겼다.
"학창시절의 낭만과 꿈은 무엇보다도 동아리 활동이야. 그중 사회 봉사활동을 권하고 싶어. 임마, 젊은이는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 그리고 사랑을 실천해야지. 특히 소외된 자의 삶의 고통을 우리가 나누어 가져야지, 누가 하겠니. 또 봉사활동이 그나마 졸업 후의 추억이 될 수 있거든."
며칠 전 선배는 학교 근처의 후미진 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정이 넘도록 상철을 붙잡고 협박 반 권유 반 자원활동단체 가입을 종용했다. 상철의 고교시절, 대학생인 형이 동아리 활동을 한답시고 공공연하게 늦게 돌아오거나 외박을 해도 집에서는 나무라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래서 상철은 "대학에 들어가면 꼭 써클활동을 할거야"라고 다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대학내 낭만의 꽃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학생회관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다. 선배의 말대로 소외된 사람의 고통을 나누어 갖는다는 봉사동아리에 찾아가는 길이다.
"동아리"와 "봉사"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과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전신의 신경을 건드린 듯 느릿한 걸음인데도 얼굴에 땀이 쏟아진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 "다래"는 시설의 아동들에게 교육을 하고 그들과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고취시키는 동아리로서 지난 칠십오년에 설립되어…."
막 신입생 환영식을 시작했는지 "다래"의 설립배경에 대해 선배인 듯한 한 사람이 나와 열변을 토하는 사이 상철은 가입원서를 쓰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는다.
<시설문제로 속앓이를>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상철과 같이 우연한 기회나 선배의 권유로 사회봉사활동에 뛰어든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강제된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논리 속에서 시설의 아동과 친구가 되고 장애우의 손발이 되며 할머니 할아버지의 벗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는 몇 년 후에는 군입대를 핑계로, 학교졸업을 이유로, 온다간단 말도 없이 사회봉사활동 영역에서 떠나버린다. 시설내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랑곳없이 소위 "봉사"만 하고 떠나면 그 뿐이다.
류성희(26·한양대 건축공학과 4년)씨가 시설활동에 뛰어들게 된 배경도 위의 예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는 팔십칠년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배의 권유로 대학내 육아 시설봉사 동아리인 "한솔"에 들어갔다. 대학인으로서 젊음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진정한 낭만을 찾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였다. 일년동안 그는 여타의 사회봉사동아리활동이 그러하듯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어린이에게 교육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그가 처음 시작한 시설활동은 말하자면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사랑과 봉사만을 강조하고 시설문제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원봉사활동"그 자체였다. 더구나 시설문제를 거론하려면 기미만 보여도 원측이나 법인들에 의해 시설활동이 거부당하는, 당시의 현실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일년의 시설활동을 마친 몇 명의 한솔회원들이 이것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나고 있었다. 많게는 일주일 단위로 활동을 하면서 시설내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바라보며 "무엇인지 뚜렷하게 잡히지 않았으나 알지 못할 갑갑증"이 일년동안의 시설활동이 그에게 준 느낌이었다.
그는 "시설활동이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희미하게나마 잡힌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몰래 "속앓이"를 하며 긴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어쩌면 평생이 걸리더라도 시설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반드시 풀어내야 한다"는 결심도 이때 하게 되었다. 여하튼 일년간의 활동을 인정받았음인지 그는 이학년때 총회에서 "한솔" 회장이 되었다.
<올바른 시설문제해결책을 찾아서>
팔십칠년·팔년의 민주화 바람은 시설내부에도 깊숙이 들어왔다. 부분적이나마 문제가 있는 시설들의 움직임도 기민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내 동아리와 사회내 시설활동 모임은 대책 마련을 위해 연합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공대위, 대책위 등을 결성하여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한솔회장인 류성희씨도 일천구백팔십팔년 삼월에 발생한 영생애육원 사태로 인해 만들어진 "영생애육원 성폭행 사건 및 시설아동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에게 있어 영생애육원사태는 시설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는 새로운 경험 속에서 당시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한 시설문제연구회(이하 사문연·회장 김재신)를 알게 되었다. 그가 본 시문연은 시설활동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증이 한결 덜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시설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무엇보다도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향성을 잡으려는 단체로서 시문연은 그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는 "한솔이 가입한 "서울경인 지역육아시설활동단체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이어 후에 결성된 "전국자원활동단체협의회"의 교육부장을 맡은 이후 시설문제 해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고민 속에서 올바른 방향성을 잡기 위해 천천히 나를 다져갔어요. 허허허." "다져나갔다"는 표현이 조금은 쑥스러운 듯 화통한 웃음을 웃으며 당시를 회고한다.
<시문연 일꾼이 되어>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제대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 단체의 연구부장을 맡아 일을 했다. 제대 일년 후 시설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구십일년 시월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시설문제연구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공석이던 연구부장을 맡았다. 이어 그는 휴학을 하고 시문연의 회장이 되었다. 그때가 구십 이년 이월의 일이다. 여기서 일년만에 회장이 되는 시문연의 운영방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차분한 성격에다 끝장을 보는 집착력과 집중력 때문에 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일년만에 회장이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군 제대 후 휴학한다니까 얼른 회장 시키더군요."라고 겸손하게 답변한다. 어쨌든 작년 한해동안 누가 뭐래도 그는 시문연의 회장으로서 가장 바쁜 한해를 보냈다. 아니 그가 살아온 이십오년 중에 가장 바쁜 한해였다.
시문연 역시 가장 많이 활동한 해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복지예산 대책위원회(이하 사대위), 사회복지시설직원농성, 성화원 사건 등에 직간접으로 참여할 시문연으로서는 설립 이후 가장 바쁜 한 해였다. 사실은 해마다 바쁘게 보냈으나 이해는 외부사업에 치중한 한해이기에 더욱 바뿐 한해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
시문연은 지난 해 대부분 외부연대사업에 "전국자원활동단체협의회(이하 전자협)"의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 현재 전자협의 산하 조직인데다 전자협의 "전국"조직이기 때문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한해를 마감한 류성희씨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어요. 마냥 바빴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아요. 허허허."라며 소감을 말한다. 또 한차례 그의 호방한 웃음이 십여평의 시문연 사무실을 가득 메운다.
류성희씨는 지난해 일년을 임기로 회장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연구부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이제껏 시문연이 걸어온 길은 연구단체로서의 영역에서 벗어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만한 연구문건이 없다"고 밝히는 그는 애초 시문연탄생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연구작업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에 발행한 "시설활동자를 위한 지침서"를 좀더 전문적이고 실천적인 내용이 담긴 개정증보판 형태의 지침서를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도 밝힌다.
시문연에 대해서 시문연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올곧은 단체", "시설문제 해결의 주춧돌"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는다.
<시설활동자 위한 지침서 만들 터>
"지난 팔십팔년 이월 육아시설활동을 하는 대학생과 직장인 열다섯 여명이 "시설문제, 이대로는 안된다"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며 논의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시문연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당시 이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육아시설 및 육아시설활동의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여 해결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연구조직"을 건설하자는 데 합의를 했다. 격렬한 토론과 인고의 시간을 너덧차례 가지던 팔십팔년 이월 드디어 "시설문제연구회"는 탄생하였다.
시문연은 가장 먼저 시설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을 짚어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시설문제의 근원을 "정부정책의 부재"에서 풀어내기 시작했다. 국가 행정의 모든 예산 중 가장 적은 액수를 차지하는 사회복지비, 그중에서 터무니없이 작은 시설지원비로 인해 시설의 모든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결론이다.
시설은 알게 모르게 원장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무조건 폐쇄하다보니 사회부터 철저히 고립되었다. 더구나 원측의 비민주적 운영, 예산횡령, 성폭력 사태 등의 사건이 연일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이는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또한 형편없는 예산이 빚은 낮은 임금은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사기문제를 벗어나서 저임금, 강도 높은 노동, 무복지로 인해 해마다 직원이 갈리고 이로 인해 직원의 전문성 결여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더구나 시설은 다른 직장으로 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정착되었다. 당연히 직원들은 시설문제에 대한 심도높은 고민보다는 봉사, 희생이라는 미명하에 몇 해동안 근무를 하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떠나는 게 고작이었다.
"시설문제에 앞서 자신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시설직원의 현실이었죠."
류성희씨는 현재 시설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대부분이 빨래와 청소를 하며 신앙심 하나로 모든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인다.
<노출되지 않는 시설문제를 찾아야>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수용자들의 삶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는 자"가 된듯하다. 시설의 무원칙 수용이 자신의 문제를 돌아볼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류성희씨는 "하루 이백사십원어치 지급되는 돼지죽보다도 못한 밥을 먹여주고 잠재워주는 시설이 고맙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라는 말을 한다. 폐쇄적인 시설운영은 지역사회와 철저하게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설아동은 사회적응력이 떨어지고 하물며 나이가 들어 퇴소하더라도 자아의식의 미발전과 사회의 편협된 시각 속에서 사회의 또다른 소외계층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자원활동자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말하는 류성희씨는 자원활동자에 대한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짚어보는 중이라고 말한다.
시설문제에 관심을 돌리기보다는 자원봉사라는 미명하에 사랑과 봉사의 틀을 벗지 못하고 시설내의 문제를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원봉사활동"이기에 아동이나 시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 채 일정기간이 지나면 온다간도 말도 없이 가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복지 관련 학자나 전문가들은 시설문제가 연구거리가 되지 않는지 작은 문건조차 발표되고 있지 않다. 또한 시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육십년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부모 없는 어린이가 시설어린이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모가 있는 아동이 부지기 수(70%)이고 이들 대부분이 부모의 이혼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시설에 수용되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밖에도 노출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을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그리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시문연의 사업이죠."
<직원의 하나됨이 문제해결의 관건>
류성희씨의 말을 통해 본 시문연의 시설문제 해결책은 여러 가지이다.
시문연이 시설문제 해결책의 우선순위로 꼽는 것은 정부정책의 변화이다. 정부의 현실성 있는 지원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흔히 "올림픽은 칠위인데 사회복지는 칠십위"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가 낙후되어 있다.
시설문제를 가장 힘있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직원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전문가의 근거있는 이론과 이를 바탕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직원의 하나됨"이 간절히 요구되고 있다. 또한 부의 편차를 극복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노동문제의 주체가 노동자이듯 시설문제의 주체도 시설수용자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조건에서 때가이르다는 평가와 함께 수용자들을 추동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시문연의 현재 회원은 직장인과 학생들이 있는 학생들이 과반수가 넘으며 전체 회원은 삼십여명이라고 류성희씨는 말한다.
이들은 연구부, 직원사업부, 현장활동부, 대외사업부, 편집부, 총무부 등 여섯 개의 부서를 두고 각종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런 부서가 각기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시설문제에 대한 깊은 고찰과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공동의 사업이자 이 단체의 막중한 임무이다. 시문연은 그동안 10회에 걸친 <활동가 교실집>을 펴냈고 <시설활동 지침서>, 월간<우리소리>, <직원신문>을 발간하고 있다. 류성희씨는 "입회 일년만에 회장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것도 각기 부서별 활동의 원숙함으로 인해 회장의 직책이 사실상 시문연의 "얼굴마담"정도였던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시문연의 창립회원들을 비롯한 회원들은 시설문제에 관한한 가히 전문가이다.
<활동의 벽이 높기만 한데>
취재하는 도중 류성희씨나 신문연의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서 철저히 비밀로 해달라는 말을 한다. 이유인즉 "시문연의 초기활동이 시설측의 정서에 맞지 않아 많은 부분에서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자원활동자에게 "아이들이 너희만 좋아한다. 시설이 혼란스러워진다"면서 아예 "나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시설이 있다는 것이다. 류성희씨는 "시설다운 시설이 되려면 시문연의 사업을 크게 환영하지 않더라도 활동가의 활동공간은 남겨두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어 말한다.
시문연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묵혀서 이제는 썩는 냄새가 "폴폴"나는 문제들이 속속 발생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어쩌면 시설문제해결은 요원할지도 모른다. 각종 대책위, 공대위를 구성하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정부의 현실성 있는 지원)이 마련되지 않고는 시설내 문제해결은 멀고 먼 이상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시설장은 허물기 힘든 "고통의 벽"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설문제 해결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직원과 수용자들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시설문제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재정의 어려움으로 사비를 털어 활동하고 있는 시문연 사람들의 고충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많은 자료들을 검토하고 연구해야 할 시문연이 5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복사기와 팩시밀리 등 필요한 기기들조차 없어 높은 활동의 벽을 또 한번 절감케 한다.
"어차피 시설활동자들은 시설문제해결에 있어 제삼자의 입장이죠. 그러면서도 민중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운동의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루빨리 자원활동에 대한 명확한 이론 토대를 만들어 변혁운동의 부문운동을 자리매김되어야 합니다." 류성희씨는 인터뷰 시간내내 보인 호탕한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소신을 밝힌다.
언젠가는 올지도 모를, 시설문제가 해결되는 그 날에도 류성희씨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하며 주섬주섬 메모지를 챙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글/박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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