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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힐에서 살고 일하며 배운 것,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캠프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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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저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드는 모습
 
지난 호 캠프힐의 가정생활 소개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캠프힐의 축제와 모임을 중심으로 문화생활에 대해 경험한 것을 소개하겠습니다.
 
캠프힐의 주요 연간 축제는 성탄절(12월 25일), 부활절(3~4월 중), St.John’s day(6월 24일), Michalemas(9월 29일) 가 큰 축을 구성하고 있고 그사이 사이에 몇 가지 더 기념하는 행사들이 있다. 축제는 캠프힐의 주요 연간 리듬이자 구성원들이 함께 즐기는 잔치로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그날의 의미를 기념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념하는 성탄절이나 부활절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도 익숙한 행사이지만 St.Johns day(성 요한 축일)나 Michalemas(성 미카엘 축일)는 캠프힐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행사들이라 아직 의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행사의 의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그날을 기념하는 커뮤니티 모임을 한다.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코워커를 중심으로 빌리저와 코워커들이 몇 주 전부터 연극을 준비해서 공연하고, 합창단은 행사와 연관된 노래를 들려준다.
 
▲ 세인트존스 연극의 한 장면
 
특히 킴버튼에서는 부활절 전 일주일 동안 해마다 특별한 주제를 선정해서 나누는 모임을 한다. 작년 부활절 주간에 행사 주제로 잡은 것이 힐링식물이었다. 그래서 민트, 캐모마일 등 매일 다른 식물에 관해 이야기 듣고, 관찰하고, 이게 어떻게 우리 몸에 이로운지에 대해 들으며 우리의 일상생활과 닿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전해에는 직조 작업장과 섬유작업장에서 다루고 있는 ‘섬유’를 주제로 했었고, 올해는 ‘캠프힐의 기본정신들’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매일 짧게 그날과 관련된 행성을 오이리트미 동작으로 표현하며 모임을 마쳤다. (오이리트미는 캠프힐 생활의 배경이 되는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기 창시한 동작예술이다. 음악과 시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보이는 시, 보이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성탄절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많이 갖고 있다. 킴버튼 캠프힐에서는 전통적으로 매년 작은 선물을 만들어 다른 가정들(약 18개)과 나눔을 한다. 첫해에 빌리저들과 쿠키를 100여 개 굽고, 25장의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고, 포장했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함께 살던 빌리저 디디, 클라우디아와 아주 즐겁게 그 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빌리저 조하나와 습식수채화를 20장 해서 말린 뒤 접어 초 받침을 만들어 선물했다. 성탄절 날에 큰 박스를 들고 가정마다 돌아다니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하고 선물을 배달했다. 그리고 우리 집 거실 한 켠에도 다른 집에서 온 선물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비누, 잼, 쿠키, 갓 구운 빵, 크리스마스 장식, 포인세티아, 샐러드드레싱 등 서로를 위해 준비하고 나누는 풍성한 시간이었다.
 
매년 11월 말이면 크리스마스 연극 준비로 분주해진다. 마운트 캠프힐에 있을 때를 포함해서 지난 5년 동안 매번 다른 역할로 참여했다. 특히 킴버튼에 와서 두 번째 해에는 아기 예수를 낳은 메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필수로 연극에 참여하게 됐는데 연극 연출을 하는 디드라가 메리 역할을 해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하기에는 너무 크고 중요한 역할이니 다른 사람이 하면 좋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이해하신다면서도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하셨고 며칠 뒤에 다시 준비모임을 갔는데 디드라는 대체할 사람을 찾지 못했고 네가 잘할 수 있을 거라며 다시 한번 메리 역할을 내게 제안하셨다. 대사도 해야 하고 노래도 여러 곡 혼자 해야 하는 역할이라 엄청 큰 부담을 느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대로 해 보자는 생각으로 대사를 외우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작업장으로 다녔는데 그 시간이 가사를 다시 곱씹고,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느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던 귀한 시간이었다.
 
▲ 크리스마스 때 직접 만들어 각 가정에 선물한 3명의 왕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 연극 공연 날이 다가왔다. 빨간 치마에 파란 천을 머리에 덮고 공연 준비를 마쳤다. 공연 직전까지 떨리는 마음에 가사 종이를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 놔두었었다. 연극은 성대하게 잘 치러졌고 긴장감 때문에 노래하는 목소리가 좀 떨리긴 했지만 큰 무리 없이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후련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무대 뒤에서 연출을 맡았던 디드라를 다시 만났는데 그때의 감동적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아름다운 메리였다고 환하게 웃으시며 포옹을 해주셨는데 그에 덧붙여 “너의 잠재력을 나는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내심 많이 놀라고 기뻤다. 사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 스스로 메리를 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무대에서 영어로 대사를 하고 노래까지 한다는 건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이고 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내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에게 그 역할을 주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연극을 선물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이 기회에 대한 감사함,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크리스마스 연극 때 합창에 참여하던 모습
 
사실 이런 관점은 내가 캠프힐에서 살면서 배운 중요한 관점 중에 하나와도 연결된다. 캠프힐에서는 우리가 장애 유무를 떠나서 나와 너, 이곳에 인연이 되어 오는 사람들 누구나 고유한 개인 능력과 잠재력이 있음을 인식한다. 그것들이 커뮤니티 필요한 곳곳에서 발휘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 축제 외에도 킴버튼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계속 있어서 관심 있는 분야에 참여할 기회가 자주 있다. 특히 콘서트(주로 클래식)나 오이리트미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최근에는 그림 전시회도 열려서 기관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코워커와 빌리저들가 함께 외부로 나가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일도 자주 있다. 주말 동안에는 가정마다 코워커들과 빌리저들이 근처 공원이나 영화관, 도서관, 박물관, 유적지, 야구장 등을 다녀오기도 하고 몇몇 가정은 최근에 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뉴저지 해안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오기도 했다. 근처에 발도르프 학교가 있어 연극이나 뮤지컬, 바자회 등이 열리기도 하고, 지역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이나 수공예 장터를 구경하러 가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지역에서 주최하는 예술 활동 프로그램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가는 빌리저들도 있고, 근처에 있는 승마장이나 수영장을 이용하러 가는 빌리저들도 있다. 최근에는 7월 말에 있을 킴버튼 지역축제를 다들 기다리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다양한 놀이기구와 게임, 체험부스, 먹거리 등으로 구성된 축제가 캠프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열린다.
 
매주 월요일 강당에서 전체 캠프힐 사람들이 모여 30분간 한 주간을 시작하는 모임을 한다. 각 하우스가 돌아가면서 진행하는데 노래나 악기연주, 시 낭송 등 준비한 간단한 공연과 함께 주로 한 주간 커뮤니티에 있을 행사, 새로 온 사람들 소개, 작업장 소식 등을 나눈다.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기회가 있고 손을 들어 의사를 표현하고 진행자가 이름을 부르면 발언하게 된다.
 
▲ 하우스 아웃팅(Valley Forge 역사박물관)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오전 작업장을 다 같이 한 시간 일찍 마치고 각자 속한 이웃모임회의(Neignborfhood meeting) 에 참석하러 간다. 18개 가정이 세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캠프힐의 도서관과 거실이 넓은 두 집에서 회의가 열린다. 내가 속한 그룹의 회의는 내가 현재 살고있는 시카모어 하우스에서 열리는데 나는 금요일 오전에 주로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같이 일하는 알렌과 마이크가 청소기를 돌리고 의자를 날라 약 30명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11시가 조금 넘으면 회의에 참석하러 코워커와 빌리저들이 속속 도착한다.
 
별다른 것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것처럼 한 주 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 나는 이 준비 시간과 회의 시간이 즐겁다. 이 회의에서는 첫째, 캠프힐의 주요 안건에 대해서 소통하는 기능을 한다. 기관의 의사소통 기구 중 하나로써 먼저 앞서 수요일에 열리는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운영회의의 회의 결과를 나눈다. 운영회의에서 수렴된 의견을 전체 캠프힐 구성원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고 또 개별의견이나 피드백을 이 모임에서 안건으로 결정해서 다음 주에 열리는 운영회의에 가져가기도 한다. 둘째 역할로는,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돌아가면서 안건이나 모임에 온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 한 명씩 차례로 돌아가면서 발언할 기회를 가지는데 주로 새로 온 코워커 환영하기, 휴가 다녀온 이야기, 다가오는 이벤트 알림, 가족들 소식, 하우스에 필요한 물품 구입, 작업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등 소소한 일상부터 함께 하고 싶은 토론 주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코워커와 빌리저 모두 이 회의에 오기 전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는지 생각하고 온다. 무엇보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동등하게 표현 기회가 있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는 캠프힐에서 생활하며 관계 맺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고 배운 것을 나눌 예정입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희남 미국 킴버튼 단기 코워커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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