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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보다는 바르게 달리자, 오티즘 러닝클럽&오티즘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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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윤 러너의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러닝이 유행인가 보다. 여의도 공원에는 매일 10~20명이 넘는 인원이 보폭을 맞추어 달리고, SNS에는 러닝 인증샷이 올라온다. 기자 본인도 건강도 챙길 겸 회사 사람들과 수요일마다 퇴근 후에 여의도 공원을 달렸다.
 
어느 날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하는 러닝크루를 만드는데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기왕 뛸 때 ‘의미도 챙기면 좋잖아?’라는 생각에 함께 뛰기로 했다.
 
긴장과 기대로 만난 첫 회기
첫 번째 회기가 다가오자 ‘내 파트너는 누구일까?’ 하며 긴장됐다. 자폐 당사자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기에 쉽사리 예상이 어려웠다. 첫날은 러닝클럽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취지, 그리고 앞으로 같이 달려갈 서로의 파트너를 공개하는 오리엔테이션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자폐 당사자는 천장이 낮은 모임 장소가 답답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신이 나서인 건지 흥분해 뛰어다녔다. 어떤 당사자는 담당자의 열띤 설명에도 시큰둥하게 멍을 때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당사자일까, 보호자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저 사람 중에 내 파트너가 있다는 건데 도대체 누구일까? 설렜다.
 
“박시윤 러너의 파트너는 동기욱 님입니다!”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덩치가 크면 어떡하지’, ‘뛰다가 위험한 상황이 생기는 건 아닐까?’, ‘과연 말은 잘 통할지’ 등등 갖가지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웬걸 시윤이는 그런 걱정을 하얗게 날려주었다. 그는 마르고 키가 큰 청소년으로, 나이를 물어보니 중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그리고 잘 웃었다. 그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중2병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서로 호흡을 맞추는 두 번째 회기
시윤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여러 복잡한 생각을 갖고 참여한 두 번째 회기였다. 다행히 시윤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작 이름만 알아주는 건데 이렇게나 기쁘다니.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른 모임이었으면 이제 어색하게 인사나 나누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두 번째 회기는 걷고 뛰는 것에 대해 배웠다. 걷고 뛰는 걸 배운다니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다 걷고 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러닝클럽의 진행을 맡은 코치가 우리에게 "걷기와 달리기는 무엇이 다를까요?" 하고 질문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비장애인 파트너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러고 있을 때 당사자들은 기발한 답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오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다양하고 기발한 답변이 터져 나온다.
 
“달리기는 빠르고, 걷기는 느리죠!”
“달리기는 숨이 차요!”
 
설명을 들을수록 얼른 달리고 싶어 시선이 자꾸 공원의 사람들에게 갔다. 옆에 있던 시윤이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뒤꿈치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드디어 달릴 시간이다. 1km를 조금 넘는 여의도 공원의 반 바퀴를 달렸다. 오늘 제대로 뛸 수나 있을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시윤이는 정말 잘 달렸다. 우리가 1등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1등이라서 좋아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은 언제 와요?” “엄마도 오고 있을까요?” 하면서 기다렸다. 그 나이대라면 ‘1등’이라는 의미에 기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약 한 시간 남짓의 활동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 동그랗게 모여 코치의 설명을 듣는 모습. 한 당사자는 높게 뛰고 있다.
 
먼저 말을 걸어주며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세 번째 회기
세 번째 회기 때 만난 시윤이는 “며칠 전에 엄마랑 달리기 연습했어요”라고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 놀랍고 반가운 이야기였다. 이럴 때는 혼신을 다해 칭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최선을 다해 반응했다.
 
일주일 만에 시윤이는 달리기에 흥미를 붙인 모양이었다. 지난주에는 못 보던 러닝화도 신고 왔길래 “새로 산 거예요?”하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 그가 기특했다. 뭔가 서로 친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자폐성 장애인은 신이 난 건지 흥분한 건지 펄쩍펄쩍 뛰고 있고 그의 파트너는 흥분이 가라앉길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레이스와 관계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 파트너는 그를 진정시키려 술래잡기하듯 따라 다녔다. 한편, 내 파트너 시윤이는 점잖게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신 시윤이는 입을 쉬지 않는다. 계속 지하철 이야기를 한다. 달리느라 숨이 차도 "어느 역에서 내려요?", "급행 타요?"라며 질문하고, 방금 대답을 해줬는데도 또 같은 질문을 한다. 속으로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연이어 “여의도역에서 급행 타고 가야 더 빨라요”, “영등포역은 지하철이 지나갈 때 소리가 크게 나는데 왜 그래요?”라며 계속 지하철 이야기를 하며 달린다.
 
공원의 반을 지났을 때 나도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지하철이 왜 좋아요?" 시윤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창문 밖에가 바뀌어서요”라고. 그 후로도 시윤이의 관심사인 ‘지하철’ 토크는 이어졌다. 2.5km의 코스가 짧게 느껴졌다.
 
성취를 느꼈으면 했던 네 번째 회기
오늘은 4.2km를 완주해야 했다. 어떤 당사자는 “4.2km를 달리려면 여의도 공원을 한 바퀴 돌고도 더 달려야 하잖아요”라면서 막막해하기도 하고, 어떤 당사자는 “완주할 수 있겠어요?”라는 말에 크게 “나는 자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결연하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어떤 당사자는 자신이 얼마나 달려야 할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배시시 웃기 바빴다.
 
시윤이도 조금 힘든가 보다. 한 바퀴까지는 대화가 오갔는데 그 후로는 질문이 확연히 줄었다. 그리고 지하철에 관한 대화 주제는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지’로 바뀌었다. 힘들 때는 조금 걸었다가 다시 달리자고 하며 그를 달랬다. 완주해 냈을 때 찾아올 성취감을 느꼈으면 했다.
 
“조금만 더! 저기까지만 가면 돼!”
 
그렇게 여의도 공원의 두 바퀴를 달려 시작점으로 돌아왔을 때, 공원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니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주는 게 아닌가. 덕분에 힘들었던 얼굴에는 웃음이 피었다.
 
△ 완주한 참여자를 향해 박수치는 러닝클럽
 
대망의 마라톤 당일, 각자의 속도로 완주
대망의 마라톤 당일인 10월 26일 오전 8시, 이른 아침부터 모두 눈 비비고 일어나 마라톤 장소인 상암월드컵경기장 평화광장으로 모였다. 일교차가 큰 가을 날씨 탓에 춥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마라톤 당일은 연습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지만, 러닝클럽의 활동도 오늘부로 끝이 난다는 것이기에 아쉬움이 드는 날이었다. 그 사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다른 러닝클럽 참여자들도 여기저기서 “벌써 마지막이네”라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말들을 했다. 문득 시윤이는 어떻게 느낄지 궁금했지만, 옆에서 티 없이 웃고 있는 그를 보고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10, 9, 8, 7, 6 (…)’
 
출발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함께 출발했다. 코스는 좁은 곳도,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었다. 시윤이는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긴장한 탓인지 평소 같지 않게 질문이 적었다. 얼마 안 가 “조금 천천히 갈까요?”라며 힘든 기색도 보였다.
 
우리는 힘들면 걸었다가, 호흡이 돌아오면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다른 참가자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따라잡아 보려 힘을 내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4.2km의 거리가 길게만 생각됐는데 어느새 종착점에 도달해 있었다.
 
완주 후, 메달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을 때는 이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시윤이와 몇 번이고 인사를 나눴다. 시윤이의 어머니에게는 “나중에 꼭 같이 뛸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필요하면 불러주세요”라고 만남을 기약했다.
 
다른 파트너도 “이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끝이 나서 너무 아쉬워요. 짧은 시간 이렇게까지 정이 든 걸 보면 체육 활동이 주는 힘이 정말 큰가 봐요”라며 아쉬운 감정을 전했다.
 
△ 오티즘레이스 당일. 완주 후 시윤이와 함께 찍은 사진
 
운동이 주는 힘, 지역과 조건을 가리지 않고 여러 시도가 퍼지길
다섯 번이라는 짧은 만남이지만, 러닝을 통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폐성 장애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비장애인과 조금 다르지만, 러닝이라는 신체활동을 통해 서로 다름과 차이를 느끼기보다 서로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러닝. 이 러닝크루들이 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과 함께 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교육이나 이해교육보다 더 쉽게 장애인들을 만나고 함께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왕 달릴 걸 좋은 일도 같이하는 ‘일석이조’의 경험을 전국의 러닝크루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러닝클럽에 참여했던 한 장애당사자 가족이 러닝클럽 덕분에 달리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며 자폐성 자녀와 함께 온 가족이 다른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보기로 했다고...
작성자글. 동기욱 기자 / 사진제공. 한국자폐인사랑협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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