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고 일하는 것의 의미 > 함께 사는 세상


함께 살고 일하는 것의 의미

캠프힐 이야기

본문

 
△ 킴버튼 꽃 정원에서 조하나와
 
이번 호에서는 캠프힐 이야기 연재를 마치며 캠프힐 생활에서 배운 것들 가운데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점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개인에 대한 존중
지난 5년간 캠프힐에서 코워커로 일하면서 그간에 생긴 나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모국어가 아닌 영어권 나라에서 살면서 의사소통에 곤란을 겪는 때가 있긴 하지만 그사이 나 스스로 바뀌고 성장한 모습들도 보게 된다. 돌아보면 첫 인터뷰 때 캠프힐 생활을 경험하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을 공감해 주고 캠프힐로 초대해 준 하우스 홀더 비키와의 만남이 캠프힐 여정의 중요한 시작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코워커였고 마운트에서 1년 동안 경험한 것들이 그 이후에도 캠프힐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나 역시도 내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빌리저들과 학생들을 볼 때면 지난 삶과 또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삶에 내가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 내가 만난 지금의 모습 속에는 그들이 살아온 지난 삶이 모두 녹아 있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삶의 한 일부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계속 인지학과 인간학을 배우면서 계속 인간발달에 대해 공부하고 또 자연과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나와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각 개인이 가진 정신적 고유성을 생각해 볼 때면 이 순간의 만남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것인지, 이곳에서 함께 살고 일하면서 인연을 맺을 수 있음에 매우 감사하다.
 
개개인의 성장
앞에서 한 번 소개했던 멘토와의 만남이 여전히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캠프힐로 떠나기 전, 코워커는 빌리저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코워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정의였다. 코워커의 삶, 개인적인 성장과 발달에 대해서 누군가 나에게 질문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 만남 이후 캠프힐이 빌리저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이 사는 캠프힐에서는 직업생활이 코워커와 빌리저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킴버튼 캠프힐의 경우 작업장을 원활하게 운영하고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실제 목공, 직조, 모자이크, 도자기, 섬유공예, 카페, 베이커리 등의 실내 작업장과 각 하우스 또 허브가든, 목장, 채소농장, 과수원 등을 운영하고 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코워커와 빌리저들이 각 작업장에서 서로 힘을 합쳐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일했던 모자이크 워크샵에서는 빌리저들이 본인의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 매우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개인만의 자랑이 아닌 커뮤니티의 자랑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캠프힐에서는 빌리저와 코워커들의 다양한 컨퍼런스와 세미나 참여를 독려한다. 코워커들이 본인에게 필요한 교육이 있으면 언제든 요청할 수 있고 캠프힐에서는 그 부분을 적극 지원한다. 또 빌리저들에게는 캠프힐 내에 성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주제를 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도서관에 모여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 문화, 기후 변화, 세계 뉴스, 식물, 동물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과 세상에 대해 계속해서 배울 기회를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알고 그를 통해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커뮤니티 발전
캠프힐 생활 중에 요즘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캠프힐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다양한 국적, 연령대, 경험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캠프힐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1939년 스코틀랜드에서 캠프힐을 시작한 칼 쾨니히 박사와 함께 일했거나, 그분이 미국으로 건너가 캠프힐을 시작하라고 해서 보내진 뒤 이곳 캠프힐에서 50년 넘게 살며 초기 캠프힐을 일구어 오신 분들도 있다.
 
한편, 캠프힐에 오기 전엔 캠프힐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이곳에 와서 자원활동을 하며 캠프힐 삶에 매력을 느껴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젊은 코워커들도 만나게 된다. 물론 이곳 생활이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맞지 않아 온 지 얼마 안 돼서 떠나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 한 공간에서 일상생활과 직업 생활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도 경험하고 있다. 개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만 특히나 하우스 홀더로서 한 가정을 이끄는 위치에 있게 되면 이곳에서 같이 살고 있는 빌리저와 코워커들의 행복한 삶도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일이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 구분을 넘어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일하는 삶을 추구하는 캠프힐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외모, 살아온 환경, 연령과 국적이 다르듯이 우리 개개인은 서로 다른 능력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함께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각자의 장점과 재능이 조화되고 잘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커뮤니티는 언제나 생명력 있고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아카데미 졸업식에서(왼쪽 4년동안 모자이크 작업장에서 일을 가르쳐준 주디, 오른쪽 아카데미에서 같이 공부한 우간다에서 온 코워커 베티)
 
캠프힐 아카데미와의 만남
나의 첫 캠프힐이었던 영국 마운트캠프힐에서 1년간 코워커 생활을 마치고 미국 캠프힐로 옮겨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캠프힐 아카데미(https://camphill.edu)를 통해서 캠프힐 삶의 배경 철학인 인지학(Anthroposophy)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캠프힐 아카데미는 학사연계 학위 과정으로 캠프힐에 자원활동을 하러 오는 코워커들 가운데 캠프힐의 삶에 대해 깊이 배우고자 하는 코워커들에게 현장경험과 이론공부를 함께 할 기회를 제공하며 생명역동농법(Biodynamic agriculture), 사회적 치료(Social therapy), 그리고 치유교육(Curative education)중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수업은 보통 각자 살고 있는 캠프힐에서 이루어지며, 일주일 중에 하루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며 보낸다. 총 과정은 5년이지만 기본과정(1년), 준전문가 과정(3년) 등 다양하게 코스를 선택할 수있고 학비는 무료다. 아카데미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살펴본 뒤 나는 미국 캠프힐, 그리고 킴버튼 캠프힐에 살며 사회적 치료(Social therapy) 를 배우고 싶다는 결정을 빠르게 했다. 캠프힐 코워커 생활도 하면서 내가 바라던 캠프힐의 배경 철학 수업과 예술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는 크게 실습과 이론 수업으로 나뉜다. 사회적 치료(Social therapy) 과정의 경우 실습은 작업장과 가정에서 슈퍼바이저(주로 작업장리더, 하우스홀더)와 내가 발달 시키고 싶은 영역을 정하고 목표를 세워 일 년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론수업은 크게 인지학 수업과 예술수업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
 
학년에 따라 조금씩 구성이 다르지만 인지학, 인간학이 주로 이론 수업이며, 코스에 따라 사회적 치료(Social therapy) 시간에는 캠프힐의 역사와 가치, 캠프힐 축제 등을 다루고 치유교육(Curative education)에서는 인지학 치료, 발도르프학교 교육과정 등을 배운다. 예술수업은 주로 음악, 미술, 오이리트미, 연극 등의 수업이 있다. 아카데미 5년차라 일하며 공부하는 이 생활이 익숙하긴 하지만 때론 일과 시간을 쪼개 매주 있는 숙제를 하느라 일상이 쉴 틈 없이 빼곡하게차 있어 피곤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보다는 지금 안 해도 되는 핑계를 찾으며 게을러 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얼마나 소망했었는지를 잊지 말자. 캠프힐에서 살고 일하면서 내가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마 이때를 내 인생에 황금기였다고 회상하지 않을까?
 
-END
1년 동안 캠프힐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사이 저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4년 동안 지내던 킴버튼 캠프힐을 떠나 올 여름 근처에 있는 캠프힐스쿨 코워커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곳은 학령기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개별상황에 필요한 다양한 치료를 제공하고 발도르프 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 형태의 캠프힐입니다. 옮겨온 지 2달 남짓 돼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 중이지만 다시 학생들을 만나니 작은 일에 미소 짓는 일들이 많이 생겨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함께걸음>에 1년간 글을 연재하며 캠프힐 생활 경험과 이곳에서 배우고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보고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어서 저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삶의 가치관과 방향이 캠프힐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일하는 삶을 통해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코워커가 되기 위해 고민하며 앞으로도 캠프힐 코워커로 더욱 재미난 추억들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의 혼란 속에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캠프힐 정신이 지난 80년 동안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로 퍼져 나가고 있고, 그 씨앗이 퍼져 한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양평(양평 캠프힐마을)과 강화도(큰나무 캠프힐)에서 자라고 있는 캠프힐 운동에 많은 분들이 관심과 응원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희남 킴버튼 캠프힐 단기 코워커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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