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문턱을 두드린 세 청소년, <무턱대고>
416호 함께 사는 세상
본문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가게 앞 턱이 있다면 경사로를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동권과 접근성 문제를 자꾸 해결책 모양으로만 상상했다. 턱이 있다. ▶경사로가 필요하다, ▶지원사업이 있다, ▶신청하면 된다. 이렇게 문장으로 술술 적으면 간단 분명했다.
그런데 ‘무(無)턱대고’(이하 무턱대고)를 만나 목격한 현실은 상상보다 간단치 않았다. 제도가 있다고 가게가 아는 것은 아니고, 지원사업을 점주가 바로 신청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한 뼘도 안되는 턱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하루의 동선을 통째로 바꾸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문턱은 너무 낮아서 보이지 않았다
무턱대고 활동은 거리에서 시작된다. 축구의 삼각 패스처럼 세 사람은 골목을 걷고, 식당과 카페, 작은 가게의 출입구를 살핀다. 턱이 있는지, 계단이 있는지, 휠체어나 유아차가 그대로 들어가는지 살펴본다. 대부분 그냥 지나칠 장면 앞에서 이들은 걸음을 멈춘다.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까, 사장님이 바쁘지는 않을까, 괜히 귀찮아하시지는 않을까. 그런 망설임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돌아서지는 않는다. 포스터를 손에 들고 문을 열어 말을 건넨다.
“비용없이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 지원사업이 있는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짧은 문장이지만 그 말을 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 처음 보는 가게 문을 여는 용기,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긴장, 그래도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결심. 무턱대고는 그 일을 하는 청년 프로젝트팀이다. 정말 무턱대고 들어간다.
▲(좌)화분에 물을 주기위해 나온 가게 사장님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 (우)포스터를 가게 문 앞에 끼워두는 모습
‘무턱대고’라는 이름의 태도 너무 많이 봐서,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턱대고는 정수민, 이은빈, 박서현 세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에는 ‘무턱대고 나아간다’는 뜻과 ‘턱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뜻이 함께 담겼다. 물론 ‘무턱대고’라는 말에는 앞뒤를 깊이 따지지 않고 일단 해본다는 뉘앙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단순 의미의 ‘무턱대고’와는 조금 달랐다. 턱이 있는 가게를 살피고, 지원사업을 확인하고, 점주와 복지관과 연결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판단이 필요했다. 이들은 아무렇게나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살핀 뒤에도 그냥 멈추지 않는 활동 전략을 짰다.
처음에는 조금 귀엽고 재치 있는 이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니 그 이름은 재미보다 분명한 태도였다. 완벽한 준비가 끝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족하더라도 일단 가보는 태도, 턱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문을 두드려보는 행동이었다. 세 사람은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에서 만났다. 이름 그대로 세계 최고의 학교상(World's Best School Prizes)’ 혁신 부문 TOP 10에 선정된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에는 사회문제를 찾고, 정의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보는 프로젝트 수업 과정이 있었다. 시작은 다섯 명으로 원래는 다른 주제를 진행했었다. 2025년 상반기 한 팀원이 전장연 시위와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를 꺼내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가까이에 있는 문제인데 왜 그동안 다루지 않았을까. 그 질문이 새로운 방향타였다.
이들이 처음 본 이동권은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처럼 큰 구조물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동네 가게 앞 단차와 계단처럼 작고 가까운 곳이었다. 바퀴 달린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 턱 앞에서 멈춘다. 휠체어 이용자뿐만 아니라 유아차를 미는 사람, 보행이 불편한 노인, 다리를 다친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탄생 계기는 길에서 본 현수막이었다. 성북구 경사로 무료 설치 지원사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지원사업이 있다면 왜 거리의 많은 가게 앞에 여전히 턱이 남아 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모르는 것이다. 점주가 사업을 모르고, 필요한 사람이 정보를 모르고, 제도는 있지만 현장까지 닿지 않는다. 무턱대고는 성북장애인복지관에 연락했고, 복지관이 진행하는 경사로 설치 지원사업을 가게 점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팀 시작은 2024년 4월, 경사로 지원사업을 알리는 활동은 2025년 8월부터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무턱대고 팀원 3명이 활동 후 함께 찍은 사진
제도와 가게 사이에 선 사람들
이들은 경사로를 직접 설치하는 팀이 아니다. 복지관처럼 사업을 집행하는 기관도, 오래된 시민단체도 아니다. 아직 정식 등록 단체도 아니다. 지금은 말 그대로 인스타그램 활동체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자리는 분명하다. 제도와 가게 사이, 지원사업과 점주 사이, 문제를 아는 사람과 아직 모르는 사람 사이에 선다. 이런 사업이 있다고, 무료로 설치할 수 있다고, 관심이 있다면 복지관과 연결해드리겠다고 무작정 말한다.
활동 방식은 복잡하지 않다. 너무 단출하다. 지원사업 진행 지역을 확인하고, 역 주변과 골목을 돌며 턱이 있는 가게를 찾는다. 가게에 들어가 포스터를 보여주고 사업을 설명한 뒤, 점주가 관심을 보이면 동의 여부를 확인해 리스트를 작성한다. 이후 복지관과 설치 업체가 실제 설치 가능 여부를 검토한다.

▲경사로 설치 지원사업을 점주에게 설명하는 모습
무턱대고가 지금까지 직접 방문하거나 홍보한 가게는 약 286곳이다. 2025년에는 17곳, 2026년에는 28곳이 경사로 설치에 관심을 보이거나 신청·논의로 이어졌고, 실제 설치가 완료된 곳은 17곳이다. 활동은 성북구를 중심으로 시작해 혜화동, 구로, 마포구로도 넓어졌다. 숫자로 적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286곳이라는 숫자 안에는 286번의 문 앞이 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던 순간, 포스터를 꺼내 들던 손, 다시 골목으로 나와 다음 가게를 찾던 발걸음이 있다. 말 그대로 무한한 체력과 열정으로 불이 나게 돌아다닌 결과였다.


▲경사로 설치 전후 사진
청소년이라는 벽, 청소년이라는 힘
숫자 실적도, 기계적 성과도 필요 없었다.
현장에서는 한 가게, 한 가게가 모두 다른 만남이다. 점주가 바쁜 시간일 수도 있고, 설명을 듣고도 망설이기도 한다. 그래도 포기없이 멈추지 않는 이들은 청소년이거나 이제 막 성인이 된 청년들이다. 무턱대고 이름의 프로젝트팀이라고 자신을 소개해도, 상대가 바로 신뢰해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은빈 씨는 다른 단체나 기관과 협업을 이야기할 때 “어디에 등록되어 있느냐”는 질문이 많다고 했다. 좋은 뜻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절차와 책임, 신뢰의 문제가 늘 있었다. 젊은이에게 칭찬은 쉽지만, 실제 현장은 그 열정만으로 문을 열지 않는 순간도 많다.
그런데도 이들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한번 더 들어가 보기, 한번 더 설명하기, 모를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기. 박서현 씨는 무턱대고 활동을 하며 “청소년인데 우리가 뭘 얼마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했다.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다른 청소년들도 못할 이유가 없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반드시 거대한 정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에서 발견한 문제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말을 거는 일일 수도 있다.
기록하고, 연결하고, 문을 두드리는 방식
접근성을 만드는 방식은 하나만 있지 않다. 한국에서 접근성을 이야기해 온 활동에는 유일하게 국토교통부 법인으로 등록된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이른바 무장애연대가 있다. 1996년 장애인편의시설촉진 시민연대라는 작은 단체로 출발한 1세대 접근권 운동단체이다. 무장애연대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생활환경을 바꾸기 위해 일찍부터 조사와 법률제안, 정책연구와 실천을 이어왔고, 현재는 통합놀이터 만들기처럼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활동도 펼쳐왔다.
최근에는 관련 운동 방식과 단체가 더 다양해졌다. ‘계단뿌셔클럽’이란 단체는 시민들이 직접 거리와 가게를 조사하며 접근성 정보를 기록한다. 참가자들은 2인 1조로 움직이며 출입구의 턱과 계단, 경사로 여부를 확인하고 그 정보를 지도 위에 남긴다. 누군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왜 개인이 매번 몸으로 부딪혀 확인해야 할까. 그렇다면 시민들이 함께 정보를 모아두고 공유하고 계속 업데이트하면 어떨까. 계단뿌셔클럽의 활동은 그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계단뿌셔클럽과 함께 활동한 사진
무턱대고도 계단뿌셔클럽과 일찌감치 조우했다. 대표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고, 실제로 계단뿌셔클럽은 무턱대고 활동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함께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계단뿌셔클럽이 접근성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한다면, 무턱대고는 그 턱 앞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점주에게 설치지원사업을 설명한다. 기록과 연결, 두 방식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고민을 붙든다.
협동조합으로 시작하여 2024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무의’ 역시 ‘모두의 1층’ 프로젝트 등을 통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1층 공간을 늘리는 활동을 해왔다. 무의가 더 큰 협력의 판을 만들고, 계단뿌셔클럽이 시민 참여로 정보를 쌓는다면, 무턱대고는 골목 안에서 직접 문을 두드린다. 같은 접근성이라는 말 안에도 이렇게 다른 동사가 있다. 기록한다, 연결한다, 설치를 제안한다, 알린다. 그리고 실제로 만든다!
그 한 걸음이 문이 될 때
무턱대고를 단순히 ‘경사로 지원사업을 홍보하는 팀’이라고만 쓰기에는 그래서 아쉽다. 이들의 활동은 홍보이지만 동시에 질문이다. 그리고 결국 변화를 위한 반갑고 살겨운 설득이다. 왜 좋은 제도가 있어도 현장에 닿지 않을까, 왜 가게 앞 턱은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까, 왜 누군가는 들어갈 수 없는 가게를 다른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까. 그리고 나는 왜 그동안 이 턱들을 보지 못했을까.
무턱대고는 올해 100개의 경사로 설치를 목표로 한다. 앞으로 비영리 조직이나 단체로 발전시킬지, 지금의 방식으로 올해 활동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길을 갈지는 아직 고민 중이라 했다. 하지만 모든 활동이 계속 지속되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실제 경사로로, 누군가에게는 “이런 지원사업이 있었구나”라는 정보로, 또 누군가에게는 “청소년도 할 수 있구나”라는 가능성으로 강한 생태지표처럼 남는 활동도 있다.

▲성북장애인복지관과 무턱대고가 업무협약을 맺은 모습
문턱 앞에서 멈춘 적 없는 사람은 문턱을 잘 보지 못한다. 기자 역시 그랬다. 그래서 무턱대고의 활동은 누군가에게 경사로를 놓는 일인 동시에, 기자 같은 사람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가게 앞에 턱이 보이면 그냥 턱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서 멈춘 사람, 돌아선 사람,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함께 떠오른다.
무턱대고의 방식은 거창하지 않다. 골목을 걷고, 턱을 보고, 문을 열고, 묻는다. 하지만 사회의 많은 변화는 어쩌면 그런 다채로운 방식으로 시작된다. 누군가 대신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 문제를 내가 아는 말로 꺼내는 일. 완벽하지 않아도, 아직 작아도, 무턱대고 한 걸음 나아가는 일. 그 한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문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된다.
작성자글. 박수찬 기자 / 사진제공. 무턱대고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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