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그려내다 : 손제형 작가 > 사람 사는 이야기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그려내다 : 손제형 작가

사람 사는 이야기

본문

 
 
남들과 다르다는 특징을 가진 주인공 ‘알로’
보살핌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야기
 
최근 <몬스터코멧>이라는 만화책을 발간한 손제형 씨.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스토리 구성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제형 씨는 자신만의 경험과 창의력을 녹여 스토리 구성은 물론 작화까지 직접 담당하고 있다. <몬스터코멧>은 외딴 행성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판타지이지만 그 속엔 제형 씨의 고민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몬스터코멧>은 제 경험담이에요”
 
<몬스터코멧>의 주인공 ‘알로’는 남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숨겨졌고 자신의 다름을 가려야 했다. 그러다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온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푸른 눈과 머리를 들키게 되었고 힘을 주체하지 못해 실수마저 저지르게 된다.
 
△ <몬스터코멧> 책 표지 
 
<몬스터코멧> 속 알로가 겪는 다름으로 인한 어려움은 제형 씨의 삶과 닮았다고 한다. 제형 씨가 세 살이 채 안 되었을 때 부모님은 제형 씨가 유독 눈 맞춤이 적고 언어 습득이 느려 병원에 찾아갔고, 그렇게 제형 씨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언제부턴가 느꼈던 자신의 다름은 만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갔다.
 
“네 모습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니 숨겨야 하는 거란다”
“고향, 그곳에선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는데 왜 날 보내주지 않는 거야!”
만화 <몬스터코멧> 中
 
치료에 집중했던 어린 시절
<몬스터코멧>에 투영된 제형 씨
 
부모님은 제형 씨가 1학년 때 만난 학생들과 졸업 때까지 같이 다닌다면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학년당 반이 하나인 학교도 보내보고 또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음식도 자주 대접했다. 언어치료, 놀이치료 등 치료에 전념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제형 씨가 사회성을 기르길 바라며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다양한 교류와 치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형 씨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대화 수단은 언제나 그림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늘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퇴사 결정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에 완성된 만화
 
성인이 된 후 제형 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 회사에 다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던 부모님은 제형 씨가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이 되었을 때, 제형 씨는 부모님에게 ‘자유롭게 만화를 그리고 싶다’며, ‘나는 나의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회사에는 일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며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선언했다.
 
만화를 그리려면 스토리도 있어야 하고 그걸 엮을 힘도 필요한데 할 수 있겠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제형 씨의 대답은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형 씨의 굳은 결의에 부모님은 항복. 회사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 제형 씨 어머니의 지인 중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림 그릴 공간이 있었다. 제형 씨의 강한 의지와 제형 씨를 지지해 주던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만화책이 완성될 수 있었다.
 
△ 그림 설명하는 손제형 씨 (사진제공. 손제형)
 
그림을 그리며 생긴 변화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다
 
제형 씨는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일은 힘들었어도 이곳에서 사람들과 마주하고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제형 씨의 어머니는
 
“어릴 때는 바닥에 머리를 내리치고, 소리 지르고.. 옛날에는 전형적인 자폐 증상이 많았어요. 근데 언제부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남한테 이야기해야 하고 또 하고 싶어지니까 스스로 여러 가지를 배우려고 노력하더라고요. 옛날 생각하면 지금의 손제형은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단순히 그림 실력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제형이의 마음도 성장해 간다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회상했다.
 
인터뷰 내내 ‘음’하고 다문 입술과 차분한 말투는 제형 씨의 점잖은 성격을 대변했다. 대화에 틀린 부분이 있다면 다시 정정하고, 어머니의 설명을 옆에서 거들기도 하고. 만화 스토리를 직접 구상할 만큼이나 의사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현재는 ‘도와지’라는 장애청년들의 미술 공간에서 그림을 배우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을 가진다. 타인의 생각에 궁금증을 가지고 소통하는 것의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몬스터코멧> 스토리 구상과 동력도 주변의 도움과 소통의 결과였다. 제형 씨가 꾸준히 만나오던 심리상담가, 출판사를 운영하는 지인 등 제형 씨의 주변에는 유독 제형 씨를 살피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몬스터코멧> 작업을 하면서 주변 분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가끔 제가 쓴 스토리가 삼천포로 빠질 때면 바로 잡아주곤 하셨지요.”
 
그림에 대한 자발적인 노력과 열정
 
평일 중 4일은 도와지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 저녁에는 온라인으로 사이버 대학교 회화 과정 강의를 듣는다. 도와지에 가지 않는 나머지 3일에는 만화를 그리거나 전시회에 가는 등 제형 씨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하루, 아니 일주일을 거의 모조리 그림으로 채운 일상이지만 제형 씨는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것이 가장 재밌다고 한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할 때보다 제형 씨의 눈에서 빛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볼 때 자연스러울까를 많이 생각해요. 그림을 그릴 때는 명암이랑 색 선택하는 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에요. 주제를 정했다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 <몬스터코멧> 그림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손제형 씨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열다
힘든 게 있다면 편하게 이야기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제형 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찾은 여유는 가족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무릎이 안 좋은 어머니가 계단을 내려갈 때면 손을 잡아주고, 약 먹을 시간이 되면 물을 가져다주고, 가족이 자신에게 해주던 배려들을 유심히 보고 기억하고 있었는지 똑같이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고 한다. 가족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힘든 게 있을 때 편하게 이야기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답처럼 제형 씨의 시선은 늘 타인을 향해 있었다.
 
“제가 자폐성 장애가 있다 보니까 부모님이 저를 많이 챙겨서 형을 조금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형이 조금 서운하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편하게 지내고 집에서 영화를 같이 볼 때도 있어요. 아버지와는 일이나 작가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많이 구해요.”
 
<몬스터코멧>의 알로는 안전한 부모의 품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우주로 모험을 떠난다. 제형 씨도 알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우주를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저도 이제 독립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어디 장소 이동할 때도 알아서 가고 그림도 혼자 그리고 돈도 조금씩 벌어보려고 해요. 이제는 부모님도 힘들어하실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제는 제가 알아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하는 것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만화 <원피스>의 작가처럼 되고 싶다
작가로서의 계획
 
제형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만화 <원피스>를 그린 오다 에이치로 작가다. 상상하는 대로 그릴 수 있는 작가라서 그를 좋아한다.
 
자신도 “<원피스>, <스타워즈>를 그린 작가처럼 대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면서도 “욕심이 좀 크네요.”를 덧붙이며 웃었다. 결심도, 변화도, 만화도 이제 시작일 제형 씨의 이야기가 <원피스>처럼 100편이 넘어도 끝나지 않을 듯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제형 씨의 다음 일정은 다가올 12월에 예정된 개인전 준비다. 하반기에는 사이버 대학교 강의도 못 들을 것 같다며 바쁜 일정이 예고되어 있었다. 개인전이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자 망설임 없이 <몬스터코멧2> 제작을 꼽았다.
 
“지금은 12월 개인전 때문에 일이 많아서 <몬스터코멧> 2편 작업을 잠깐 미뤄뒀지만, 빨리 2편을 만들고 싶어요.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하는 중이에요. 2편은 알로가 백소영과 우주여행을 하는 이야기일 것 같아요.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어릴 적 종이 구석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해 시작한 그림이 이제는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는 창구가 되었다. 주인공 알로가 앞으로 겪을 일들을 상상해 보며 제형 씨에게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를 기대하게 된다.
 
△ <몬스터코맷>의 주인공 알로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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