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재난 생존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
'조우네 마음약국’을 언제든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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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바시에 출연한 조우 씨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조울증과 마주한 조우 (가명)씨. 그는 28년째 조증과 울증 사이를 오고 가는 추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조우 씨는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가정이 생기기 전까지 조우 씨가 겪는 어려움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지만 이제는 세 배가 되니 그 무게감이 더하다. 그래서 조우 씨는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탐구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병'에 대한 탐구의 여정이 지치지 않도록 많은 사람과 함께 연대하고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저는 ‘정신 재난 생존자’ 입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우 씨가 가진 조울과 많이 닮아있다. 두 살 때부터 외국살이를 한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여섯 살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우리나라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한동안 마음을 닫고 지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활달해졌다. 이듬해에는 다시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고 수면과 행동에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조우 씨는 물론 부모님도 조우 씨의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지겠거니하는 막연한 생각에 젖어 있었다. 조우 씨의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조우 씨의 할머니였다. 주위에 조현병을 가진 사람을 돌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는 정신질환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잠을 못 자고 깜박거리는 모습에 이상을 감지한 할머니는 아버지와 조우 씨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 그날 조우 씨는 바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비교적 제 병명을 빨리 알게 된 건 감사한 사실입니다. 더 나이가 들어서 제가 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됐더라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엔 거의 6개월 단위로 우울증과 조증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성인이 된 이후 조증이 찾아왔을 땐 과도하게 자신감이 생기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샘솟으면서 조우 씨 자신을 지킬 수 없을 정도의 공격적인 모습들이 나타났다. 그러다 우울증이 다시 찾아 왔는데 문제는 조증이었을 때 스스로 내뱉었던 말과 행동들이 모두 다 생생해서 거기서 오는 후회와 죄책감이 깊은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데 큰 작용을 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완치’의 개념이 다르겠지만 조우 씨가 생각하는 ‘완치’는 조울증이 발병하기 이전 상태로 돌 아가는 것이 아니다. 조증도 우울증도 아닌 그 ‘중립 상태’를 오래도록 잘 유지하는 것이다. 조우 씨는 그 ‘중립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약물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모니터링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도 모르게 의사한테 잘 보이려 괜찮은 척할 수가 있는데, 그러지 말고 의사에게 본인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내 증상에 휘둘리지 않고 조절해가며 살아갈 수 있어요.”
▲ 조우 씨의 결혼 사진
조우 씨는 2013년 아내와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약간의 경조증상이 있었지만 조우 씨 스스로 다 회복했다고 생각하고 약 복용을 멈추고 있을 때였다. 슬프고 힘든 일뿐 아니라 연애와 결혼 등 좋은 일들도 조증과 우울증 사이의 추를 크게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촉발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조우 씨는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조증 증상이 너무 심해져 병원에 입원하였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입원 경험을 하였다. 조우 씨의 아내는 조우 씨가 처음 입원했을 때보 다 두 번째 입원했을 때 더 마음이 어려웠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 조우 씨의 가족 여행 사진
본격적으로 양육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아내와 부딪 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조우 씨가 무기력해져 있을 땐 아내에게 양육의 책임이 너무 가중되었고 내뱉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함으로써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이 모든 영향은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특히 둘째 아이는 한때 소리에 너무 예민해져 TV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이 나오면 패닉 상태에 빠져 귀를 막고 울부짖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엔 저한테 조증이 오든, 우울증이 오든 제가 혼자 잘 감내하면 되는 부분이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제가 무너지면 가족 전체가 무너지고 특히 아이들한테 영향이 가는 게 정말 미안하고 힘들었어요. 어느 날 아내가 저한테 ‘나 당신이랑 이혼 안 할 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어떻게든 좋아지기 위해서 노력해. 뭐든 해’라고 말했어요. 그 말 이 지금까지 저를 살게 합니다.”
조우 씨는 현재 소량의 약물을 먹으며 조울을 다스리고 있다. 약이 주는 부작용보다 유익함이 더 크다는 것을 믿고 어려움을 감수하며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때로는 약의 영향으로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직 어린 막내아들이 아침에 장난감을 들고 와 함께 놀아달라고 하지만 자기 전에 약을 먹는 조우 씨 는 아침에 주로 힘이 없고 잠에서 깨는데 상당 시간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우 씨는 컨디션이 좋은 날엔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제가 늘 염려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힘없고 졸린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에 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유년기를 떠올렸을 때 아빠와 보냈던 시간이 즐거움으로 기억됐으면 좋겠 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모든 이야기를 아빠한테 서슴없이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아이들과 소소하고 작은 일상들을 최대한 많이 공유하려 하고 있습니다.”
▲ 조우 씨의 세 자녀. 다함께 달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아직 어려서 아빠의 조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 적은 없지만 조우 씨는 아이들이 다 른 경로로 조울증에 대해 접하기 전에 아빠의 방식으로 먼저 설명해줄 생각이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 중 한 명이고, 아프고 무기력한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는 설명을 꼭 하고 싶다.
또 고흐나 나폴레옹처럼 조울증을 가진 역사적인 인물들도 함께 말해주고 싶다. 현재 조우 씨는 자신의 조울과 ‘휴전’ 상태이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조울이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우 씨는 이전처럼 재발이 두렵지 않다. 무엇보다 조우 씨 스스로가 자신을 잘 지킬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고, 그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의 끈들을 더 탄탄하고 두껍게 만들기 위해 조우 씨는 2018년도부터 ‘동료지원 크리에이터’ 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우네 마음약국’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울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 회복의 방법, 각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진솔하게 전한다. 약 1만 3천여 명이 ‘조우네 마음약국’을 구독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1,200여 명의 사람들이 ‘조우네 마음약국’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동료상담을 요청 해오고 있다. 같은 경험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경험을 조우 씨는 매일매일 느끼고 배우고 있다.
▲ 조우 씨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조우네 마음약국’
유튜브 채널 운영뿐 아니라 온라인 자조모임을 한 달에 한 번 운영하는데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는 당사자끼리, 자녀는 자녀끼리, 또 형제는 형제끼리 소그룹으로 나누어 대화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조우 씨는 이러한 모임의 형태가 보다 더 세분화되고 또 제도화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저는 우울을 ‘끈적끈적거리는 물엿의 바다에서 수영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이런 우울의 바다에서 오랜 시간 표류하는 사람들 중 충분히 치유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잘 회복한다면 자신이 경험한 상처가 상처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도구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조우 씨는 ‘상처 입은 힐러’들이 세상에 더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동료지원 크리에이터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때론 조증과 우울증 사이의 추가 심하게 흔들릴지라도 사랑하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가족을 지키며 하루하루 삶을 충실히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조우 씨의 삶을 바라보며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치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오늘도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 사진 제공. 조우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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