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는 것은 과녁이 아니라 길이다 - 휠체어컬링 선수 이용석
416호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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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선수가 의정부컬링경기장에서 스톤을 밀어내며 투구하고 있다
의정부시 녹양동 의정부컬링경기장은 지하철 1호선 가능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갈 수 있다. 경기장 안의 계절은 바깥보다 한 박자 느리게 흘렀다. 바깥은 따뜻하지만, 빙판 위에는 낮은 냉기가 머물렀다.
이용석 선수는 휠체어를 고정한 채 스톤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스톤을 미는 도구 ‘스틱’이 들려 있었다. 그는 곧장 던지지 않았다. 빙판 끝 원형 표적인 하우스를 바라보고, 그 앞에 놓인 스톤들의 위치를 살폈다.
컬링(Curling)은 빙판 위에서 둥글고 무거운 스톤을 밀어 보내 하우스 중심에 더 가깝게 놓는 경기다. 컬링에서 스톤 앞 얼음을 빗자루로 쓸어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스위핑’이라는 기술이 있지만, 휠체어컬링에서는 이 동작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 번 손을 떠난 스톤은 중간에 속도나 방향을 다시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이용석 선수는 던지기 전 한참을 본다. 어디로 보내야 할지, 어느 정도 힘을 실어야 할지, 스톤이 어느 길을 따라 움직일지 먼저 그려본다. 빙판 위 그가 보는 것은 단순한 하우스 하나가 아니다. 그곳까지 닿기 위해 스톤이 지나가야 할 길이다.
스위핑이 없는 경기에서 한 번의 투구를 준비하는 법
이용석 선수는 올해 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믹스더블에서 백혜진 선수와 함께 은메달을 땄다. 믹스더블은 남녀 선수 한 명씩,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경기하는 종목이다. 한국 휠체어컬링이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은 2010년 밴쿠버 대회 이후 16년 만이었다. 그러나 이 메달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결과보다 먼저 한 번의 투구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볼 필요가 있다.
이용석 선수는 휠체어컬링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스톤을 얼마나 세게 밀어야 하는지 가늠하는 힘 조절 감각을 말했다. 선수들은 이 감각을 ‘웨이트감’이라고 부른다. 원하는 위치에 스톤을 멈추게 하려면 방향만큼이나 힘의 세기가 중요하다.
“호그라인에서 호그라인까지 던지는 웨이트감을 가져야 하는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초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휠체어컬링은 못한다고 봐야 하니까요.”
호그라인은 컬링 빙판에 가로로 그어진 기준선이다. 선수들은 스톤이 한쪽 기준선에서 반대쪽 기준선까지 움직이는 시간을 재며 힘 조절 감각을 익힌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얼음 상태에 따라 스톤의 움직임은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그에게 메달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결과가 아니었다. 빙판을 읽고, 힘을 조절하고, 실수 이후 다시 감각을 맞춰온 시간이 한 투구 한 투구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이용석 선수가 동료들과 함께 스톤의 방향을 살피고 있다
움직이는 일을 좋아했던 청년에게 찾아온 달라진 일상
2017년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신인선수 캠프를 거쳐 컬링을 시작한 이용석 선수는 올해로 10년째 빙판 위를 구른다.
이용석 선수는 자신을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축구를 즐겨 했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했다. 책상 앞에서 설계도만 보는 일보다, 현장을 다니며
직접 보고 움직이는 일을 더 좋아했다.
그런 생활은 대학교 시절 교통사고 경험으로 크게 달라졌다. 지인 차량이 크게 전복됐고, 이용석 선수는 척추를 크게 다쳤다. 이후 대구의 병원에서 초기 치료를 받은 뒤 경기도의 재활병원, 서울의 병원, 국립재활병원 등 약 3년 병원 생활을 했다.
그 시간을 설명할 때 이용석 선수는 낮과 밤을 구분지었다. 낮에는 재활치료로 바빴지만, 밤이 되면 이전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이 선명했다. “낮에는 재활치료 받느라 몰랐는데, 밤만 되면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죠.”
산책을 나갔을 때 아이들이 차던 축구공이 그의 앞으로 굴러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발로 차주었을 공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었다. 몸을 회복하는 과정만큼 달라진 일상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은 그 시간을 함께 견디었다.
▲이용석 선수가 훈련 전 장비를 챙기고 있다
병원 밖에서 다시 몸을 움직이게 한 휠체어 배드민턴
재활을 마친 뒤 이용석 선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었다. 남은 학업을 마쳤고, 일도 해봤다. 그러나 오래 앉아 가만히 있는 생활은 그에게 잘 맞지 않았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도 마음도 답답해졌다.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휠체어 배드민턴이었다. 재활병원에서 알게 된 지인이 스포츠 운동을 권했다. 병원 밖에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선수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몸을 움직여보자는 마음이 컸다.
“어차피 병원에서도 나왔고, 운동을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배드민턴은 그가 다시 사람들과 만나고 몸을 쓰는 계기가 됐다. 한계도 느꼈다. 배드민턴은 순간적으로 팔을 뻗고 몸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의 몸은 움직임 범위의 제약이 있었고, 그 차이는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제무대에서 외국 선수들과 겨뤄보고 싶었으나, 배드민턴으로 그 목표는 쉽지 않았다.
이 때 발견한 종목이 휠체어컬링이었다. 빠른 움직임보다, 빙판을 읽고 힘을 조절해 원하는 위치에 스톤을 놓는 정확성이 더 중요했다. 자신의 몸 조건으로 더 깊이 승부를 걸 수 있는 휠체어컬링이었다.
낯설었던 컬링이 목표가 되기까지
처음에 컬링이란 종목 자체가 낯설었다. “이게 무슨 운동이지”라는 느낌이었다. 컬링의 매력을 오롯이 알지는 못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스톤이 목표 지점을 향해 서서히 휘어 들어가고, 작은 힘 조절과 미세한 방향 차이로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멈추는 장면이 눈에 박혔다. 한 번의 샷으로 경기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 희열이었다.
지금의 자신의 몸에서 도전할 수 있는, 더 넓은 무대가 열려있는 종목이었다.
그 장면들은 이후 훈련의 이유가 됐다. 빙판을 읽고, 힘을 조절하고, 같은 동작으로 자신의 감각을 계속 확인해야 했다. 그때부터 태극기를 달고 국제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다.
오래 보아야 재미있는 경기, 다시 준비하는 선수
“패럴림픽을 치르고 있을 때는 방송을 못 봐서 몰랐는데, 나중에 가족이 말해주길 TV에서는 올림픽만 틀어주고 저희 경기는 올림픽 경기 사이에 하이라이트로만 짧게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경기를 쭉 봐야 알 수 있는 재미도 있는데, 그렇게 짧게만 나가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패럴림픽 은메달은 큰 성과였지만, 이용석 선수에게는 아쉬움도 남아 있었다. 휠체어컬링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종목이고, 경기의 흐름을 충분히 보여줄 기회도 많지 않았다.
컬링은 한 장면만 보고 매력을 알기 어려운 경기다. 어느 위치에 스톤을 놓을지, 상대 스톤을 어떻게 밀어낼지, 다음 투구를 위해 어떤 길을 남겨둘지까지 전부 이어져야 경기 흐름이 보인다. 이용석 선수가 휠체어 컬링이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한 이유다.
그러나 그는 아쉬움에만 머물지 않았다. 목표는 여전히 빙판 위에 있었다. 한 번의 은메달로 끝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는 다시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 서고, 가능하다면 더 좋은 색의 메달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했다.
이용석 선수는 오늘도 빙판 위에서 스톤이 지나갈 길을 읽는다. 하우스 너머의 길을 살피듯, 자신의 다음 시간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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