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로 세상과 만나는 법 - 김창민 작가
417호 사람 사는 이야기
본문
질문을 건네기 전, 웃는 얼굴을 마주하다
카메라를 세우자 김창민 작가(40세)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첫 질문도 꺼내기 전이었다. 옆에 이승홍 공동저자가 웃었다. “카메라를 좀 의식하셔서 어딜가든 카메라를 많이 찾아요.” 말로 답하기 어려운 김 작가와 어떻게 인터뷰를 이어갈지 여러 번 생각했다. 정작 마주 앉으니 카메라를 찾는 그의 시선과 웃음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올해 7월 『눈동자로 쓰는 나의 일기』를 펴낸 김 작가는 중증 뇌병변장애가 있다. 음성 언어로 자신의 뜻을 전하기 어렵고 몸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다. 눈동자와 표정으로 본인 의사를 표현한다. 눈동자를 위로 올리면 ‘예’, 아래로 내리면 ‘아니오’다. 이 공동저자가 답변 보기를 하나씩 읽고 김 작가가 눈으로 답하면, 뜻이 분명해질 때까지 또다시 묻는다. 8월 7일 노원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이하 ‘비전꿈터’) 강당에서 열린 김 작가 책 『눈동자로 쓰는 나의 일기』 출판기념회에서도 김 작가는 이 방식으로 공개 문답을 진행했다. 대화를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질문하는 것은 많이 달랐다.
그래서 첫 질문부터 ‘인터뷰 방법’을 김 작가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작가님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면 좋은지 물었다. 김 작가는 ‘내가 답할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내 대답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둘만 남으니 김 작가 눈동자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해줬으면 좋겠다’에서 다시 올라갔다. 이후에도 답이 모호하면 다시 물었다. 질문을 놓치면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다. 김 작가 눈은 그때마다 ‘맞다’와 ‘아니다’를 분명하게 갈랐다.

▲8월 7일 출판기념회 전 사인하고 있는 김 작가. 이 공동저자가 양손으로 김 작가의 손을 보조하고 있다.
질문지에 장난 한 줄,
이 사이가 딱딱하다고요?
긴장이 풀린 건 다섯 번째 질문쯤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책을 만든 이 공동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김 작가에게 물었다. ‘장난치고 수다 떨 수 있는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생각을 잘 알아주는 사람’, ‘함께 책을 만든 동료 작가’. 마지막 농담으로 ‘보기와는 다른 관계다. 딱딱하다’를 끼워 넣었다.
이 공동저자는 사전에 그 질문을 읽어줬을 때 김 작가가 유난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농담이 질문지에 들어 있으니까 모두 이해하고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친구니 동료니 하다가 느닷없이 ‘딱딱한 사이’라니. 짐짓 두 사람의 사이를 의심해 본 농담이 김 작가 취향인 듯 했다.
김 작가 반응은 직설적이었다. 싫은 질문 보기는 눈이 금세 아래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말에는 표정과 몸짓도 따라왔다. 특히 “창민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면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 공동저자는 늘 김 작가의 눈과 얼굴을 한 번 더 살폈다. 웃는 것인지, 질문을 놓친 것인지 바로 단정하지 않는다. 눈이 움직였다는 사실보다 그 뜻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8월 12일 진행한 김 작가와의 인터뷰 사진
스무고개가 하루의 조각으로
책 제목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눈동자로 나누는 짧은 문답이 어떻게 한 편의 글이 되고, 다시 한 권의 책이 됐을까.
시작은 비전꿈터 이용자 지원일지였다. 비전꿈터에서 특수교사로 김 작가를 지원해 온 이 공동저자는 처음부터 책을 쓰려고 기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비전꿈터는 성인 뇌병변장애인의 교육·돌봄·건강을 지원하는 종합지원시설이다. 마포와 구로에 이어 노원구에 세 번째로 문을 연 새내기 기관인 만큼 장애인 당사자와의 대화가 중요했다. 개소 초기에는 형식을 딱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기록했고, 이 공동저자는 김 작가와 나눈 대화를 일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야기는 없었다. 누가 반갑게 맞아줬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누구 장난이 싫었는지와 같은 하루의 조각에서 질문이 시작됐다. 김 작가가 유독 누군가를 바라보거나 할 말이 있는 기색을 보이면 사람인지, 장소인지, 언제 있었던 일인지 하나씩 범위를 좁혔다. 그래서 둘은 이 방식을 ‘스무고개’라고 불렀다.
문장을 만드는 일도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창민 님, 이 생각 맞아요?”라고 확인하면 김 작가가 다시 답했다. 문장은 다시 고치고, 다시 읽었다.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질문과 확인이 필요했다.
유정경 비전꿈터 센터장은 두 사람이 유난히 잘 맞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선생님도 중증장애인과 소통하는 데 능력이 있으시고 창민 님은 말하는 걸 좋아하고. 딱 맞아떨어지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진 거죠.”
그 기록이 쌓이자 유 센터장은 공식 출판을 고민했다. 하지만 출판은 또 다른 문제였다. 5곳을 만났지만 원고가 얇고, 제작비가 들고, 출간 뒤 작가가 강연과 홍보를 다닐 수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직원과 가족의 글을 더해 분량을 늘리는 방법도 제안됐다. 유 센터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창민 님이라는 존재가, 작가라는 존재가 약화되잖아요.”
결국 김 작가와 이 공동저자가 만든 이야기만으로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상업성보다 눈동자 구술 기록 문학이라는 독특함을 높이 평가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선정으로 지난 7월 『눈동자로 쓰는 나의 일기』가 출판 시장에 드디어 나왔다. 안구 마우스로 글을 쓰는 작가는 가끔 있지만 김 작가처럼 눈동자 문답을 통한 상업 출판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았다. 출판하기 전 만난 기존 출판 기획자들도 이 점을 가장 높이 평가했으나 무엇보다 작가의 재치 있는 입담, 아니 눈담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눈동자로 쓰는 나의 일기』 표지
김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추천한 글은 책 속 ‘생일 축하해, 내 동생’ 장이었다. 김 작가의 창작 과정을 위트있게 잘 드러낸다. 스무고개 문답이 글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어느 날 김 작가는 비전꿈터에 오자마자 이 공동저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 공동저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마침내 “혹시 오늘 동생 생일이에요?”라는 말에 눈이 올라갔다. 두 사람은 선물을 사러 갔고, 김 작가는 운영위원회 참석비로 여동생의 선물을 골랐다. 여동생의 대답은 짧았다. “고마워.” 그날 김 작가는 스스로를 ‘나름대로 멋진 오빠’라고 표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담기는 것’, ‘솔직하게 쓰는 것’, ‘재미있게 읽히는 것’,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답변 가운데 김 작가는 ‘재미있게 읽히는 것’을 책을 쓸 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으로 골랐다. 다른 보기까지 모두 확인하고 다시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재미에 꽂히셨네요.” 이 공동저자가 웃었다. ‘이건 내 글이다’라고 느끼는 순간도 김 작가는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느꼈을 때’를 택했다.
김 작가 취향도 꽤 선명했다. 축구, 특히 국가대표 경기를 좋아한다. 아버지에 따르면 경기 전 애국가가 나오면 함께 부르고, 골이 들어가면 크게 환호한다.
책에 나온 모습 말고 사람들이 더 알았으면 하는 모습을 물었을 때 김 작가는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모습’을 강하게 골랐다. 인터뷰 막바지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와 ‘지금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고싶다’ 사이에서 고민했고, 다시 둘만 놓고 물었을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쪽으로 눈이 올라갔다.
출판기념회 전날에는 긴장해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막상 사인회가 시작되자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이 공동저자는 그런 김 작가를 두고 “무대 체질인 사람”이라고 웃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비전꿈터 음악 수업에 참여한 김 작가. 수업을 즐기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서
센터에서만 그런 걸까. 김 작가를 가장 오래 봐 온 아버지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날씨가 괜찮으면 동네 공원에 나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주말 농장 드라이브를 즐긴다. 조카들과 북적거리는 것도 좋아한다. 하루의 만남과 감정을 일기로 써 온 김 작가에게 이런 시간은 주요 글감이기도 하다. 작가 활동 이후 어떤 글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하루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날 일을 아버지에게 전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아버지가 하나씩 묻는다. 집에서도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집에 일들은 센터 직원들에게 알리려 한다. “선생님들하고 아주 씨름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버지는 웃으며 덧붙였다.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온 아버지도 책을 읽고 처음 안 것이 있었다. “아, 얘가 이런 생각도 했구나. 그걸 알았다니까.” 센터의 다른 사람들이 다른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을 따라가며 가족에게도 낯선 생각과 기억이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는 출판기념회에서도 “내가 아들이랑 이런 대화는 참 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책 너머, 더 넓은 세상으로
출판 뒤 달라진 것을 묻자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더 많이 물어본다’와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여러 선택지를 거듭 좁힌 끝에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을 골랐다. 책을 읽고 김 작가를 만나는 동안, 처음에는 글을 쓰는 방법이 궁금했지만 점차 그 글을 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에 더 눈이 갔다. 그렇게 작품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알아가는 만남 속에서, 김창민 작가가 들려줄 이야기를 더 오래 읽고 싶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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