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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문의 영화읽기] 언터처블 : 1%의 우정(2011, 프랑스)

본문

   
 

영화에 관한 이런 편견이 있습니다. “모든 영화는 재미있다. 프랑스 영화만 빼고.”

인정하기 싫지만 일견 맞는 말입니다. 1990년대 이후에 ‘택시’ 시리즈를 중심으로 할리우드 액션을 모방하고 프랑스식 이야기를 가미하면서 조금씩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프랑스 영화는 재미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성에 근거한 최소한의 허구성만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적 요소인 사건의 우연성, 시작과 끝의 조화, 선과 악의 대립 등을 기본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사실을 바꾸면 이렇습니다. 모든 프랑스 영화는 재미없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본 프랑스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재미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백만장자와 남자 간호인 사이의 우정을 그린 ‘언터처블: 1%의 우정(2011, 올리비에르 나카체 감독)’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2011년도 프랑스 박스오피스에서 10주간 연속 1위를 했고, 누적 관객 수가 1천800만 명 이상을 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흥행의 돌풍을 이어갔다고 하니까 꽤 재미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겠지요.

영화의 구도는 매우 단조롭습니다. 상위 1%의 부자지만 전신마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이라는 백인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24시간 자신을 도와줄 도우미가 필요합니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무일푼인 백수 이민자 드리스(오마 사이 분)가 나타나고, 자신에게 거침없이 농담을 날리는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필립은 4주간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고, 드리스는 엉겁결에 취직이 되고 일을 시작합니다. 평생 마주치지도 않고 살았을 두 남성의 유쾌한 동거가 시작되고, 필립과 드리스는 그들만의 우정을 만들어갑니다.

두 사람의 조합은 예상하지 못한 일화와 모험으로 가득합니다. 부자와 빈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백인과 이민자 등의 대립적 구도로만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휴먼 감동 드라마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를 드라마로 만드는 요소는 사실성에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실제 상황입니다. 과장되지 않은 사실만의 내용을 영상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인터뷰 자체가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팩트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합니다.

   
 

이 영화를 장애와 비장애의 구도로 볼 것인지, 부자와 빈자의 구도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 둘의 혼합된 구도로 볼 것인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장애와 비장애,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를 넘어선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화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영화는 재해석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저의 배려입니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입니다. 영화는 영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 중 하나로 저는 두 사람 사이의 보편성에 대한 의지를 꼽고 싶습니다. 달리 말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고자 하는 인위적 모습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드리스는 필립에게 비싼 가격의 미술품이 사기라고 얘기하고, 맛없고 비싼 요리에 일침을 놓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다그칩니다. 필립 또한 전과자로 살아온 드리스의 과거에 편견을 갖지 않습니다.

특히 패러글라이딩을 함께하는 장면은 두 사람 관계의 같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의 백미입니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경계를 누가 결정할까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입니다. 그러나 생리학적으로는 신체적인 균형과 항상성을 유지하는 상태의 개념이 있을 뿐이지, 영원히 존재하는 ‘정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다시 돌아온 드리스가 웃으며 얘기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수염이 한참 자란 필립을 “프로이트? 링컨? 빅토르 휴고?” 등으로 놀리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드리스가 필립을 휠체어에 앉혀 놓은 채 그가 좋아하던 여자를 그 앞에 데려온 장면과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입장의 같음을 설명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담은 가장 큰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뫼비우스의 띠’가 생각났습니다. 안과 겉의 구별을 할 수 없는 한쪽 면만을 가진 곡면입니다. 안이 겉이고 겉이 안이 되는 구조입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작성자이영문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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