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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논쟁에 설 곳 잃은 경계인

[리뷰]경계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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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소리]

   
▲ 영화 <경계도시2> 포스터
재독 철학자 송두율의 37년만의 귀국,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한민국 이데올로기의 광풍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감독 홍형숙)>가 지난 23일 오후 7시 전남대학교 용봉문화관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경계도시1(2002)>이 간첩 혐의를 받아 35년 간 입국금지 상태였던 송 교수의 귀국 시도와 좌절을 그린 ‘인물 중심’의 작품이었다면, <경계도시2>는 2003년 극적으로 성사된 귀국을 통해 실체(송두율)와 상관없이 욕망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를 희화한 성격이 강했다.

촬영기간은 1년이었으나, 감독은 개봉되기까지 7년을 끌어야 했다. 그만큼 스스로 혼란을 겪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고뇌의 시간을 가진 덕택이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오랜 편집 기간 동안 느꼈던 여러 혼란과 방황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홍 감독이 서울시사회 당시 “그동안 벌어졌던 이념 논쟁이 얼마나 허구에 찬 인격모독인지를 보여주려 했다”며 “한편으로, 나 역시 그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데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았다”는 자기 고백적 성찰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영화 속 ‘양심적인 철학자’였던 송두율이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열흘.

송 교수의 귀국과 동시에 그의 입장을 옹호해주던 사람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은 단 며칠 사이에 사상 전향을 강권하며, 역사적 대의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한다.

“경계인(남과 북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지칭)으로 남고 싶다”고 울부짖던 송 교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고 말하며 전향 의사를 밝힌다.

   
▲ 영화 <경계도시2> 스틸 컷
영화는 당시 국내 언론과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던 ‘레드 컴플레스’를 통해 송 교수를 해방 이후 최고의 거물 간첩으로 몰아 부치는 과정을 숨 가쁘게 보여준다.

최후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송두율에게 한 기자가 묻는다. “한국에 오신 걸 후회하십니까?”

송두율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한다. “네, 후회해요.”

그 기자가 다시 다급하게 묻는다. “한국에 오신 걸 후회 안 한다고 그 말씀만 한마디 하시죠.”

관객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얘기한다. “기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어다”라고.

무엇보다 영화의 매력은 감독조차도 상황을 두고 혼란스러워 하는 솔직함에 있다. 의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해 놓고 촬영하는 기존 다큐멘터리와는 색다른 느낌이다. 또 정작 송두율은 아무 말이 없지만 과하다 싶을 만큼 상황을 관망하거나, 비판하거나, 윽박지르고, 떠미는 주변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감독의 메시지가 자연스레 전해진다.

   
▲ 영화 <경계도시2> 스틸 컷
한국사회는 여전히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사건으로부터 6년이나 흘렀고 송두율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영화<경계도시2>는 오는 4월 1일부터 광주극장에서 개봉된다.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공식 블로그 blog.naver.com/bordercity2 및 전화 062-224-5858

송두율 사건이란?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제자이자 뮌스턴 대학 교수인 송두율은 1968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 1970년대 현지에서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반체제 인물로 분류돼 한국 입국이 금지됐다.

그러다 2003년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행사에 초청돼 고국 땅을 밟았으나, 입국 다음날 바로 국정원과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북한의 노동당 비서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황장엽이 1997년 한국에 온 이후 “송두율이 북한의 당 서열 23위인 김철수(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와 동일인이다”는 증언으로 말미암은 사건이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초점은 송두율 검증에 맞춰졌고, 보수 신문들은 이 사건을 지면에 떠들썩하게 도배했다. 결국 그는 ‘간첩’으로 결론 났고 구속됐다.

이후 2004년 7월 2심 판결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된 송 교수는 독일로 돌아갔다. 1년 뒤 대법원은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독일로 돌아간 송 교수는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고 있다.


작성자최유진 기자  cho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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